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봉은 1917년 함경도 함흥 출생으로 아버지를 따라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했고 1932년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1932)로 데뷔했다. 두 번째 출연작인 조선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이명우, 1935)에서 춘향 역할을 맡으면서 조선 최고의 영화 스타로 등극했다. 한국영화박물관에 전시 중인 문예봉의 피규어는 영화 <지원병>(안석영, 1941) 중 물레방아 옆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임자 없는 나룻배>, <춘향전>, <나그네>(이규환, 1937) 등을 통해 만들어진 “아담하고 깨끗한” 조선 농촌여성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함경도 사투리 억양과 투박한 목소리를 가졌지만 담담하게 인고하는 연기로 당대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문예봉은 “조선의 이리에 카타코(入江たか子)요, 조선의 뎃드릿히(Marlene Dietrich)요, 조선의 리샹란(李香蘭)”이라 불리며 일세를 풍미한 1930년대 최고의 배우였다. 1939년 고려영화협회와 전속계약을 맺고 <수업료>(최인규, 1940), <집 없는 천사>(최인규, 1941) 등에 출연했고, 군국주의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1948년 월북해 북한에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