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여자가 더 좋아: 12월의 영화Ⅰ 김기풍, 1965

by.박유희(영화평론가) 2020-12-01조회 4,026
여자가 더 좋아 스틸
<여자가 더 좋아>는 1965년 6월에 개봉하여 약 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해 국산영화 흥행 2위에 올랐던 코미디 영화다. 그러나 대중이 이와 같이 호응했음에도 이 영화에 대한 당시 저널리즘과 평단의 반응은 혹독했다. 이 영화에는 “C급 저속 넌센스 소극”이라는 말이 붙어 다녔고,1) 청소년 범죄를 부추기는 영화로 지목되었으며,2) 주제가는 「동백아가씨」가 왜색조로 금지될 때 저속하다는 이유로 함께 금지되었다.3) 이 영화를 제작한 이들은 “바로 오늘만을 살고 스스로 묘혈을 파는 어리석은 장사치의 대표적 유형”이자 심지어 ‘영화반역자’라고 비난받기도 했다. 이때 이 영화의 대척점에 놓인 영화들은 <자유만세>(1946), <성벽을 뚫고>(1948), <순교자>(1964) 등인데, ‘민족의식’과 ‘저항정신’을 지닌 ‘세계시장을 지향하는 좋은 영화’로 일컬어졌다. 그러니 <여자가 더 좋아>는 그 반대의 ‘나쁜 영화’인 셈이었다. 
 
앙리 베르그송이 웃음을 논하면서 희극과 예술일반을 비교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일반적으로 예술은 비극이고, 희극은 비극보다 열등한 것으로 오랫동안 간주되어왔다. 식민지에서 분단으로 이어지며 근대 계몽에 대한 욕구와 당위가 비등한 데다 이분법적 인식이 공고했던 한국에서 그러한 경향은 한층 더했다. 검열에서 코미디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했다는 증언은 이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경직된 규율의 눈으로 바라볼 때 코미디는 말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말할 가치도 없는 것, 그야말로 난센스(nonsense)였던 것이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것에도 위계가 있었다. 비현실적이고 개연성 없고 우발성과 과장으로 이루어져 웃음을 유발한다고 해도 마지막에 계몽이나 위로로 귀결될 때에는 희극으로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 웃음이 계몽에 닿으면 풍자가 되고, 위로에 닿으면 유머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4) 그리고 그러한 웃음은 미래지향적이고 건전하며 명랑한 웃음으로 웃음 중에서는 높게 평가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엎치락뒤치락’ 소동으로 끝날 때, 말도 안 되는 일이 말도 안 되는 상태로 끝난다고 보일 때 그것이 유발한 웃음은 “최저속선까지 철저하게 타락시킨 웃음”5)으로 질타되었다. 그리고 그 영화는 희극에 못 미치는 ‘저속한 C급 소극’으로 평가되었다. 바로 그 대표적인 영화가 <여자가 더 좋아>였다.
 

 
이 영화를 시종일관 끌고 가는 것은 코미디언 서영춘의 페르소나다. 1960년대 초 라디오 방송에서 만담으로 유행어를 연달아 만들어내며 인기몰이를 시작한 서영춘은 1965년에 영화 세편에 출연한다. <청춘사업>(4월 개봉), <여자가 더 좋아>(6월 개봉), <출세해서 남 주나>(11월 개봉)가 그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가 <여자가 더 좋아>였다. 제목에서 할리우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1959)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1960년대 후반 한국영화계에 ‘여장 남자 코미디’ 유행을 견인한다. 이 영화 이전에 ‘여장 남자 코미디’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1년에 <뜨거운 것이 좋아>가 한국에서 개봉하여 크게 흥행하고 1962년 마릴린 먼로의 돌연한 죽음으로 롱런을 하면서 <뜨거운 것이 좋아>의 번안영화가 제작되었다.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남자는 안 팔려>(1963)가 그것인데 눈에 띄게 관객을 동원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2년 후에 <여자가 더 좋아>가 나와 크게 흥행하여 ‘여장 남자 코미디’의 유행을 촉발한 것이었다. 

이 영화에서 서영춘이 분한 주인공 규철은 여자직업기술학교에 출강하는 음악 강사다. 그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체모도 적은 데다 바느질과 요리를 즐기고 말도 얌전하게 하며 입을 가리고 웃는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특징으로 인식되는 이러한 행동 때문에 그는 ‘여성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기술학교 학생 영숙(최지희)과 엄연히 연인 사이다. 그는 결혼하기 위해 영숙의 부모님을 만나는데, 의학적으로 여성에 가까운 중성이라는 이유로 파혼을 당한다. 영숙은 박문기(남궁원)라는 밴드마스터와 곧바로 결혼하고 이에 상처받은 규철은 복수를 결심한다. 그는 여장을 하고 규화라는 이름의 식모로 영숙의 시집에 들어간다. 영숙의 시아버지(김희갑)는 성정이 ‘괴벽스러워’ 식모를 붙어있지 못하게 만드는 영감인데 규화의 ‘서비스’에 만족하여 규화와 잘 지낸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영숙은 규화(규철)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리지만 규화는 영숙의 남편 박문기와 악단주 선우광(양훈)까지 매혹한다. 규화(규철)가 불행한 영숙을 보며 자신의 복수에 대해 회의할 때쯤 선우광의 구애로 정체를 들킨다. 선우광이 규화(규철)에게 수작을 걸 때 현장을 덮친 선우광의 부인 때문에 그는 슈미즈 바람에 가발이 벗겨진 채 마침 나들이에서 돌아오던 영숙과 문기, 영숙의 친정어머니와 시아버지까지 모두 보는 가운데 뛰쳐나가게 되는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프린트에서는 이 상태로 영화가 끝난다. 그런데 시나리오 상으로는 규철이 성전환 수술을 하여 결국 여성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와 같이 여장 남자로서 남성과 여성을 넘나드는 전개는 서영춘의 규정을 거부하는 ‘난센스 페르소나’를 통해 이분법을 끊임없이 교란하며 웃음을 유발한다. 서영춘의 외양과 태도는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규정할 수 없는 분방한 모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의 행동거지와 거기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는 남녀로 분리된 젠더박스에 진동을 일으키고 균열을 낸다. 이는 1960년대 말 구봉서가 출연했던 ‘남자 시리즈’(<남자 식모>, <남자 미용사>, <남자와 기생>)와 비교해 보면 보다 명확하다. 이 영화들에서 구봉서는 깔끔하고 자상한 남자로서 여자 흉내를 잘 낼 뿐이지 결국 남자다. 여자로 변장했을 때의 모습과 남자로서 연인과 있을 때의 모습이 확연히 구분되는 데서 젠더 이분법이 잘 드러난다. 그가 여장을 통해 수행하는 것은 발언권이 세진 여성들과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성들을 동시에 비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영화들은 가부장적인 젠더 질서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안착한다. 이와 달리 <여자가 더 좋아>에서 서영춘이 표상하는 것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독자적 섹슈얼리티다. 이에 대해 박선영은 “서영춘의 그로테스크한 신체는 회복되지 않은 남성성과 포기되지 않은 여성성의 기묘한 공존을 시각적으로 전시하는 것”이라고 요약한다.6)
 

그런데 따져보면 규철은 영숙과 혼인신고만 안 했지 부부와 다름없이 지냈던 것으로 나온다. 그는 불량배를 만났을 때 그들을 물리적으로 물리칠 완력은 없지만 기지와 헌신으로 여성들로부터 떼어놓는다. 그가 다른 남자들처럼 밖으로 나돌지 않고 술 담배도 입에 대지 않기에 영숙은 그를 믿고 좋아했던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남성으로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음에도 그의 취향이나 태도가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것이라 하여 그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너는 남자니? 여자니?’ 라는 질문 속에서 경계의 지점은 용납될 수 없기에 그는 자신 그대로 사회에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성전환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마지막에 제리(잭 레먼)가 가발을 벗으며 “나는 남자야. I’m a man”라고 고백하지만, 필딩이 “완벽한 사람은 없지. Nobody is perfect”라고 받는 것과 갈라지는 지점으로, 당시 한국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난센스의 한계를 보여준다. 당대에 웃음으로 봉합될 만한 수위 차원에서 결말을 생각해보면 규철이 성전환을 해야 영숙이 오해를 받지 않고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규철에게 매혹되었던 모든 인물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래서 규철의 성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다른 인물의 안전과 그에 따른 관객의 안심을 위한 사회적 거세에 해당한다. 

이 영화는 1983년에 더스틴 호프만이 여장 남자로 분한 영화 <투시 Tootsie>(1982)가 흥행하면서7) ‘남자 시리즈’의 심우섭 감독 연출로 리메이크된다.8)

이 영화에서도 서사의 전개는 유사한데 결말은 오히려 더 계몽적인 양상을 띤다. 주인공 유경진(강태기)이 아파트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젊은 부부들에게 건전한 생활을 유도하다 표창장까지 받고 여성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1960년대보다 1980년대가 민주적으로 진보했다고 여겨지나 서영춘이 보여준 난센스와 같은 경계적 특이점이 설 자리는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서영춘은 <웃으면 복이 와요>(1969~1985)가 프로야구 붐으로 돌연 폐지9)된 이듬해에 간암으로 타계했다.10) 그는 한동안 잊혔다가 21세기에 대중문화 장르와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면서 비로소 ‘저질’에서 벗어나 ‘독보적인 코미디언’으로 재평가된다. <여자가 더 좋아>가 ‘말할 가치도 없는 난센스 소극’에서 벗어나, 난센스라는 요동으로 경직된 시스템에 파문을 일으키며 젠더 이분법을 일찍이 뒤흔든 영화로 재발견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재평가와 맥을 함께 한다. 
 

1) 「만화조 넌센스 소극」, 《조선일보》, 1965.7.15.; 「소극붐 수준급 이하의 넌센스들」, 《조선일보》, 1965.11.11.;  「영화 황량한 질 안고 과잉생산」, 《동아일보》, 1965.12.27.
2) 「자극적인 영화제목과 소년범죄」, 《조선일보》, 1965.8.24.
3) 「왜색조를 추방」, 《조선일보》, 1965.9.7.; 「방송음악 日色調 일소키로」 , 《동아일보》, 1965.9.11.
4) 웃음의 유형에 대해서는 박유희, 「총론: 웃음의 서사와 한국 대중문화」,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4.코미디』, 이론과실천, 2013, 22-23면. 
5) 「만화조 넌센스 소극」, 《조선일보》, 1965.7.15.
6) 박선영, 『코미디 전성시대』, 소명출판, 2018, 529면. 
7) 「추석 극장가 외화가 압도」, 《동아일보》, 1983.9.20.
8) 「방화에도 남성 치맛바람 강태기 여장하고 김환진과 주연」, 《경향신문》, 1983.6.15.
9) 「프로 감축 항의 MBC 코미디언들 파업」, 《조선일보》, 1985.4.25.
10) 「코미디언 서영춘씨 별세」, 《매일경제》, 198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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