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업료>(
최인규,
방한준, 1940)는 종소리로 시작하고, 흥겨운 농악을 마지막에 배치한다. 주인공 영달 (
정찬조)은 <애마진군가> 노래를 부른다. 종소리 전 오프닝 크레디트 시퀀스에선 오케스트라 연주가 배경음으로 나오고, 아이들이 공을 차며 내는 함성이 종소리에 연이어 들린다. 이러한 “음향경(사운드스케이프 soundscape)”은 규율과 군가와 카니발의 병치와 이접이라는 그로테스크 무드를 조성한다. 마을 농악대의 신명 들린 소리가 이런 음향경의 구성을 끝부분에서 전환시킨다. 교실에서 학생들에 내는 소음까지 더하면 영화는 소란과 함성, 군가를 마지막 농악으로 슬쩍 전환시키는 셈이다.
서사를 끌고 가는 것은 3개월 밀린 수업료다. 내야 할 것을 아직 내지 않았거나 내지 못한 미납 상황. 주인공이 초등학교 4학년이고 아픈 할머니는 지불 능력이 없고 장사하러 마을을 떠난 부모도 기별이 없다. 궁핍한 아동이 처한 이러한 상황은 쉽게 눈물로 얼룩질 수 있다. 소위 “친일국책영화” <수업료>는 그러나 눈물 이상의 것을 영화에 주입한다. 아동 영달은 “고귀”하다. 할머니(
복혜숙) 끼니를 챙기느라 자신은 밥을 굶는다. 효심이 지극하다. 애 어른이다.
이 영화에서 고귀한 것은 영달만이 아니다. 주 공간인 수원의 풍경과 장소, 자연이 고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영달과 할머니가 살고 있는 누추한 초가집 뒤 우아한 가지를 내린 소나무 두 그루 , 키 큰 나무들로 은성한 언덕, 수려한 그림자, 그리고 내지 일본의 거울 이미지로서의 제국 외지, 반도 학교의 질서, 집단체조 하는 학생들에게 보내는 영달의 경탄의 시선 등이 미장센의 우아한 기조다.
가난과 고귀의 이러한 이중주는 한편으로는 일본 제국과 조선의 지정학적 이분법인 내지와 외지를 견지시켜 주지만 동시에 위계적 비대칭성에 부딪힌다. 영화에서 혼용되는 국어(당시는 일본어)와 반도어(조선어)는 내선어, 내선일체를 이루는 듯하지만, 일본 내지에서 검열의 문제등으로 <수업료>의 개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종화는 그 이유 중의 하나로 내선일체 구호와는 달리 조선인 소학교는 일본 내지의 학교와 달리 의무교육이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가 제출한 모순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인 교사의 배려의 근간에는 내지와 외지의 의무 교육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선교환의 기획 영화로서의 <수업료>는 일본 영화인들을 시나리오, 음악, 배우 등으로 기용 내지 수출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내선교환이 내지 상영으로 이어지지 못했으나, 이 영화가 시도하는 것은 외지 조선의 풍속을 담은 지역성의 매핑과 재현이다. 내지를 위해 외지를 조망하고 지역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수업 시간 마을의 빨래터, 거리의 금붕어 장사, 영달의 부자 친구 한옥의 실내 . 무엇보다도 수원의 풍광과 수원에서 평택으로 갈 때의 신작로, 골목길들. 내지를 위한 외지의 동형성과 이국성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고귀함’의 속내다. 영달이 처한 상황은 궁핍하나, 주변, 통과하는 장소, 목적지의 장소들은 아름답고 풍속은 온화하며 사람들은 온정적이다. 영달의 가난은 오히려 이 식민지의 예외적 사례로 제시되며, 일본인 담임선생과 조선인 이웃(
김신재) , 친척의 도움으로 이 문제는 해결된다.
내지와 외지, 제국과 식민지의 문제는 영화 초반부 4학년 교실의 제국 일본과 조선의 지도, 조선 전도 등이 보여질 때 강조된다. 영달이 수원에서 평택으로 갔다가 다시 수원으로 돌아오고, 아버지, 어머니(
문예봉)가 장사 때문에 마을을 떠났다 귀환할 때, 그 이동성이 일본 제국 지도의 외지 조선의 동역학(kinetics)이라면, 이러한 운동이 동시 녹음 영화 <수업료>에서 마을 농악대의 몸짓, 소리에서 폭발하거나 수렴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내/외, 제국/식민지의 비대칭성이 사운드와 이미지의 벡터와 변곡점을 슬쩍 전환해내는 것이다. 아니면 외지, 마을 공동체의 에너지까지도 중일 전쟁, 대동아 전쟁으로 포섭물인가? 원작에 있던 전쟁 이야기가 영화에서 지워지면서, 해석은 전환으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