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1972)
하길종 감독의 데뷔작. 이효석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푸른집’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학적이고 뒤틀린 욕망의 모습을 통해 유신 정권의 억압성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담아냈다. 개봉 당시 파졸리니의 <테오라마>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었다. 한국영화사에서 보기 드물게 동성애 장면 등이 연출돼 화제가 되기도.
<수절>(1973)
하길종 감독이 연출한 유일한 공포영화로 시나리오 작가 한유림의 오리지널 각본을 영화화했다. 지가도사(윤일봉) 패거리의 수탈 장면과 겁탈 장면 등이 문제가 되어 검열에서 20여분 넘게 가위질 당하기도. 전통적인 이야기인 한 많은 여귀의 복수담과 지가도사(윤일봉)와 유신(하명중)의 대결 구도를 활용해 시대적인 억압과 분노를 은유적으로 표출해냈다.
<바보들의 행진>(1975)
<화분>과 <수절>의 흥행 실패 이후 절치부심하던 하길종은 최인호 원작의 이 작품을 계기로 흥행몰이에 처음으로 성공한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영화로 통기타, 생맥주, 장발, 등 당대 대중문화와 낭만적이지만 출구 없는 시절을 살아가야했던 젊은이들의 희망과 좌절을 생생하게 그려내 화제가 됐다. 주제곡으로 송창식의 ‘고래사냥’ 등이 삽입됐다.
<여자를 찾습니다>(1976)
김주영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골에서 올라온 청년(하재영)이 도시에서 겪게 되는 학력과 빈부의 문제를 코믹한 터치로 담아낸 일종의 세태 풍자극이다. 하지만 유신 정권의 경직성과 더불어 코미디물이 TV로 옮겨감에 따라 하길종의 코미디 영화 역시 별다른 소구점을 찾지 못한 채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네의 승천>(1977)
오영진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작품. 제사굿을 준비하던 한 마을에 묘령의 여인 한네가 자살을 기도하다 만명(하명중)에 의해 구조된다. 기구한 운명의 한네를 통해 부조리한 인간 욕망의 단면을 그려낸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아역 배우 전영선이 한네를 포함해 만명의 어머니, 서울집 기생 등 1인 3역으로 출연한다. 하길종이 꼽은 최고작.
<속 별들의 고향>(1978)
<별들의 고향> 속편. 경아를 중심으로 전개됐던 전편과 달리 문오(신성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종의 호스티스 멜로물로, 하길종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장면 연출에 힙 입어 세련된 멜로드라마로 완성됐다. 수경으로 출연하는 장미희의 풋풋한 매력과 병원 복도 신에서 카메오로 출연하는 하길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78년도 흥행 1위작.
<병태와 영자>(1979)
하길종 감독의 유작. <바보들의 행진>의 속편 격으로 제작됐으며, 전편에서 입영열차에 올랐던 병태의 군대 생활과 제대 후 모습이 펼쳐진다. 영자 역의 이영옥을 제외하고, 다른 배역들은 대폭 물갈이됐다. 병태가 영자를 되찾기 위해 도심을 질주하는 순간에 펼쳐지는 서울의 풍경과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을 연상시키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