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식모 삼형제>(김화랑, 1969)

by.박혜영(한국영상자료원 연구부) 2008-05-03조회 955

신상옥 감독의 58년 작 <지옥화>는 시골 총각 동식이 노잣돈을 강탈당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남대문 지게꾼의 푸념처럼 “눈 뜨고 코 베어갈 세상”의 집약판 서울역은 대낮에도 소매치기가 날뛰는, 치안이 무색한 무법 천지. 그럼에도 ‘그깟 징한 서울 신고식’이야 재수 없는 ‘놈’의 일, 뭔 대수겠는가. <식모 삼형제>(김화랑, 69년)의 첫 장면에서 식모 생활을 하기 위해 이제 막 서울역 광장에 발을 내디딘 젊은 여인들에게 서울역은 기대에 찬 조잘거림으로 넘쳐나는 곳일 뿐. 보따리 한 아름 가슴에 안고 두려움에 움찔거리는 것도 잠시, 서울역 광장에 쏟아져 나온 이들에게 서울은 마냥 희망의 도시였다. “눈 뜨고 코 베어갈”지언정 서울역이야말로 신문물이 넘쳐나는 근대화된 도시에 이르는 기회의 통로이자, 신세계로 통하는 관문이었던 것이다. 또한 일찍부터 거리로 내몰린 가난한 아이들이 구두닦이와 신문 배달을 하기 위해 하루하루 목청을 높이는 생활의 공간이기도 했다. 비록 현실이 <식모 삼형제>의 해피엔딩 보다 <영자의 전성시대>의 기구한 인생에 가까울지라도, 수많은 이들에게 당시 서울역은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매혹의 기표였던 셈이다.

2003년 12월 신축 역사가 완공된 후 서울역은 또 한 번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구 역사는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최신 시설로 세워진 신 역사 주변에는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사람들의 노잣돈을 강제로 뺏어가는 소매치기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의 서울역 광장은 온데간데없고, ‘여행과 쇼핑을 겸할 수 있는 복합역’이란 이름 하에 눈만 뜨면 사람들 스스로 제 주머니에서 기꺼이 돈 내주는 소비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경인선 3등석 매표구가 잊혀진 지는 벌써 오래고, 지하철, KTX는 더 빠른 속도로 서울을 메트로폴리탄으로 확장시켜 가고 있다. 분명 빨라졌다. 편리해졌다. 이제는 주렁주렁 보따리를 짊어진 사람도, 눈을 반짝이며 서울 풍경에 호들갑 떠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서울역 구 역사가 쉬이 잊혀질리 있나. 구 역사와 부대껴 온 근대의 시간은 여러 영화 속에서, 그 역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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