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이 담당한 영화음악 중 국악과 크로스오버 된 작품으로는 <서편제>(1993)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그러나 김수철은 이미 <고래사냥>(1984)부터 영화음악을 작업했고, <허튼소리>(1986)에 아쟁 음악을 삽입하고 있으니 <서편제>를 먼저 떠올리는 이의 짐작보다는 퍽 오랜 세월 영화 속 소리를 실험해 온 셈이다. 그 중 1994년, 그러니까 <서편제>의 이듬해에 작업한 <태백산맥> OST는 국악을 차용한 사운드트랙으로서 한 단계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 듯 보이며, 김수철 자신도 매우 아끼는 앨범이라 알려져 있다. 전통악기에서 흔히 쓰이는 대금과 피리, 대북, 꽹가리는 물론 20인이 연주하는 오고북의 웅장함과 함께 아프리카 민속 타악기까지 끌어들여 다채로운 소리의 조화를 이루게 한다. 김수철의 OST에 익숙하다면 조금은 식상할 신디사이저의 음색도 여전하지만, 김수철 본인은 ‘전통악기와 현대의 악기가 어떻게 만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사용 하’며, ‘소리가 나는 모든 악기를 사랑한’다 고백하고 있으니 그의 일관된 음악적 실험을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KINO] 1996.4 인터뷰 중). <태백산맥> OST 전반에는 다소 실험적인 곡들이 포함되어 있어 듣기가 마냥 편하지는 않으나 트랙 중반부터 15분간 이어지는 음악적 경험, 즉 그윽하게 진동하는, 신디사이저 없이 대금 산조로 연주되는 4번 트랙 ‘깊은 물’부터 주제가 격인 ‘돌아눕는 산’의 태평소와 피리소리, ‘슬픈 골짜기’의 현란한 오고북 연주, 듣는 이의 심장이 고동치듯 깊고 느리게 울리는 ‘상흔’의 대북 소리까지 이어지는 경험은 상당히 근사하다. 들을수록 질리기 쉬운 여느 크로스오버 음악과 달리 <태백산맥>의 음악들은 경험할수록 귀에 감긴다는 신기한 장점도 지닌다. <태백산맥> 음악은 1994년 제33회 대종상 음악상과 제16회 청룡상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