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층? 떨어져 죽기 편리하겠다. 꺄르르.” 시골을 떠나 친구와 함께 서울로 향하던 명자(
윤여정)는 서울에 31층짜리 빌딩이 있다는 얘기에 그렇게 말한다. 당시 충무로에서 이른바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라는 흐름 안에서 이제 막 상경하여 서울의 고층빌딩 앞에 주눅 든 ‘시골 여자’라는 전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거기에는 이후 김수현의 TV 드라마를 지나 최근 <
죽여주는 여자>(2016)와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그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배우로서의 어떤 불균질한 비범함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당대의 표현주의 거장
김기영 감독과의 만남으로부터 비롯됐을 것이다. 1966년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윤여정에게 바로 <
화녀>(1971)는 25살의 나이의 영화 데뷔작이다. 순박했던 시골 처녀 명자가 가정부로 들어간 그 집에서 남편(
남궁원)과 불륜을 저지르고, 결국 임신과 낙태 끝에 그 집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당시 흥행 부진으로 고민하고 있던 김기영 감독을 기사회생시켰고, 놀랍게도 윤여정은 이 데뷔작으로 대종상, 청룡상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윤여정의 시작’을 알고 싶다면, 굳이 이 영화가 데뷔작이어서가 아니라, 지난 50여 년 동안 윤여정 이미지와 스타일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너무나도 중요하다.
지난 4월 「씨네21」에서는 창간 22주년 기념으로, 영화인 2백여 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영화 최고의 여성 캐릭터’ 설문을 진행했다.
박찬욱 감독 <
친절한 금자씨>(2005)의 금자(
이영애)와
봉준호 감독 <
마더>(2009)의 엄마(
김혜자)가 공동 1위였고,
김기영 감독 <
화녀>(1971)의 명자(
윤여정)는 10위였다. 김기영 감독의 또 다른 작품 <
하녀>(1960)의 하녀(
이은심)는 4위였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도 영화감독과 영화평론가의 의견이 의미 있게 갈렸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영화감독은 <친절한 금자씨>를, 영화평론가는 <마더>를 지지하는 형국이었다. 마찬가지로 김기영 감독의 필모그래피로 보자면 영화감독은 <화녀>에, 영화평론가는 <하녀>에 손을 들어주는 양상이었다. 그 경계를 가르는 지점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거의 논문 한 편을 써야 할 정도일 텐데, 그를 거칠게 정리한 한 설문자는 이렇게 비교했다. “<하녀>의 의미나 스토리보다 <화녀>의 재미와 스타일에 더 끌린다.” 그리고 또 다른 설문자는 이렇게도 말했다. “배우로서 윤여정만의 독창적 스타일은 <화녀>로 시작하여 <
충녀>에서 완성됐다.”
김기영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
하녀>(1960)로부터 뻗어 나간 여(女) 시리즈는 <하녀>를 포함해 총 5편이다. <하녀>를 시작으로 <
화녀>와 <
충녀>(1972)까지 3부작이라 할 수 있다면, 기본적으로 모두 <하녀>의 변주인 가운데 그를 70년대의 사회현실에 맞게 바꾼 것이 <화녀>이고, 나중에 거의 같은 내용으로 <
화녀82>(1982)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충녀>를 리메이크한 것이 <
육식동물>(1984)이다. 60년대의 시작이었던 <하녀>로부터 거의 10년 뒤에 만들어진 <화녀>에는 당시 산업화와 경제개발에 대한 비판적 요소가 강하다.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하는 여자들, 문화예술계로 진입하려는 여자들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한없이 적극적이다. 김기영 감독 특유의 원시성에 대한 탐닉이 변화하는 세상과 맞물리는 것. 특히 도시 속의 양계장이라는 설정 아래 급기야 사람의 시체를 닭의 사료로 이용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충격적이다. 그때 명자의 대사도 압권이다. “사료는 역시 동물성이 최고야. 어제 먹이가 좋았는지 오늘 달걀은 크네.”
불륜 이후, 갑자기 죄를 지은듯한 표정으로 욕조에 담긴 물을 손으로 퍼서 마시고, 급기야 집의 부인(
전계현)과 함께 낙태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마음이 바뀌어 달아나듯 철문을 흔들다 쓰러지는 장면은 별다른 대사 없이도 급박한 감정의 전이가 일어난다. “이 집 남자는 애를 배게 하고 이집 여자는 애를 떼게 하고 내 몸을 장난감처럼 다룬다”고 항변할 때도 오직 그녀만의 화법과 정서가 발생한다. 영화 후반부에 다시 만난 인력소개소 직원에게 “그전의 내가 아냐”라고 말할 때처럼 명자, 아니
윤여정은 같은 영화 안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등장한다.
김기영 감독 특유의 독창적인 표현주의 세계 안에서 파격적인 상황설정과 비일상적인 대사, 그를 넘나드는 욕망의 지도는 윤여정의 힘을 빌어 완성된다. 어쩌면 그로부터 10년 전 <
하녀>를 만들던 당시에도 윤여정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녀를 캐스팅하지 않았을까.
<
파계>(1974) 연출부로 일하며
김기영 감독과 인연을 맺은
유지형 감독은 그와의 인터뷰를 담은 「24년간의 대화」의 마지막 에필로그를 “김기영 감독님의 괴물”이라고 시작한다. 그렇게 <
화녀>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서울 주자동 골목에 2층 양옥을 구입했는데, 흉가여서 시세보다 싸게 구입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흉가에 사는 거구의 영화감독이라. 「이영일의 한국영화사 강의록」에서 영화평론가 이영일도 “김기영은 괴팍스러운 사람이다. 한국영화사에 있어서 다소 이색적이고 이질적인 감독”이라며 “자기가 생각하는 주제를 결코 미화하지 않는다. 그는 과학자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처럼 노골적으로 적나라하게 인간을 바라보는 사람은 국내외에 드물다”고 썼다. 말하자면 <화녀>는 괴물 감독과 괴물 배우, 달리 말해 당대 가장 독창적인 감독과 배우가 만나 빚어낸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