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꼬방동네 사람들 : 8월의 영화 II 배창호, 1982

by.박유희(영화평론가) 2019-08-15조회 8,298
꼬방동네사람들 스틸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2년 5월 개봉하여 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해 흥행 4위에 오른1),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바람 불어 좋은 날>(이장호, 1980)에서 시작하여 <우묵배미의 사랑>(장선우, 1990)에 이르는, 노동자 개념으로 포괄되지 않는 소외계층을 포착한 1980년대 영화의 계보에 놓인다.(2) 그리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원세, 1981), <어둠의 자식들>(이장호, 1981)과 함께 1980년대 초 도시 빈민을 다룬 ‘사회물’ 또는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80년대 초는 시민의 피를 밟고 집권한 신군부 정권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그 동안 규제되어 왔던 컬러TV방송을 허가하고, 스포츠와 문화 육성을 표방하는 등 선심성 정책을 편 시기다. 1970년대에 텔레비전 드라마 시대가 열리면서 불황에 빠진 영화산업은 컬러TV방송으로 인해 한층 더 수심이 깊어졌다. 그럼에도 분명히 1970년대와는 다른 시대의 기운이 저류하고 있었고, 박정희 정권기의 영화 검열 제도가 온존하는 가운데서도 영화계는 돌파구를 모색한다. 이때, 1960년대 중반 이후 이중검열 속에서, 용공 또는 외국에 보이기 부끄럽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던 ‘가난’이 적극적으로 재현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6년부터 발이 묶였다가 4년 만에 활동을 재개하게 된 이장호 감독이 <바람 불어 좋은 날>과 <어둠의 자식들>로 그러한 작업을 시작했다. 배창호는 바로 이 두 영화의 조감독이었고, <어둠의 자식들>의 원안자였던 이동철(본명 이철용)이 <꼬방동네 사람들>의 원작자이기도 했다. 1970년대 수기 붐에 이어 1980년대 초에는 도시 빈민의 삶이 그 계층 출신의 생생한 증언으로 서술되는 책이 주목을 받는다. 1980년에 이동철이 구술하고 황석영이 정리하여 출판한 『어둠의 자식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듬해에는 아예 이동철 작(作)으로 『꼬방동네 사람들』이 출간되는데 또 베스트셀러가 된다. 여세를 몰아 1982년에는 『오과부』가 출간되었고, 이는 <과부춤>(이장호, 1983)의 원작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그때까지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에 대중이 귀기울이고, 영화가 그것을 재현하는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당당하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짧은 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원작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검은 장갑」을 각색한 것이다. ‘검은 장갑’은 손에 흉터가 있어서 검은 장갑을 끼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명숙이라는 기구한 여자의 이야기다. 원작에서는 어쩌다 보니 ‘두 서방’을 갖게 된 이 여자의 사연을 담담하고 간결하게 서술한다. 영화에서는 원작의 여러 일화 중 이 스토리를 전경화시켜 꼬방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후경에 펼쳐지는 가운데 주인공 명숙이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멜로드라마로 장편화했다. 명숙(김보연)은 십대에 김주석(안성기)이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그가 일반적인 회사원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소매치기였다. 주석은 소매치기를 하다 체포되어 구속되고 명숙은 임신한 몸으로 그를 기다린다. 그러나 전과자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수감되기도 하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홧김에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도 하면서 주석의 전과가 느는 동안 명숙은 지쳐간다. 그리고 주석이 감옥에 있을 때 어린 아들을 데리고 떠난다. 그 후 꼬방동네에 자리 잡은 명숙은 강태섭(김희라)이라는 건달을 만나 살림을 차리고 반찬가게를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출감 후에 택시운전사가 된 주석이 우연히 명숙을 발견하여 찾아온다. 그는 명숙에게 함께 떠나자고 하고 안 된다면 아들만이라도 달라고 조른다. 태섭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명숙을 가운데 둔 두 남자의 갈등이 격화한다. 결국 태섭이 과거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자수하러 가는 길에 주석을 찾아가 명숙을 부탁하는 것으로 갈등은 봉합된다. 

혈연과 가부장 질서에 순응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귀결되는 것은 당시 대중들이 기대하는 무난한 결말이었을 것이며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해결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결말이 영화에 시종일관 흐르는 민중 신학의 가르침과 맞물리며 도덕성을 확보한다. 태섭에게 살인죄를 부과하여 자수하게 하는 것이나 주석이 아버지로서의 자격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는 것은 원작에는 없던 설정이다. 여기에는 이미 각색자의 윤리적 판단이 전제되어 있으며 결말이 예비된다. 명숙은 주석과 재결합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문제가 되는 것은 태섭의 속죄 여부다. 태섭이 끝까지 악인으로 남아 체포되어 간다고 해도 멜로드라마의 결말로서는 안 될 게 없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를 속죄케 하고 공소시효가 이틀 남은 시점에서 자수하게 만든다. 이는 마지막에 길게 삽입되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라는 공목사(송재호)의 설교에 맞닿는 것이다. 공목사가 설교하는 가운데 술에 절어 살던 ‘길자’(김형자)가 개과천선하여 흰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는 것 또한 태섭의 행동과 동궤에 놓인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멜로드라마적 비계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빈민 계층을 연민과 계도의 관점에서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조응한다. 한국영화사에서 이러한 낭만적인 도덕성이 눈에 띄게 부상했던 시기는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1960년대 초였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초였다. 전자의 경우 근대적 가부장 질서와 손잡으며 공권력의 강화로 이어졌다면, 후자에서는 민주적 저항운동의 단초가 되었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0년대 초 그러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화해로운 이상을 품었던 영화였다.   
 

현재의 관점에서 진부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이상적 가치나 도덕성이 이 영화에서 여전히 빛날 수 있는 것은 소외계층의 활력을 통해 그것을 구현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인물이 바로 명숙이다. 당시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 달리 명숙은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주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녀는 주석이 소매치기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꿋꿋이 그를 기다린다. 그러다 옥바라지가 힘겨워지자 주석을 찾아가 사랑하지만 지쳤다며 떠나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명숙이 주석에게 이별을 통보한 날 김영동의 ‘조각배’가 깔리는 가운데 아이를 들쳐 업고 황량한 길을 걸어가는 장면은 참으로 절절하다. 그러한 정서를 유발하는 것은 우선 명숙의 신산한 처지에 기인하나, 그것이 보다 핍진한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그녀 행동에 배어있는 주체적 배려와 진정성에 있다. 결말부에 이르면 그녀의 이러한 성격이 더욱 오롯하게 드러나며 영화의 압권을 이룬다. 그녀는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하는 주석에게 일갈한다. “정말 당신네 남자들 왜 이러는 거예요? 내 아일 가지고 무슨 권리로 당신네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라고. 그리고 태섭에 의해 남편을 잃고 ‘팔자가 꼬여’ 아비가 다른 네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 여인에게 명숙은 반찬가게 판 돈을 내어준다. 일견 명숙이 태섭을 대신해 속죄하는 듯하지만 결코 관습적인 속죄양으로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그녀의 행동은 소외계층의 연대이자 여성의 연대로까지 의미화될 만한 결단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이 영화가 당시 다른 영화들과 변별되는 지점이다. 아울러 이 영화에 특별출연한 공옥진 씨의 역할 또한 주목을 요한다. 공옥진씨의 춤과 노래는 사람을 모이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줌으로써 공동체의 활력을 추동한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마을의 소문을 실어 나르고 사건에 결정적인 계기를 만드는 ‘짹짹이 아줌마’를 연기하여 영화 서사에도 활력을 부여한다. 모자라 보이고, 주책없으며, 오지랖 넓어서 갈등을 조장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녀의 모습은 이 영화가 재현하고자 했던 소외계층의 표상이다. 
 

가난과 빈민이 카메라의 중심에 놓이는 일은 빈민운동이 조직화되는 1987년 이후에는 오히려 점차 사라져 간다. 서울의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성매매 업소들이 폐업되어 주변으로 밀려나면서 상업적 극영화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실제로 빈민의 모습은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도시에서 은닉되며 대중의 눈에서 멀어져 가기도 했다. 또한 ‘민중의 시대’가 저물고 전 세계적 자본주의화로 치달으면서 대중이 ‘가난’을 보고 싶어 하지 않게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제 행정적 검열이 아닌 자본의 검열이 도시 빈민의 재현을 배제하게 된다. 이후 그들을 포착하고 문제 삼는 일은 다큐멘터리가 주로 담당해왔다. <상계동 올림픽>(김동원, 1988)부터 <공동정범>(김일란·이혁상, 2016)에 이르는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1) 「통계로 본 올해의 영화가」, 『동아일보』, 1982.12.15.,12면.
2) 이용철, 「꼬방동네 사람들」,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 100선』, 한국영상자료원, 2015, 138-139면. 
3) 「‘꼬방동네 사람들’, 전국서점 현지조사 베스트셀러 1위」, 『경향신문』, 1981.9.24.,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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