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면 이래도 살겠어요?” 이것은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과 남편 고향에 살러 왔다가 아들마저 유괴로 잃는 여자의 이야기, <
밀양>(
이창동, 2007)의 카피 문구였다. 수난이 많았던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우리는 종종 이 질문과 마주친다. 그리고 이 질문을 가지고 한국영화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
이 생명 다하도록>(
신상옥, 1960)을 만나게 된다. ‘이 생명 다하도록’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60년에 개봉한 영화 <이 생명 다하도록>은 한운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한운사의 첫 장편소설이었는데 ‘방송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라디오에서 낭독되면서 유명해졌다. 한국전쟁 이후 라디오가 가장 대중적인 매체로 부상하면서 방송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청실홍실>로 시작된 라디오 드라마 붐은 방송극 원작의 영화화를 견인했고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 한국영화 붐에 촉매 역할을 했다. 그 중 하나가 한운사의 <이 생명 다하도록>이었다. 이 소설은 박격포탄 파편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되고 전란을 거치며 두 딸마저 잃은 김기인 대령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김 대령을 간호하며 그 옆을 지킨 부인의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한국전쟁으로 과부만 30여만 명이 발생했음에도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통로가 없던 상황에서 과부나 진배없는 기구한 여성 화자의 고백은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일기의 고백체는 라디오에서 낭송되기에도 적합한 것이었다. ‘방송소설’의 인기 덕에 이 이야기는 영화화가 결정되었고, 개봉 시기에 맞춰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1), 한운사는 인기 방송작가로, 신상옥 감독은 신필름 시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었다.
이 영화는 “이 한편의 영화를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모든 전몰장병과 상이용사, 그리고 그 유가족 앞에 삼가 바친다.”는 헌사로 시작한다. 시작부터 전후 재건의 이념과 논리를 강력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그리고 바로 1949년 태백산 토벌 작전 중에 김 대위(
김진규)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는 장면이 제시된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 ‘선경 엄마’
(최은희)는 의사에게 남편의 목숨만이라도 살려 달라 애원한다. 담당의사가 ‘그나마 생명이라도 살리는 것이 인도적이냐, 그냥 죽이는 것이 인도적이냐?’고 고민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김 대위가 성기능을 상실했고 이로 인해 부부의 삶이 위태로울 것임을 말해준다. 이후 영화는 부부 갈등을 축으로 하는 멜로드라마로 전개되는데 한국전쟁은 그 갈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장애인 남편과 슬하에 두 아이를 둔 주부로서의 삶만으로도 고달픈데 전쟁이 일어나자 선경 엄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것은 물론 적치를 피해 군인 남편을 피난시키고 그에게 삶의 동기도 부여해야 하는 사명까지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부부 갈등을 넘어 전후 재건의 문제로 확장되며 1950년대 말의 현실에 보다 적극적으로 연루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동시기에 많이 나왔던 과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멜로드라마의 계보에 놓이면서도 다른 영화들보다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띤다. 120회에 걸쳐 낭독되었던 소설이 109분의 영화로 만들어지는 데 따른 축약과 변용은 이 영화가 지닌 정치성의 좌표를 드러낸다.
소설은 일기 형식이므로 시간 순에 따라 전개되면서도 수도육군병원 시대, 서울대학부속병원시대, 천호동시대, 남한산성시대, 서울 수복, 대구 피난시대, 부산 피난시대, 환도 이후로 공간 별로 나뉘어 서술된다. 따라서 원작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부터 한국전쟁의 전개, 그리고 전후 복구의 과정을 소상하게 들려주며 한국전쟁에 대한 르포르타주의 성격을 지닌다. 영화에서는 ‘수도육군병원―피난지 부산―환도’로 압축되며, 사건 또한 삭제되거나 축약되는데 그러면서 멜로드라마로서의 애정 갈등에 초점이 놓인다. 삭제되거나 축약된 부분이 주로 전쟁의 실상에 대한 세부적인 목격담이나 현실 비판이라면, 확장과 변용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부분은 선경 엄마와 미스터 조의 인연이다. 원작에서 선경 엄마가 미스터 조를 만나는 것은 대구 국제시장이고, 부산에서는 ‘양부인’이 된 여고 동창을 만난다. 대구 피난시대는 전체 분량의 9분의 1에 불과하다. 그리고 자살하면서 선영 엄마에게 유산을 남기고 가는 것은 부산에서 만난 동창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미스터 조를 부산 국제시장에서 만나고, 그와의 우정이 부부관계의 핵심 장애가 된다. 그러면서 미스터 조의 여동생 영선이 ‘양부인’인 것으로 변용된다. 원작에서는 미스터 조와의 인연과 양부인의 자살은 별개의 사건이므로 상관이 없는 것과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영화에서 영선이 자살하는 데에 오빠인 미스터 조(
남궁원)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영선(
정성숙)은 여관방에서 선경을 돌보아주던 친절한 여성으로 오빠를 만나기 전까지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오빠를 만나고 그가 양부인이 되었다고 비난하자 자살하고 만다. 그녀는 유서에서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떳떳할 줄 알았는데, 오빠를 보고나서 ‘똑바로’ 보게 되었다.”라며, “뒷골목에서 ‘떳떳이’ 살지 못할 운명”이기에 죽는다고 이유를 밝힌다. ‘똑바로’, ‘떳떳이’라는 부사는 오빠라는 존재 자체가 요구하는 기준이다. 가부장적 규범을 따르자면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오빠는 여동생을 지킬 의무가 있었지만 전쟁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타락한 여동생은 ‘썩어빠진 변명’이라는 오빠의 비난 앞에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온전히 질 수밖에 없다. 미스터 조 남매의 행동은 무력이 전면화되는 전쟁을 겪으며 전통적인 가부장적 윤리는 무너졌음에도 오히려 그 규범은 강하게 요구되고 결과적으로 그 수행의 책임은 여성에게 돌려지는 부조리를 보여준다. 이는 현모양처의 도리로서 ‘남성 능력을 잃은 남편’을 지키기 위해 공적인 영역에 끌려나오고 사회적 노동까지 전담해야 하는 선경 엄마의 모순된 처지와도 겹친다.
더 문제적인 것은 결국 영선이 죽으면서 남긴 돈으로 김 대위는 전쟁과부를 위한 시설을 운영하게 됨으로써 재기한다는 점이다. 영선의 죽음은 <
쌀>(1963)에서 오빠(신영균)의 사업을 위해 여동생 영란이 술집 여자가 되었지만 사업이 완수된 이후에 슬그머니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나, 상이군인(남궁원)은 5.16을 통해 복귀하는 데 반해 첫 장면에서 그를 타일렀던 술집 여자들은 서사에서 사라지는 것과도 같다. <
로맨스그레이>(1963)에서 바걸인 만자(최은희)와 보영(조미령)이 근대화의 역군인 젊은이(신영균)를 위해 부산행 기차를 타고 떠나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 그러나 죽거나 떠나야했던 여성들과 달리 선경 엄마는 상이군인 남편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므로 ‘성생활’을 포기하고 남편을 선택함으로써 환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쟁으로 인해 남성 인력은 부족해졌으나 재건은 꼭 해야 하는 전후 상황에서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헌신의 이념과 논리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1959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960년 7월에 개봉하였다. 이 기간은 민주화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폭발했던 4.19를 가로지른다. 그런데 이 영화는 5.16 이후의 경제 근대화에 보다 어울리는 이념과 논리를 담고 있다. 그리고 방송소설에 이어서 이 영화 또한 크게 흥행했다는 것은 그러한 이념과 논리의 지향점이 대중의 기대지평과 조응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렇게 볼 때 이 영화는 1960년대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징후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것이 이 영화에서 처음 드러난 것은 아니다. 신상옥 영화가 1958년 <
어느 여대생의 고백> 이후 <
악야>(1952)나 <
지옥화>(1958) 유의 전위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전후 재건과 경제 근대화에 필요한 계몽 논리를 멜로드라마에 녹여내어 감성적으로 설득하는 노선을 선택하고 그것이 연이어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와 같이 시대적 요청을 선취했기에 신상옥 감독은 <
상록수>(1961), <쌀>(1963)로 이어지는 영화를 먼저 만들 수 있었고 1960년대 내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1) 한운사, 『이 생명 다하도록』, 삼한출판사, 1960.6.
2) 박유희,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책과함께, 2019, p.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