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미워도 다시 한번 : 8월의 영화 I 정소영, 1968

by.김려실(부산대 국문과 교수) 2019-08-01조회 3,846
미워도 다시 한번 스틸
<미워도 다시 한번>을 다시 읽는다            

한 편의 ‘최루성 멜로’가 던진 파문
수출 목표 10억 달러의 문턱에서 온 나라가 생산증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1968년, 군소영화사를 통폐합하고 영화산업을 기업화하려한 정부 시책에 영화계는 양극화되었고 영화인들의 불만도 누적되어 갔다. 그런데 그해 여름, 정소영이라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감독이 군소영화사에서 만든 영화 한 편이 영화법 개정 요구에 불씨를 댕겼다. 그 영화가 바로 1968년도 최고의 흥행작이자, 그때까지 신상옥의 <성춘향>(1961)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영화 사상 최대 관객동원 기록을 깬 <미워도 다시 한번>이다. 

‘최루성 멜로드라마’의 대명사가 된 이 영화는 1960년대 관객에게조차 매우 익숙한 플롯을 전개한다. 애인 김신호(신영균)가 유부남인 줄 몰랐던 유치원 교사 전혜영(문희)은 시골의 본처가 남매를 데리고 상경하자 임신 사실을 숨긴 채 묵호로 귀향한다. 바닷가에서 노동하며 홀로 아들 영신을 키웠으나 아이가 아버지를 찾는 나이가 되자 혜영은 아들의 장래를 위해 신호에게 맡긴다. 그러나 낯선 환경, 서먹한 ‘큰’ 어머니, 의붓형의 괴롭힘,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영신의 마음은 병들어간다. 어느 날 하교 후 무작정 엄마에게 가려다 길을 잃은 영신은 폭우가 쏟아지는 밤거리를 헤매다 돌아온다. 아이를 잃어버린 줄 알고 피가 마르던 신호는 대문간에서 잘못했다고 비는 영신을 때린다. 모질게 아들을 때어놓고선 걱정되어 그 곁을 맴돌아왔던 혜영은 영신이 맞는 모습을 보고는 “제가 길러야겠다는 걸 뼈아프게 느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아들을 데리고 묵호로 떠난다.
 

눈물의 공감대: 출세와 교육열  
이토록 익숙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속편, 3편, 4편까지 만들어진 데다 1981년과 2001년에 리메이크되기도 한 것은 그 어딘가에 한국인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선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등장인물들의 출신과 직업이다. 신호, 혜영, 신호의 아내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시골에서 상경한 인물들이다. 농촌 출신인 신호는 회사를 다니면서 박사논문을 집필하던 중에 혜영을 만났고 지금은 제약회사 사장이다. 즉, 그는 물려받은 재산이 아닌 전문지식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부자이고 그의 출셋길은 교육으로 인해 열린 것이다. 어촌 출신인 혜영은 유치원 교사였지만 신호로 인해 중산층 가정부인이 되는 루트에서 밀려나 가난한 미혼모가 되었다. 친정아버지에게서 소 판 돈을 꾸어 서울 살림을 시작한 신호의 아내는 남편의 출세로 상류층에 진입했지만 사생아의 존재는 그동안 그녀가 가꾸어온 안락하고 모던한 가정을 뒤흔든다.    

다음으로 주목을 요하는 부분은 왜 혜영이 8년간 숨겨왔던 아들의 존재를 지금에야 알리고 신호에게 양육을 요구했는가이다. 당시의 민법이 현재와 달랐음을 고려해야 한다. 사생아인 김영신이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김신호의 호적에 올라야 하고 그러자면 본부인에게도 그 존재를 알릴 수밖에 없다. 이는 영화에서 언급되지 않아 오늘날의 관객은 유추하기 어렵지만 60년대의 관객이라면 이미 미혼모가 아이를 데리고 친부를 찾았을 때 자연스레 연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묵호로 아들을 데리고 떠난 혜영이 속편에서 신호에게 알리지 않고 서울로 되돌아온 이유도 오로지 영신에게 더 나은 교육을 받게 하고픈 욕망 때문이었다.

요컨대 <미워도 다시 한번> 시리즈에서 갈등의 원천은 그 이전의 멜로드라마처럼 삼각관계보다는 자식교육에 있었던 것. 따라서 이전의 멜로드라마라면 본처를 악녀로 설정했을 터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남편의 사생아를 키워야 하는 본처가 겪는 고통도 최루성 장면의 일부를 이룬다.  
 

고도경제성장기의 멜로드라마 
호주제가 2007년까지 유지되었고,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사전에 등재되어있으며, 대학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이 나라에서 <미워도 다시 한번>은 사회학적으로 분석해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마부>(강대진, 1961)에서 사양길에 접어든 마부의 의젓한 장남으로 고시에 합격한 신영균은 고도경제성장기의 초입에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자수성가한 테크노크라트로 변신했다. 그의 공부를 뒷바라지 했던 문희는 한때 인텔리였지만 한순간에 가난한 미혼모로 전락했고 자식만이 유일한 희망이기에 통곡하며 어린 아들을 더 나은 가정으로 떠나보낸다. 스무 밤만 자면 온다던 엄마를 기다리던 영신이 자전거를 사 온 아버지를 붙잡고 “자전거 안 가질래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학교 안 갈래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한테 데려다줘요.”라고 흐느끼는 장면은 지금도 우리의 눈물샘을 지그시 누른다. 이 영화가 오랜 세월 그토록 많은 관객에게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은 익숙한 신파적 감수성 때문이 아니라 교육이 유일한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된 양극화된 사회의 비애를 포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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