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김기영, 1978

by.전종혁(영화 칼럼니스트) 2016-12-14조회 6,049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스틸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 <하녀>(1960)나 <이어도>(1977)만큼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아니지만, 영화광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된 영화다. 특히 김기영 감독의 특별전, 회고전 등에서 김기영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나 엉뚱함, 직설적이고 반복적인 문어체 대사들(특히 ‘의지’라는 단어)로 주목을 받았다. 필자 역시 1990년대 후반, 이 영화를 처음 필름으로 접한 후 묘한 신비감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다. 훗날 모 영화 매거진에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특이한 전대미문의 섹스 장면을 논하면서,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를 꼽은 적이 있다. 주인공 영걸(김정철)이 다시 살아난 신라 시대 여인(이화시)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에서 일종의 페티시처럼 ‘뻥튀기’가 UFO처럼 날아다니는 상황을 묘사했다. 2000년대 김기영 영화의 재발견이 한참 유행일 때, 일부 사람들이 컬트라는 단어를 써서 이 영화의 정신분열증과 난해함을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김기영처럼 대중과의 접점이 있는 흥행 감독에게 컬트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는 늘 반감이 있었다. 영화를 좀 본 사람만 아는 감독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지적 허영으로 보였던 탓이다.

오늘날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를 다시 봐도, 독특한 스토리인 것은 분명하다. 이 스릴러는 확실히 최근 대중 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는 배짱이 있다. 타협을 모른다. 우연히 만난 여인이 음료수(환타)에 독을 타서 영걸과 동반 자살을 시도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영걸은 그녀의 나비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서 계속 기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한마디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셈이다. 의지만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노인(책 외판원)과 다투다가 죽이거나 동굴에서 발견한 여성 해골이 다시 살아나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또 이 박사(남궁원)의 조수로 들어가 일하면서 끊임없이 성과 죽음에 관련된 유혹을 받는다. 이렇게 영걸에게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영화의 불균질성으로 보였다. 즉 로빈 우드가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에서 영화를 만든 사람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사회, 문화의 영향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받은 결과 불균질한 텍스트가 된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시대의 현상을 독특하게 반영한 불균질한 영화로 다가왔다. 더불어 김기영 감독이 스스로 리비도를 통제하지 않은 취향의 영화가 분명했다. 영걸에게 신라 시대 여인이 느닷없이 동성동본을 논하거나 암에 걸린 경미(김자옥)가 안락사를 희망하거나 경미가 영걸의 잘린 머리(시체)에 키스를 하는 장면 등은 영화 자체적인 논리나 필요성보다는 다분히 감독의 결연한 의지나 영화에 현실(현대성의 흔적)을 새기고 싶은 욕망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다시 생각난 것은, 다소 엉뚱하지만 <내부자들>(2015)에서 안상구(이병헌)가 고독하면서 강렬하게 뜨거운 라면을 먹는 장면 때문이었다. 이병헌은 라면을 후루룩 먹으면서 엄청난 입김으로 최고의 리얼리티를 생산해냈다. 그처럼 영걸 역시 라면 신세였다. "하루 6번 먹어도 배고프다. 성가셔서 얼른 죽고 싶다"고 꽤 투정을 부릴 정도였으니까. 그의 가난한 집에는 매일 라면 봉지만 쌓여갔다. 젊은 대학생 영걸은 허름한 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그에게는 가족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1970년대 근대화/산업화의 시기, 이른바 전근대적인 가부장제의 몰락을 반영하듯 그의 집은 부재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1960년대 신상옥 영화에 등장했던 화목하고 이상적인 가족은 더 이상 없다. 이 공간에 괴물 같은 외판원과 해골 같은 유령(비인간적 존재)이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흔히 김기영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중산층 가정과는 거리가 먼 하층민의 삶을 보여준다. 반면 이 박사의 집은 <화녀>(1971), <육식동물>(1984) 등처럼 다소 과장된 분위기로 중산층의 화려한 미장센이 즐비하다. 총천연색이 그의 집을 수놓고 있다. 이 집에서 생산되는 빛은 분명 영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영걸은 이 박사의 집에서 퇴행하듯 엄청난 식욕만 자랑하고 있다(라면 대신 서구식 식사에 집착한다). 이 박사의 부탁으로 경미를 성적으로 만족시켜야 할 과제를 부여받지만, 정작 아무것도 못한다. 중산층 가정 안에서 영걸은 사실상 거세된 남자에 가깝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으레 전복적인 여자 캐릭터들에 초점이 맞춰진다. 남성 중심 사회에 균열과 혼란을 일으키는 존재들이다. 그런 맥락에서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에 등장하는 여성들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영걸 캐릭터는 남성의 시선으로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든다.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들’에게 죽음(동반 자살)의 대상이 되는 그는 “번번이 왜 내가 목표가 되지?”라고 반문한다. 그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그는 참 억울한 남자다. 영걸은 지속적으로 현실과 판타지(상상)를 오간다. 이 영화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그의 망상의 산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다. 그럼에도 그가 처한 현실적 고통은 오늘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 1978년 영화지만 매번 볼 때마다, 더 리얼하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판타지나 스릴러 구조가 더 눈에 들어오지만, 몇 번 본 후에는 형식보다는 영화의 현실(시대상)이 가슴을 넌지시 파고든다. 그렇다고 김기영 감독이 미래를 예측했다거나 혹은 시대를 앞섰다고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비주류(소외된) 남성을 억압하는 정치경제적 현실이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듯 퇴행하고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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