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각의 함정>(1974)은
이만희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제작 당시 개봉하지 못했던 <
휴일>(1968)과 같은 모더니즘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이만희 감독의 장기는 장르 영화였다. 그를 1960년대의 대표적 감독 중 하나로 만든 <
다이알 112를 돌려라>(1962)는
최무룡과
문정숙을 주연으로 내세워 만든 스릴러물이었고, 이만희 감독을 한국 영화 산업 내에 각인 시키는 계기가 생긴다.
이 영화는 1969년에 <
여섯 개의 그림자>라는 작품으로 리메이크가 된다.
윤정희,
신성일,
남궁원,
허장강 등 당대 최고의 스타시스템을 가동한 야심작이었고, 비평과 흥행 면에서도 성공을 거둔다. 두 작품 중 현존하는 것은 <여섯 개의 그림자>인데 한국영화의 전성기였던 60년대가 저물어 가는 시기에 만들어졌지만 장르영화를 이끌어 가는 완숙미를 엿보기에는 충분하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리메이크를 시도한 작품이 <삼각의 함정>(1974)이다.
김기영 감독이 <
하녀>(1960) 이후 <
화녀>(1971), <
충녀>(1972), <
화녀82>(1982)로 자신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사실은 잘 알려진 편이다. 생전에 김기영 감독을 만났을 때 왜 이렇게 리메이크를 했는지 응당 물어볼 수밖에 없었던 질문에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제작자들이 원했고, 그게 돈이 되는 거였다는 식으로 답을 한 기억이 또렷하다. 1970년대의 한국영화는 유신시대의 등장과 함께 검열과 통제에 의한 자기 폐쇄성의 몰락을 걷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극장에서 상영할 해외영화 수입권을 얻기 위해 속성으로 한국영화를 제작하였고, 그 결과 속류와 아류가 판을 치는 시대가 열렸다.
<삼각의 함정>도 이러한 시대성을 피해가기는 어려웠다. 이만희 감독의 연인이었던
문숙을 포함하여 상국 역의
오지명, 영일 역의
유장현 그리고 두 남자를 등쳐먹으려고 하는 건달 역의 춘호 역의
백일섭은 당시에는 유명세와는 거리가 있었다. 영화의 장면들이 넘어가는 부분이나 연기를 보여주는 부분에서도 공을 들이기보다는 대략적으로 넘어갔다는 인상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70년대 이만희 영화 중 <삼각의 함정>을 고른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1970년대가 한 감독, 혹은 한 작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만희 감독은 같은 해에 <
들국화는 피었는데>, <
태양을 닮은 소녀>, <
청녀>라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의 말년이기도 했던 이 시기에 얼마나 빠르게 영화를 제작했는가를 숫자만으로도 짐작할 수가 있다. 그 중 <청녀>는 <하녀>나 <화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하지만 제목에서는 의식한 흔적이 보인다.) 앙드레 지드의 원작 <전원교향곡>을 한국의 섬으로 옮겨와 만든 일종의 문예영화였다. 순수한 영혼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원작 소설을 근간으로 섬을 돌며 사람들을 돌보는 의사와 한 소녀의 사연을 지고지순하게 보여준다.
1970년대는 이러한 시대였다. 한쪽에서는 문예영화라는 이름으로 작품성을 과잉되게(때로는 신파조로) 강조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영화수입권을 따내기 위해 속성을 제작되는 영화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필자에게 제시된 <청녀>와 <삼각의 함정> 중 <삼각의 함정>을 고른 것은 이 작품에 이만희 감독의 특징이나 관심사가 더 들어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완성이 된 이만희 감독의 자기 복제는 출발점이 되는 <다이알 112를 돌려라>는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알프레드 히치콕의 <다이알 M을 돌려라>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어떤 면에서 이식된 영화라고 할 수 있고, 이만희 감독 뿐만 아니라 1960년대에 장르적 탐구를 한 주요 감독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할리우드 혹은 일본 그리고 간헐적으로 유럽 영화를 어떻게 한국적인 이야기로 옮기는가 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였다. 히치콕의 영화가 아내를 청부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운 남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듯이, 이만희가 만든 세 편의 영화는 한 여성을 둘러싸고 그녀의 돈을 갈취하려는 남성들의 욕망과 범죄가 이야기의 얼개를 이룬다.
반복된 욕망과 범죄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지숙은 밤중에 집으로 오던 중 건달 춘호에게 추행당할 위기에 처한다. 지나가던 영일이 이를 구해준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런데, 이전에 자신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임신을 시킨 상국이 출옥을 하면서 지숙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지숙은 남편의 유산을 요구하는 상국을 기차에서 살해하고, 영일과 결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지숙의 행동은 더 큰 위험을 가져온다. 모든 상황은 상국과 영일 그리고 춘호가 벌인 음모였고, 영일은 그 과정을 목격했다며 협박을 가한다. 이어지는 춘호의 협박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상국이 돌아오면서 세 남자와 한 여자를 둘러싼 욕망의 드라마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서로가 물고 물리는 연쇄적인 파국과 그 안에 번뜩이는 인간의 욕망은 이만희 감독의 영화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1968년에 제작되었지만 오랫동안 창고에 잠들어 있다가 2005년에 발굴 및 공개가 된 <휴일>은 표면적으로 보거나 스타일상으로는 <삼각의 함정>과 완전히 다른 영화 같지만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 상통한다. 한 여성의 임신에 대한 이야기, 친구의 돈을 훔쳐 도망치는 주인공 허욱의 이야기에 다뤄지는 인간의 탐욕과 집착 그리고 일요일이라는 하룻 동안의 이야기이지만 교회의 종소리가 들릴 때에도 이 세계에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허무의 인식에 이르기까지 이만희 감독의 영화는 모던한 영화에서든, 장르적 영화에서든, 걸작에서든, 장르의 답습에서든 반복적으로 곰씹는 세계였다.
<휴일>의 주인공 허욱이 수술을 위해 훔친 돈으로 여자 친구에게 가지 않고 술집에서 놀아나는 기이한 장면은 비상식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비이성이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성을 건드리는 기이한 인간의 행적이었다. <삼각의 함정>에서도 상국의 집착과 광기 그리고 이러한 범죄에 동참했다가 지숙을 보호하려고 변모하는 영일의 모습은 악당들의 세계라기보다는 일상의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 군상에 가깝다. 그 가운데 폭력과 착취를 당하는 지숙이 기차 안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상국을 살해하는 장면은
최동훈 감독의 <
타짜>(2006)를 미리 선취하면서 결혼이라는 새로운 욕망에 눈이 먼 인간의 이중성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5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걸작과 범작을 오갔지만 이만희 감독이 항상 중심에 두었던 것은 욕망에 번뜩이는 인간의 변모였고, <삼각의 함정>에서도 서로가 뒤엉킨 욕망의 추격전을 살펴 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