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한국영화는 지난 시절 유행했던 멜로드라마의 감정적 흐름을 딛고 조금씩 변화하는 중이었다. 전통 신파의 줄기에 미묘하게 균열이 생긴 것이다. 195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끌었던 감정 주도적 드라마의 원형은 새로운 10년을 맞아 사실적이고도 사회 반영적인 태도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작은 틈새의 움직임은 서서히 우리 영화 전반으로 확대되어 갔다. 영화 <
마부>(
강대진, 1961)의 주인공 춘삼(
김승호)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소개하는 지표적 인물이라 부를 만한 캐릭터다. 가업을 이어서 마부로 살아가는 이 인물은 홀로 자식 넷을 건사하며 겨우 살림을 꾸려간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변화하는 도시 ‘서울’에서 그는 기어이 살아남고자 한다. 그가 도시의 하층부를 끈질기게 헤매는 것은 모두 ‘가족’ 때문이다.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끈질긴 생명력의 뿌리를 지금 내려야만 한다. 춘삼의 다섯 가족은 그렇게 가난하지만 암울하지는 않은,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일상을 이어간다.
춘삼을 주축으로 가족들의 이야기가 영화 <마부>의 중심이 된다. 그가 수원댁(
황정순)과 소박한 연애를 하는 사이,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큰 아들 수업(
신영균)과 허영에 부풀어 시행착오를 겪는 둘째 딸 옥희(
엄앵란), 그리고 출가했지만 소박맞아 집으로 쫓겨 오는 큰 딸 옥례(
조미령)의 에피소드가 차례로 이어진다. 이들과 비교해서 막내 대업(
김진)의 이야기는 소소한 편이다. 꾸준히 작은 말썽을 일으키지만 이 아이가 ‘사건’이라 부를 만한 큰일을 벌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사춘기 막내아들에 대해 생각하며 영화에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스크린의 문이 열리자마자, 대업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인도하는 흰 토끼 마냥 정신없이 관객들을 ‘마부의 집’이란 토끼굴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모티브는 중요해 보인다. 좀도둑질과 자전거의 빠른 속도로 시작되는 세부 세계로의 인도, 말하자면 황홀한 인트로 시퀀스를 통해 관객들은 지극히 사회반영적인 드라마 <마부>를 꿈꾸면서 볼 수 있게 된다.
확실히 1960년대의 서울, 변화하는 이 도시의 주인을 자처한 것은 영화 <마부> 속의 캐릭터들이 아니다. 차라리 도시의 진짜 주인은 새롭게 나타난 자본가들, 과거에는 말을 소유했지만 이제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그들에 더 가깝다. 반면 우리 주인공들은 도시 한편에 보이지 않은 채 뒤덮여서 살아가고 있다. 작은 방에 모여서 아버지와 딸은 등을 맞대고 잠을 청하고, 등불 하나가 켜진 책상 앞에서 큰 아들은 밤새 공부한다. 이들의 내면에는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서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영화가 이들 각자의 소망을 성취해 보여주지 않는다. 결말에 이르러서 비로소 숨통이 트일만한 작은 성취가 있긴 하지만, 이 사실이 그토록 원했던 개인적인 소망의 완성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소박한 해피엔딩이 한국적 따스함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시작과 결말의 역설, 어찌 보면 이 패러독스야말로 당대 한국형 멜로드라마가 말하고자 내면의 진짜 중심인지 모른다.
춘삼의 에너지, 미래를 향한 자양분이 되고자 하는 그의 율동, 현실적이지 않은 긍정의 원천에 대해 생각한다. 밥상에 마주앉은 춘삼의 가족들을 보면서 문득 우리 정서의 근원으로서 ‘한국인의 밥심’을 떠올린다. 천천히 트랙 인되며 드러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표정, 그들이 공유하는 수북한 밥 한 그릇의 무게는 그 자체로 영화의 표상처럼 느껴진다. 수원댁과 김서기(
김희갑)가 나눠먹는 한 그릇 국수의 질감 역시 마찬가지다. 춘삼이 수원댁에게 몰래 건네는 떡고물의 부피와 더불어 극장에서 나온 뒤 휘적거리는 국밥 뚝배기 등 이 모든 물체들이 정서의 감각을 향유한다. 밥 한 그릇 나눠줄 수 있을 정도의 행복감, 딱 그 만큼의 성취가 어쩌면 영화 <마부>가 지향하는 해피엔딩의 깊이인지도 모른다. 서구화되는 서울의 표면을 파헤친 결과 드러나는 한 그릇 끼니의 정서, 이가 바로 앨리스가 찾아낸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마음을 점령하는 ‘한국적 해피엔딩’의 만족감, 그 실체는 영화 <마부>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실마리가 서서히 이어져서 한국적 리얼리즘의 줄기가 된다. 이토록 건강한 육체의 따스함, 그 시작은 배우 김승호의 작은 얼굴이지만 모두의 손을 거치는 흙으로 빚은 국그릇의 질감과 만나 리얼리즘의 심상은 정확히 관객의 마음으로 되돌아온다. 같은 시기 만들어진 다른 영화들, 이를테면
유현목의 <
오발탄>(1961)과 <마부>를 비교하면 그 차이점은 좀 더 명확하게 보일 것이다. <오발탄>이 지닌 멜랑콜리한 사실성의 깊이에 비교해서, 영화 <마부>의 신파적 로망스는 가볍고 평범하며 그래서 마음 편한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이중적이기에 회피할 수 있는 상상력의 깊이, 딱 그만큼 시대의 불안은 상쇄된다. 1961년 베를린영화제에서 받은 ‘한국영화 최초의 유의미한 국제 영화제 수상’이란 은곰상의 성취는 그 훈장으로 여겨도 될 것 같다. 진짜 한국에서 존재하고 작동하는 사람들의 속마음, 그 따사로운 근원을 <마부>는 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