김수현은 자신의 삶(작품)에 치열하고 알뜰히 사랑하고 맛있게 가꾸는 작가다. 그래서내밀어지는 작품은 늘 경이롭고 신비하고 독기까지 뿜어낸다.
끝내 우리는 김수현 덫에 걸리고 그 자체를 즐긴다.
그러면서 정작 김수현 자신은 그런 우리를 버려둔 채 냉정하다.
‘김수현’ 하면 상하종횡 남녀노소 누구한테나 천재적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김수현은 40여년간 소설로, 라디오로, 영화로, 흑백TV를 거쳐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총체적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다. 김수현이 토해낸 글은 모두가 그 시대의 주장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그야말로 김수현 신드롬(Syndrome)이 된다.
따라서 객관적 시각으로 작가 김수현을 얘기하는 건 무의미하다. 부언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김수현에 대해 더 잘 알고 느끼고 있을 터고 또 인터넷 정보가 더 풍성하게 김수현을 감싸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내 영화 인생에서 비껴갈 수 없이 한 부분이 된 비하인드(?)가 더 재미있고 새로움이 있을 거란 판단에서 원고 청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백건대 김수현은 내 작가적(?) 자존심과도 관계가 있다.
아무튼, 지금도 작가 김수현의 이름만 빌려와도 돈이 되고 고공시청률이 된다. 때문에출판사도 방송사도 영화사도 TV연출자도 그 이름을 빌리고 글을 받으려고 줄을 선다. 김수현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는 반드시 연기 잘하는 스타가 되고 김수현 작품을 연출하는 연출자는 당연히 인기 연출자가 될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필자는 방송 연출 시절 한 번도 김수현 작가의 글로 드라마 한 편 만들어 보지못했음은 물론 근처 얼씬도 못했다.
그런데 기회가 묘하게 왔다. 1985년 <베스트셀러극장> 프로그램 연출 당시 미국에서 막 돌아와 방송 출연을 고려하고 있던 윤여정 씨를 캐스팅한 것이 인연이 되어 김수현 씨를 만나게 되고 - 윤여정 씨와 김수현 씨는 상당한 친분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음 - 마침 영화사 ‘황기성 사단’ 창립작품 영화 연출을 의뢰받고 방송국의 배려로 잠시 휴직을 하고 영화 <어미>의 시나리오를 부탁하며 윤여정 씨의 출연 약속까지 받아낸 것이 김수현 작가와의 처음 인연이었다.
집필 기간 중, 가끔 평창동 집을 방문해서 작품 방향에 관해 대화(거의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편)하고 직접 해주는 정갈한 요리를 맛있게 먹고 오곤 했다.
<여기에서 김수현 작가 하면 떠오르는 나의 주관적 편린 #1>
# 거실과 통하는 주방으로 햇살이 비껴 떨어지고, 왼손에 담배를 든 채 가스불을 조절하며 음식이 알맞게 익을 때까지 레인지 앞을 떠나지 않고 찬찬히 생각에 잠 긴 채 오래도록 서 있는 뒷모습이 예사롭지가 않았고 근사했다. 이윽고, 공부에 열중해 있는 딸을 친구처럼 부르며 이층으로 올라가 딸을 데리고 와 식탁에 앉히기까지.
난 그 모습을 영화 <어미>에서 윤여정 씨를 통해 그대로 재현했고 아직도 내가 가장 아끼는 화면 중에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편린 #2>
# 김수현은 자신의 삶(작품)에 치열하고 알뜰히 사랑하고 맛있게 가꾸는 작가다. 그래서 내밀어지는 작품은 늘 경이롭고 신비하고 독기까지 뿜어낸다.
끝내 우리는 김수현 덫에 걸리고 그 자체를 즐긴다.
그러면서 정작 김수현 자신은 그런 우리를 버려둔 채 냉정하다.
나의 엉뚱한 편린은 작가 김수현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내 나름의 주장이다.
김수현 작품은 "디테일함", "일상성 위트", "뿜어져 나오는 독설과 역설과 파괴의 미학"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우리에겐 김수현 신드롬의 독소(?) 또한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김수현 의식하기''와 ''김수현 따라하기''다.
이는 물론 김수현의 책임은 아니다.
김수현의 의식이 변하면 한국 대중문화도 변한다. 이는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김수현의 마당은 그만큼 넓고 다양하고 크다.
따라서 김수현 에너지는 계속돼야 하고 김수현 작가 스스로 좋은 변화를 끌어낼 수 있도록 보호돼야 할 것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렇게 영화 <어미>는 완성됐다.
그러나 난 김수현 작가에겐 형편없는 똥감독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시나리오와는 거리가 먼 영화가 됐다는 이유다. 당시 대종상 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영화 <어미>에 대한 영화계 평가는 대체로 좋았다. 근데 심사 결과 각본상 수상자로 결정됐는데도 김수현 작가는 수상을 거부하는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나도 방송국으로 복귀하고 그 이듬해 다시 영화 <안개기둥>을 만들려고 사직서를 던졌더니 또 한번 방송국 배려로 휴직을 하고 영화 완성 후 다시 복직을 했다.
1989년 방송을 떠난 후, 영화로 또 한번 내 의지와 관계없이 김수현 소설 『눈꽃』을 만나게 된다. 모 제작사가 연출 의뢰를 해왔다. 난 기꺼이 응하고 영화를 만들었다. 윤정희 씨와 이미연 씨가 모녀 연기를 해 그해 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수현 작가께서 이 영화를 보셨는지조차 난 알 길이 없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난 김수현 작가에겐 영원히 똥감독으로 남은 채 한번도 뵌 적이 없는 씁쓸한(?) 관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김수현 작품은 내 영화 인생에서 여전히 크게 존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내가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만났던 때는 내 나이 30대 중반이었고 이젠 어느 듯 나도 내 인생을 성찰해 가면서 살 때에 와 있다. 만약 지금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만난다면 똥감독이란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더 빛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