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일상성의 드라마틱한 변주 영화 데뷔 40주년, 작가 김수현을 돌아보다

by.고선희(서울예대 겸임교수) 2009-03-10조회 752
드라마 스틸

우리가 무려 40년간 한 작가의 드라마를 즐겨 봐왔다는 사실, 한 작가가 4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문화 생산자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 만큼 경이로운 일이다. 방송작가 김수현, 그는 1969년 데뷔 이래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정상의 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한국의 대표적 드라마 작가다. 본격적인 텔레비전 대중화 시대의 개막 이후 지속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시청자 대중의 여가 시간을 지배해 온 ''김수현 드라마''는, 방송의 일상적 수용이라는 문제와 관련해 볼 때 더욱 중요한 사회문화사적 의미를 지닌다. 방송은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소비·수용됨으로써 대중의 의식과 무의식에 개입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지배적 미디어다. 유사한 것처럼 보이는 영화라는 미디어가 한정된 공간에서 선택적으로 집중 수용되는 것과 달리, 방송드라마는 밥 먹고 숨 쉬고 잠자는 일처럼 매우 일상적으로 의식·무의식적으로 수용·해독되고 있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에, 방송드라마의 상징성은 쉽게 은폐되거나 간과되기 쉽다. 그런데 김수현 드라마는 그러한 상징체계에 주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강렬함이 있다.

1972년 <새엄마>로 일찌감치 대중적 명성을 얻은 작가 김수현은 방송드라마 특유의 지극한 일상성을 가장 잘 아는 작가다. 그는 방송드라마의 여러 양식 가운데서도 가장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일일극이나 주말극과 같은 연속극을 주로 집필해 왔다. 1970년대 홈드라마 열풍을 이끌었던 그는 78년 <청춘의 덫>이라는 본격 멜로드라마를 선보였고, 80년대에는 그 두 장르의 장점만을 취한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을 내놓아 대중의 폭발적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김수현 드라마''가 하나의 장르로 굳혀진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1984년 1부 76회와 85년 2부 29회로 방송된 <사랑과 진실>, 그리고 87년 1월부터 12월까지 장장 97회에 걸쳐 방송된 <사랑과 야망>은 60%와 76%라는 초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사회적 경제적 야망과 일상적 삶과 사랑의 문제를 첨예하게 대립시켜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의 우리의 자화상을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이 두 작품은, 이른바 ''가족사 드라마''의 효시라 할 정도로 이후 많은 유사한 드라마를 양산해내기도 했다.

또한 이 두 편의 <사랑…> 시리즈에서는 전 시대의 드라마에서와 달리 물질적 사회적 성공을 위해 과감히 자신의 운명에 도전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인의 의식과 감각을 대변한다. 1980년 광주항쟁을 거쳐 형성된 5공화국 시기, 통행금지 해제와 교복 자율화 그리고 프로야구와 컬러TV 시대의 개막으로 대중문화는 일견 활기를 띠는 듯했다. 그러나 상업적 소비적 측면만 강조되어 대중문화의 탈정치적 성향이 강화돼 가던 시기이다.

방송 연구자들은 이 시기를 방송에 의한 ''일상생활의 구성기''로 보고 있다. 방송에 의한 ''삶의 관습화와 재구성''(김승현, 한진만)이 이루어진 시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이 일방적으로 대중의 삶을 지배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중문화란 지배 헤게모니를 실현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내포하기도 한다. 특히 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드라마''라는 양식은 대중문화의 그러한 양면성을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드라마작가는 방송사의 기획자나 정치권력의 주체보다 시청자 대중의 반응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대중이 즐겨 보아줄 수 있는 이야기를 엮어낸다. 따라서 대중이 오히려 방송드라마의 관습화와 재구성을 유도하기도 한다. 방송드라마, 특히 일상성을 담보하고 있는 연속극은 그러한 작업을 특집극이나 (1987년 이후 등장한) 미니시리즈 형식과는 달리 두드러지지 않게, 그러나 지속적으로 수행해낸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더 절대적일 수 있다. 방송극을 단지 가벼운 오락물로 치부해 버려서는 안 되며, 연속극의 제왕 김수현과 ''김수현 드라마''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죽은 시체도 벌떡 일어나 텔레비전 앞에 앉게 한다"는 김수현 드라마의 힘은 등장인물들의 대사, 즉 ''말''에 결정적으로 존재한다. 김수현 드라마의 인물들은 유난히 말을 잘한다.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와는 관계없이 대부분 자기 주관이 뚜렷한 그들은, 지극히 논리적이고 놀랍도록 명징한 대사를 거침없이 쏟아내어 듣는 이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다. 자신의 욕망에 지극히 충실한 그들은, 거대담론에 결코 매몰되지 않는 방식으로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 ''할 말 다해가며'' 살아간다. 더구나 그들은 일상의 언어를 구사해 그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소름 끼치게 적확한 표현, 감추고 있는 속내를 까뒤집어내는 듯한 도치법의 잦은 사용, 속사포처럼 빠른 속도감으로, 삶의 범속함과 저속함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김수현의 언어는 등장인물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그 극적 긴장을 강화해 간다. 일상적 소비를 유도하는 역설의 수사학, 그것이 바로 김수현 드라마가 대중을 사로잡는 결정적 힘이다. 영화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긴 시간 동안 지속돼야 하는 드라마의 속성상 전형적 캐릭터나 우연의 연속 등 대중 서사의 상투적 요소들만으로는 결코 다 채울 수 없는 많은 부분을, 드라마 특히 연속극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일상적 장면과 언어로 채워내야 한다. 자칫 극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플롯의 견고함을 와해할 일상적 장면과 일상의 언어들을, 여하히 드라마틱하게 변주해 내느냐가 방송드라마 성공의 관건이다. 김수현은 바로 그러한 일상성의 드라마틱한 변주에 독보적 역량을 발휘해 온 것이다. 그를 이야기할 때 방송이라는 미디어와 일상의 관계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

일상에의 균열이란 당연히 일상적 차원을 넘어서지 않는 극적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김수현 드라마가 주로 가부장제나 사회적 관습들과 본질적으로 부딪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중심으로 하는 멜로드라마 양식과 가부장적 대가족 형태를 등장시키고 있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우리의 일상적 관습과 제도에 끝없이 균열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일상의 봉합과 복구를 이야기하며, 때로는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일상을 재건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수현 드라마에 대해 가부장적이라는 비판을 가하거나 그것이 한계라고 말하는 것은 그다지 생산적인 작업이 아닌 것 같다. 방송이 원래 그러니 보수성을 탓하지 말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일상성을 생명으로 하는 방송드라마 특히 연속극에서 일상적인 삶의 형태는 당연히 전제될 수밖에 없으며, 하루아침에 그러한 일상적 제도를 전복시키고자 한다면 그것은 연속극의 영역을 벗어나는 작업이 되어버린다는 얘기다. 따라서 김수현 드라마를 메시지성이 강한 특집극이나 1987년 이후에나 등장하는 미니시리즈와 같은 연속극과는 다른 양식의 작품들과 동일선상에 놓고 분석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연속극은 연속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전제한 상태에서 그 사회문화적 성격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김수현은 연속극의 그러한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작가로 파악된다. 그는 일상의 영역을 결코 벗어나지 않되 지난 40년간 끊임없이 그 일상에 균열을 가해왔으며, 바로 그 균열의 과정에 김수현 드라마의 메시지가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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