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 출판된 <뻥까오리 백작>은 한국액션영화계의 한 획을 그었던 박노식의 43년 영화 인생을 담은 자서전이다. 뻥까오리라니! 이게 도대체 뭔가 싶겠지만, 중절모자의 일본어 ‘나까오리’에 허세와 ‘뻥’을 좋아한다는 의미가 합쳐진 이 별명은 흰 양복, 흰 모자, 흰 구두를 좋아했던 박노식의 ‘사나이 가오’와 ‘마초 액션’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뻥까오리 백작’ 답게 박노식은 이 책에서 폐병으로 죽은 그의 첫사랑부터 영화 촬영 중 깡패들이 들이닥치자 칼로 자기 배를 찔러서 겁을 줬다는 등 수많은 무용담을 털어놓는다. 문체는 거칠지만, 입담 좋은 전라도 남자의 구수한 ‘그때 그 시절’이 아련하게 되살아난다. 여수에서 나고 자란 그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악극단 배우의 길을 걷는다. 1956년 이강천 감독의 <격퇴>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초기에는 주로 멜로드라마 주인공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60년대부터 액션 배우로 자리를 굳힌 그는 70년대에 들어서서 <인간 사표를 써라>와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리> 부제로 알려진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 등을 연출하며 액션 영화 감독으로 명성을 떨쳤다. 유행가도 걸쭉하게 잘 부르고, 부인 몰래 바람도 잘 피우고, ‘욱’하는 성질에 제 집 드나들 듯 경찰서를 오가며 집행유예를 많이 당해 <집행유예>란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삶 자체가 거칠 것 없는 마초 액션이었다. 거침없었고, 무서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유신 헌법 시행 후, 문예영화가 장려되고, 액션영화가 설 자리를 잃자 그의 거침없음도 세월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한국영화의 중흥과 쇠퇴를 같이 했던 배우, 그 화려했던 시간들과 순수 마초의 ‘허장성세 가오’를 영상자료실에 있는 <뻥까오리 백작>을 통해 느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