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토요일인데도 시네마테크KOFA 1관은 들뜬 표정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난 20일 한국영상자료원은 9월의 <다시보기(replay)>(이하 <다시보기>로 정재은 감독의 2001년작 <고양이를 부탁해>(이하 <고양이>)가 상영됐다.
진행을 맡은 이동진 기자는 초롱초롱한 관객들의 눈빛을 보며 “오늘 작심한 분들이 많을 것 같네요”하고 웃음으로 운을 땠다. <고양이>는 <다시보기> 기획 단계부터 검토된 작품임에도 9월에서야 하게 됐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설렌 표정의 관객들이 좌석을 가득 메웠다. 영화 어떻게 보셨냐는 질문에 정재은 감독은 “영화 못 봤어요” 하며 그 이유는 “창피해서”라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감독은 ‘다시 체험하지 못할 시간’처럼 애틋하다‘며 내심 데뷔작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이 기자는 우선 <고양이>로 첫 연기생활을 시작한 배우 옥지영에게 ‘영화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에 대해 물었다. “제겐 너무 특별한 영화죠. 7년이 지났어도 ‘내가 연기할 수 있게 해준 영화구나’ 생각하면 특별히 소중해요.” 당시 정 감독이 무척 엄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많이 무서웠냐고 묻자 배우 이요원이 “최고였어요!”하고 대답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저는 오늘 영화 봤거든요. 어려운 동선이나 액션이 없는 영환데도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어요. 그 과정을 저만 알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힘들었어요.” 하고 푸념을 해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이 기자는 <고양이>의 빛나는 명대사들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러면서 영화 후반부에 태희가 주상에게 남기는 ‘니가 왜 그렇게 나한테 화가 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게 단지 나 때문만은 아니겠지 어쨌든 화풀어.’하는 메시지에 대한 에피소드를 물었다. “현장 스텝과 싸우고 나서 나온 대사라던데요?” 하고 묻자 정감독은 흠칫 놀라며 그런 후일담은 어디서 듣냐고 확인한 다음 (이에 이동진 기자는 “영화 기자를 오래하다 보면 모르는 이야기가 없다”고 답했다)그 숨겨진 비화를 공개했다. “<고양이>는 첫 영화여서 정말 몰입을 많이 했어요. 최선을 다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배우나 스탭들이 빈틈을 보이면 되게 서운하고 속상했죠. 특히 스탭들은 이미 영화를 많이 하던 분들이라 <고양이>가 많은 영화들 중에 하나였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영화 일반을 넘어서는 요구를 할 때 불편해 하셨어요. 어떤 장면을 촬영할 때였는데 촬영감독이 계속 앵글이 이상하다면서 카메라 모니터를 가리고 찍으시는 거예요. 잘 보고 찍어도 잘 찍을까 말깐데 너무 화가 나서 머리가 돌 뻔 했어요. 그런데 말은 못했죠.(웃음) 단단히 삐쳐있었는데 말을 안하니까 촬영감독은 내가 왜 삐쳤는지도 몰랐어요. 그러다 어느 날 말하더라구요. "뭐가 화가 나셨는진 모르겠지만 제 잘못만은 아니겠죠. 그렇지만 화 푸세요." 하는 거예요. 그 때 말이 되게 와 닿았어요. 그 말로 마음이 녹았죠.”
이 기자는 영화가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좋은데 왜 흥행이 안됐을까 하는 예민한(?) 질문을 던졌다. 1000만 흥행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답변의 짐을 진 이요원씨는 ‘<고양이>에겐 상업성이 없었다’는 답을 냈다. “<고양이>는 자극적이거나 사람들이 좋아할 장면을 일부러 넣지 않았어요. 상업 영화는 흐름에 큰 관계가 없어도 흥행 때문에 넣는 장면이 많은 것 같아요.” 정감독은 “시나리오 쓸 땐 몰랐는데 나중에 ‘시나리오 작법’같은 책에서 보니까 비상업영화의 특징을 <고양이>가 다 따르고 있더라”며 의도한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엔 제가 찍는 영화가 어떤 영환지 잘 알지도 못하고 찍었던 것 같아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더라구요. 얼마 전 여성영화제 때 오랜만에 <고양이>를 다시 봤는데 문득 ‘내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만들 땐 거기에 꽂혀서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는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상업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라 더 그랬죠.”
이어서 정 감독은 <고양이 2>에 대한 희망과 포부를 밝혔다. “이 영화를 찍을 때가 제가 서른 살이었어요. 지금은 마흔을 바라보고 있고…. 그런데 지금 저는 스무살 때 느꼈던 격변만큼 더 큰 변화를 겪고 있어요. 그래서 10년이 더 지나 제가 오십이 됐을 무렵 이 시기의 이야기를 찍고 싶어요. 여자가 마흔 즈음에 겪는 갈등, 내용 등을 이 배우들과 다시 하고 싶어요.”
인터뷰 중 영화 마지막 장면의 트릭과 봉준호 감독과의 일화도 들을 수 있었다. “영화를 만들고 봉준호 감독님과 모니터 시사회를 했는데 감독님이 너무 허전하다며 비행기 날아가는 거라도 붙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런데 촬영해놓은 게 없었죠. 그래서 고민하다가 지영이 문자메시지 보내는 뒤로 비행기가 착륙하는 장면이 찍힌 게 있더라구요, 언뜻 보니 이륙하는 것 같아서 붙였어요.(일동 웃음) 다들 ‘그나마’ 끝나는 느낌이 든다고 하길래 결말을 그렇게 냈어요.”
<고양이를 부탁해>는 밀레니엄이 시작하는 즈음 *‘와라나고 운동’의 중심에 선 대표적인 성장영화다. 7년이 지났지만 탄탄한 구성과 세련미 넘치는 대사는 <고양이를 부탁해>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좋은 영화로 남아있는 이유를 알게 했다.
* 와라나고 운동 :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 다시 보기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