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맨발의 청춘>의 1964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5월의 영화 II 김기덕, 1964

by.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2019-05-15조회 8,777
맨발의 청춘 스틸

<맨발의 청춘>(김기덕, 1964)에 대한 평론과 연구는 이미 차고 넘친다. 1950~60년대 한국영화와 대중문화사에 대해 한 마디 얹으려면 피해갈 수 없는 영화가 <자유부인>(한형모, 1956), <맨발의 청춘>, <미워도 다시한번>(정소영, 1969)이고, 그런 만큼 논문과 평론 등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청춘영화의 본격적 출발, 신성일엄앵란 콤비의 시작, 방황하는 밑바닥 청춘의 울분과 좌절, 과장되게 미국화하여 전시된 화려하고 발랄한 질감 등, 이 작품에 새삼스레 한 마디 말을 더 얹을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한국영상자료원 사이트에 국한해도 <영화천국> 18호에 수록된 이길성의 글 「한국 청춘영화의 아이콘, 레전드가 되다」 같은 충실한 글이 이미 있다.

그런데 각도와 폭을 좀 달리해서 보면 좀 다른 것들이 보인다. 1964년이란 시기이다. 대중예술 작품의 인기는 해당 작품 하나의 극본과 연출의 완성도, 배우의 매력, 혹은 유통 과정에서의 우연 등 다양한 요소에 좌우된다. 하지만 전후를 함께 살펴보면 그 작품이 인기 있을 만한 조짐이 이미 한두 해 전부터 축적되고 그것이 임계점에 도달한 시점에 그 작품이 놓인 경우가 많다. <맨발의 청춘> 역시, 한 해 전에 일본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청춘교실>(김수용, 1963)‧<가정교사>(김기덕, 1963)라는 전조가 있었고, 더 길게 보면 전쟁 중 소년기를 보낸 아이들이 청년기를 맞으며 자기 세대 얘기를 시작하는 전 세계적 현상이 유럽‧미국에서 일본의 태양족까지 차근차근 영향을 주고 있었다. 
 

한국에서 1964년은 더 생각할 지점이 있다. 그 해에 주목할 만한 대중문화의 새로운 흐름이 솟아오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간지 시대의 시작, 민영 TV의 본격화 등 여러 매체 환경이 변화한 것도 이 해인데, 작품 경향으로 보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계기로 트로트가 부활한 것이다. 대중가요사 시작 이래 한 번도 제1주류 양식의 자리를 내준 적이 없던 트로트는, 1961년 <노란 샤쓰의 사나이>의 인기로 몇 년 간 확실한 침체를 보였다. 그 사이 제1주류 양식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미국풍 가요인 스탠더드팝, 그 중에서도 손석우 작곡의 명랑하고 반듯한 질감의 작품들이었다. 1964년을 계기로 트로트가 다시 부활하고, 스탠더드팝 역시 최희준이 부른 주제가 <맨발의 청춘>(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이 몰아온 어두운 뒷골목 냄새 풍기는 재즈 분위기의 작품이 부상하는 변화를 보인 것이다. 

대중가요계에서 1964년 부상한 이 두 가지 흐름은 완전히 상반된 경향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손석우 노래가 주도하던 모범생처럼 건전‧명랑한 분위기가 아닌, 어둠과 절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1960년부터 1963년까지를 주도했던 건전하고 명랑한 가족 멜로드라마(‘김승호 영화’라 할 만한)가 주춤거리면서, 어두움과 절망이 깃든 <맨발의 청춘> 같은 청춘영화가 부상한 것과도 비견될 만하다. 영화계에서도 <모녀기타>(강찬우, 1964) 같은 복고적인 신파적 영화가 함께 부상하고 있었으니 사실 가요계와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청소년 취향과 성인 취향 양쪽에서 모두 몇 년 동안 잠복되었던 어두운 절망‧퇴폐 같은 감성이 이 해에 일제히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즈음에 대중의 사회심리가 바뀔 만한 사회적 변화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게 옳다. 1960년대 초에 영화와 가요계에서 모두, 과거의 어둡고 퇴폐적이던 흐름을 청산하고 명랑하고 반듯한 질감의 작품이 인기를 끈 것은 확실히 4‧19와 5‧16, 본격적인 경제개발과 산업화의 시작 등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 정도 정부의 통제가 개입되어 있다 할지라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의 억지스러운 관제적 건전성과는 확연히 다르게, 대중 스스로 기꺼이 동의한 건전‧명랑‧희망의 질감이 1960년대 초의 작품에는 넘쳐난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다 되어 가고 정치까지 바뀌면서 사람들은 ‘허니문 현상’의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1963년에 군정이 끝나고 대통령 선거를 치른 후 1964년에 박정희의 민정 제1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이제 대중의 심리에서도 몇 년 간의 허니문의 거품 희망이 서서히 꺼지면서 잠복되어 있던 절망‧불안‧소외감‧퇴폐 같은 감성이 다시 부상하게 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950년대로 되돌아 간 것은 아니다. 세상살이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거품이 조금 가라앉았을 뿐 여전히 오랫동안 힘을 발휘했다. 1950년대의 자유주의와 화려함이 전후의 엉망진창 한국사회에서 풍기는 허무주의의 냄새를 품고 있다면, 1960년대 <맨발의 청춘> 속의 주인공 두수는, 비록 좌절되었을지라도 진정한 사랑과 계층상승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꿈을 지니고 있는 ‘신데렐라 맨’이었다. 물적‧성적 욕망의 질감 역시 1950년대의 <자유부인>이 보여주는 그것이 아니었다. 영화 <자유부인>이 ‘두루뭉술하게 서양적인’ 질감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맨발의 청춘>은 신성일의 청바지와 트위스트김의 스윙댄스, 화면 뒤로 흐르는 색소폰의 재즈 연주와 프로레슬링, 현대적이고 실용주의적 디자인의 미국대사관 건물에 이르기까지 확연히 미국적 질감을 과시한다. 대중가요계에서도 그랬다. 1964년에는 한국 최초로 록그룹의 음반이 두 장이나 출시됐다. 차중락‧윤항기 등의 키보이스, 신중현이 이끄는 애드훠의 음반(<빗속의 여인> 수록)이 그것이다. 서수남‧하청일이 이끄는 컨트리뮤직 그룹인 아리랑부라더스의 음반(<동물농장> 수록)도 이 해에 나온다. 물론 이것들이 다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방향성은 분명하다. 

1960년대는 이렇게 두 번째 시기로 넘어가고 있었고, 바로 그 지점에 <맨발의 청춘>이 위치한다. 그리고 1960년대의 세 번째 시기로 넘어가는 즈음에 <미워도 다시한번>이 놓여있다. 한국영화사의 ‘대박히트’ 작품은 이렇게 한국현대사와 기막힌 조응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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