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내리기 직전에 봤다. 출연진 이름과 감독 이름만으로도 영화를 보지도 않고 이미 막 재밌어 하며 갔드랬다. 마침 제작자가 내 친구녀석이라 이런 훌륭한 영화를 만든 사람이 내 친구라는 게 넘 자랑스러워서 영화를 보자마자 전화를 때렸다. 헌데 정작 그 친구는 관객이 들지 않는다고 시무룩해 있었다. 난 제작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내 가족이거나 그런 남자랑 연애를 해봤다거나 심지어는 친구관계로 있어본 것도 그 녀석이 처음인지라 그런 그 친구에게 그만 실언을 해버렸다. 흥행참패에 의기소침해 있는 친구에다 대고 한 단 소리가 “야, 그럼 이 영화가 장사가 될 줄 알았단 말이냐? 이런 건 당근 장사 안되지. 내가 죽인단 영화는 다 장사 안되는 영화드라고. 킬킬...야 그럼 어떠냐?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었는데!” 물론 난 그걸 응원 내지는 위로랍시고 날린 멘트였는데 그 친구는 다소 황당과 무안 심지어는 불쾌감까지 섞인 호흡으로 급하게 전화를 끊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생각해보니 정말 철없는 멘트였던 거 같다.
참한 여자 문소리에게 어느 날, 밖으로만 돌던 바람 같은 남동생 엄태웅이 5년만에 찾아 온다. 그런데 여친이라고 데리고 온 여자는 허걱! 무려 스무살 연상인 고두심. 그런데 이런 시어머니 뻘의 올케를 맞이한 문소린 그녀를 ‘자신의 올케’가 아닌 ‘사랑하는 가족의 사랑하는 사람’으로만 대한다.(놀랍게도!!) 게다가 또 다시 바람처럼 떠도는 태웅 대신 집을 지키는 그녀들 사이엔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에서 보여줬던 언니들의 아름다운 연대를 보여주기까지 하고.
엄마같은 딸 공효진과 딸 같은 엄마 김혜옥의 에피소드는 실제 모녀사이를 몰카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족구성과 상황들이 연달아 보여지는데도 어쩌면 그렇게 다 ‘진짜’같은지...배우들이 정말 위대해보이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대체 ‘평범’하다는 게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였다. 신신애언니 말씀대로 세상은 정말 요지경같아서 이 세상엔 아니 세상까지 들먹일 것 없이 작게 봐서 당장 우리나라에도 벼라별 가족들과 벼라별 관계들이 부지기수인데 왜 사회의 모듈은 그 ‘여러가지’를 인정하진 않는 걸까. ‘다르다’와 ‘틀리다’를 많이들 혼용하는 실수를 한다. 그건 ‘다른’것은 곧 ‘틀린’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무의식의 표출이 아닐까?
이 밖에도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서 딱히 가족의 여러 형태를 나열 한다기 보다는 사랑의 여러 형태를 보여주는데 내용과 연출과 연기와 대사들 모두가 참으로 사랑스럽기 그지없었고 사회적인 코드로는 깜짝 놀랄 만큼 진보적인 가치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주장’하지 않고 그냥 천연덕스럽게 혹은 의뭉스럽게 그저 들이대고 있었다. 주장하지 않고 적셔주는 건 김태용감독의 힘일 것이다. 에피소드들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풀이도 아름다웠고 천재배우 류승범의 깜짝출연도 고마웠다. 그리고 엄태웅,봉태규,정유미를 발견! 한 것도 좋았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발견한 건 무엇보다도 ‘가족의 정의’였다.
근데 친구야, 시간이 좀 흘렀으니 이제는 무안해하지 않겠지? 그래서 말인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영화가 장사까지 잘 된다면 그건 이미 너무 훌륭한 세상이 된 거란 얘기라고 본다. 너무 훌륭한 세상이 오면 우린 또 예술하기 싫어지지 않겠냐? ㅋㅋ 애인이랑 근사한데 놀러 댕겨야지 예술 할 시간이 어디 있겠니 안그래? (아...딴따라는 죽어서도 철이 안들게 분명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