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집 없는 천사: 7월의 영화 II 최인규, 1941

by.김소영(영화평론가) 2019-07-15조회 8,179
집없는 천사 스틸

<집 없는 천사>: 팬톰 시네마의 귀환 

이 영화는 세 번의 삶을 살게 된다. 1941년 무렵 첫 상영 시기의 <집 없는 천사>(최인규, 1941), 필름이 망실된 이후 망령, 유령, 환상적 “팬톰 시네마”로서의  삶, 그리고 영상자료원으로 귀환 뒤 2005년 이후의 삶 . 이 세 번의 삶 속에서 <집 없는 천사>는 비평의 집들을 축조해냈다. 이 프레임들은 조선, 한국 영화사 비평 기반을 조성한다. 친일 영화인가 아닌가에 대한 이념적 논의 , 흥행 영화라는 산업적 접근, 법제도에 관한 논쟁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엔딩 부분, 아이들이 황국신민 서사를 낭독하는 장면이 문제적이다. 이 부분은 『한국 영화 전사, 이영일 저』에서 <집 없는 천사>를 한국 영화사의 눈부신 리얼리즘의 궤적에 소재시킨 것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기존 논의들에 대한 참조를 권하면서, 두 개의 토픽을 도입하고자 한다. 아동의 문제와 토폴로지다. 특히 고아 소년, 소녀와 일본 내지, 조선이라는 외지의 장소성과 경계이다.
 
       
이 영화에서 시네마틱한 정교함이 특히 드러나는 장면은 방성빈(김일해)이 고아들을 데리고 향란원을 세워나가는 과정을 실화에 근거, 재현한 고아 아이들의 노동과 일상 장면이다. 목가적 풍경 위로 해가 뜨면 기상나팔, 행진곡 풍 음악이 장쾌하게 이어진다. 땅을 파고, 함께 국수를 뽑고, 빨래를 하며, 아이들은 상반신을 드러낸 채 신나게 일한다. 고아원 향린원은 이들의 노동으로 일본 제국의 식민지, 일본 내지와 조선 외지라는 지정학적 장소성을 비껴나는 헤테로토피아로 보인다. 또한 내지도 외지도 아닌 불확정 지대(zones of indetermination)로 나타난다. 소년, 소녀에 관한 이렇게 쾌활하기 그지없는 재현은 아래 표현과 그리 멀지 않다.  

“아동은 친화성, 방산적(放散的)사고, 유머, 뇌의 가소성(可塑性), 낙천성 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관계적인 면에서는 어른들에 비해 높은 감수성과 유연성, 관계의 탄력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호기심, 모방, 탐색적 사고, 실험정신, 상상력이 높다.”

1938년 7월 내무성 경보국도서과의 내부자료 제 32호「유소년소녀잡지에 관한 답신안(幼少年少女 雑誌に関する答申案)」에 나온 글이다. 일본에선 아동의 문제가 대중적인 호응을 얻게 된 것은 만주사변 전후의 긴박한 시기였다고 한다. 일본의 <소년클럽>과 조선의 <소년>잡지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인기를 누렸는데, “외지 조선의 소년들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일본, 조선, 만주, 타이완, 사할린, 브라질 등)에서도 자신과 동일한 생각과 이상을 품으며 생활하는 동년배가 있다는 잡지의 ‘전시’ 효과는 기울어가는 전쟁 상황 속에서도 일본의 소년독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는 심리적 지지대가 되어주었다.”1) 
 

최인규 감독의 다른 작품 <수업료>(1940)와 <집 없는 천사>와 비교되는 <미가헤리의 탑>(시미즈 히로시, 1941) 등이 조선과 일본의 대표적인 아동 영화들로 위 소년클럽의 시대적 무드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자로 훈련된 이러한 고아들은 이후 징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1942년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방성빈의 실제 인물 방수원은 향린원 원아들을 징병하려는 일제를 피해 제주도에 남진소년개척단을 꾸리기도 했다. ( 이효인, 「집없는 천사와 미가헤리의탑의 비교연구」, 영화연구 44 , 2010, 254쪽). 이렇게 방수원이 맞닥뜨린 실제 상황에서처럼 징병을 피해볼 수 있는 집단이기도 하다. 미성년으로서의 아이들은 불확정성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방수원의 활동은 제국 군대의 기제를 슬쩍 돌려놓는 것이다.
 

전쟁 동원령 시기, 일본 외지, 반도의 조선인으로서 행하는 사회적 실천은 독립운동을 제외한다면 필연적 아포리아에 빠진다. 재생산을 위한 긍정적 실천자체가 일본 제국에 가세하는 형세를 띄기 때문이다. 감독 최인규는 방성빈(방수원)의 아이들이 종국엔 제국의 황국신민 서사를 읊조려야 하는 과정을 영화 실천과 포개어놓았는지도 모른다. 흥행, 친일, 반일의 동요 속에서 영화 속 아이들의 신체는 어떤 불확정 지대인 장소를 생산하고, 지리적 장소인 향린원은 이것을 미학화 한다. 고아들의 집을 다룬 영화의 토폴로지다. 

1)서기재, 「소년클럽의 독자 생성과 외지조선의 소년」, 일본문화연구 68,2018. 10. 210쪽 주 5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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