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캐릭터로 보는 사회문화사 안약이 필요 없었던 배우, “눈물의 여왕”, 전옥

by.최소원(한국영상자료원 연구원) 2009-01-16조회 3,400

함경남도 함흥 출생. “어렷슬 때부터 영화예술에 취미를 가지고 매양 어떠케 배우가 되어볼가 생각”(동아일보, 1928.4.14.)하던 전옥(본명: 전덕례)은 시집가라는 집안의 강요를 피해  오빠 전두옥의 도움으로 가출, 상경한다. 직업권투선수로 <풍운아>에서 나운규의 대역을 맡아 영화계와 인연이 있던 오빠 전두옥은 동생을 극동키네마사에서 제작 중인 <낙원을 찾는 무리들>(1927) 제작 합숙소에 데리고 갔다. 이 작품은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여배우 전옥의 탄생으로 화제가 되었다. 1927년 전옥은 제대로 된 연기를 배우게 해주었던 스승 나운규를  만나 <잘 있거라>(1927)를 시작으로 <옥녀>(1928), <사랑을 찾아서>(1928)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갑작스런 결혼과 함께 사라진 톱스타 신일선의 자리를 메웠다.

전옥은 또한 1928년 극단 화조회를 시작으로 토월회 단원으로 연극 무대에 섰는데 1929년 11월 <아리랑 고개>의 첫 지방공연에서 객석에서 날아든 돌을 맞고 부상당한 석금성 대신 주연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1930년대 중반부터는 가수로도 인기를 끌었다. 고려영화협회 창립작품 <복지만리>(1941) 등 영화활동도 계속했지만 대체로 연극무대에 주력했다. 주로 비극의 주인공을 맡아 ‘눈물의 여왕’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해방 직후 1946년 전옥은 두 번째 남편 최일과 함께 남해예능대를 백조가극단으로 개편해 <목포의 눈물>, <항구의 일야>, <눈 내리는 밤> 등의 비극 레퍼토리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전쟁 후 영화계로 돌아가 악극 레퍼토리를 영화화했지만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1960년대 전옥은 <고려장>(1963)과 <쌀>(1963)의 무당, <육체의 문>(1965)에서의 포주 역 등을 통해 강렬한 카리스마와 매력을 뿜어내는 독특한 배우로 돌아온다. 배우 강효실의 어머니이고 최민수의 외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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