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동경특파원 김수용, 1968

by.권용숙(영화사연구소 객원연구원) 2019-04-15조회 3,829
동경특파원 스틸

<동경특파원>(김수용, 1968)은 첩보 스릴러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첩보 영화 특유의 극 중 정보량 배분 및 지연 등을 통한 관객과의 밀당에 주력하지는 않는다. 스파이와 스파이의 표적 대상과 스파이의 적 등이 등장하여 서로 간의 정체를 의심하고, 관객들도 이들 간의 관계와 속셈을 계산하며 기대를 충족시키거나 배반하면서 극적 재미를 만드는 것이 첩보영화의 관건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서스펜스, 즉 관객이 등장인물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서, 등장인물에게 닥칠 상황에 대해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는 등장인물 A보다는 관객이 많은 걸 알고 있었지만, 등장인물 B보다는 적게 알고 있기 때문에 A와 B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 관객이 추측과 기대와 그 기대의 반전 등을 마주하게 되는 재미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이 <동경특파원>은 등장인물 간 그리고 인물과 관객 간 정보 제공량의 편차 및 조합을 적절하게 운용하기보다는, 대체로 건너뛰거나 생략하기 때문에 의혹과 추리 사이에서 긴장을 태우며 집중해야할 지점이 흐려진다. 이 작품이 소재로 삼은‘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은 상업적으로 영화화하기에는 힘겨운 역사적 현실이었을 것이다. 

1959부터 1984년까지 재일조선인과 그 가족들(일본 배우자 포함) 약 9만 여명이 북한으로 향했다. 한국은 북송 반대 입장이었지만 일본과 한국의 수교는 1965년에야 이루어졌고, 실질적으로 일본에 있는 동포들의 한국행을 추진하지는 못했다. 일본에서 가난과 차별에 힘들어하던 이들은 다른 삶을 꿈꾸며 북송선에 올랐으나 돌아올 수 있는 배편은 없었다. 그리하여 북송사업 이후 재일동포들에게는 북한과 일본 사이의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재일조선인 소녀 안나(여수진 역)는 일본 니가타 항에서 북송선에 오른 어머니와 헤어지고, 배를 탔는지 안탔는지 행방이 묘연한 오빠를 찾기 위해 한국 기자(윤양하 역)와 동행한다. 기자는 북송 문제를 취재한 자료들을 도난당한 후, 정체불명의 차에 치여 사망한다. 한편 도쿄에 있는 기자의 아내 지숙(윤정희 역)이 운전하던 차에 누군가 뛰어들어 교통사고가 나는데, 최완배(김성옥 역)라는 자가 나타나서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겼다더니 이내 죽었다고 한다. 최는 사후 처리를 도맡는다며 지숙에게 계속 접근하고, 자수를 원하던 지숙은 점차 최와 함께 사건을 은닉한 처지가 되어 한 패가 된다. 여기에 안나와 지숙이 함께 살게 되는 한편, 지숙과 최를 협박하며 안나와의 데이트와 돈을 요구하는 남자(신성일 역)가 나타난다. 그리하여 지숙, 최, 안나는 묘한 운명공동체가 되어, 남자의 협박에 대응하느라 돈을 주고 억지로 데이트에 응해주다가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간다.
 

이들은 지숙의 아버지인 남 교수(김동원 역) 댁에서 가족처럼 지내지만 밤중에 최와 안나는 몰래 나가 아지트 건물로 향한다. 안나는 오빠의 소식을 안다는 최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고 있는 듯하다. 결혼 준비를 하게 된 지숙과 최에게 남자가 또다시 나타나 협박하고, 최의 뒤를 밟던 남자는 아지트에서 폭행·감금당한다. 마침 최로부터 오빠가 평양에 있다는 미덥잖은 말을 듣고 실의에 빠진 안나가 남자를 풀어주고, 남자는 남 교수에게 예비 사위인 최가 사실은 남 교수가 월남할 때 신의주에 두고 온 아들 남지완이라는 사실을 익명으로 알린다. 이 사실을 모르는 최가 남 교수에게 총을 겨누며 납치를 꾀하자 남 교수는 자신이 아버지임을 밝히고 자수를 권하지만 최는 듣지 않는다. 인천에서는 최의 간첩 일행이 남 교수와 안나를 배에 태워 납북하고자 하는데, 위기를 알리려던 안나가 간첩의 총에 맞고 남 교수 부인도 아들인 최를 붙잡고 오열하다가 총에 맞는다. 이에 최는 총부리를 돌려 간첩에 맞서고, 그때 국군들이 나타나 간첩 일행을 일망타진한다. 남자는 군 정보원으로서 동경특파원이었던 것이 밝혀지고, 병상 치료 중인 최를 비롯한 남 교수 가족은 가족 상봉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의 대사대로‘죄 없는 안나의 죽음’이 이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만들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남자(동경특파원)가 안나의 묘에 참배하며, 안나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나레이션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속에서 지숙도 간첩도 국군도 모두 각자의 목적으로 안나를 이용했지만 끝내 누구도 안나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못했다. 또한 안나의 죽음을 계기로 주인공의 남북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재결합했지만 안나의 가족 상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일조선인을 방출하고 싶었던 일본과 그들의 경제력과 노동력이 필요했던 북한 그리고 그들의 귀환은 추진하지 못하면서도 체제 경쟁 하에 북송 저지를 펼쳤던 남한, 이들 사이에서 기만당하고 외면당했던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를 반공첩보영화로 소화할 수 있을까? <동경특파원>은 이 질문의 답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엔딩을 부감으로 멀어지면서 화면 정중앙에 무덤이 자리하는 원경으로 끝낸다. 즉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자라나 어머니를 북으로 떠나보내고 오빠는 찾지 못한 채, 남한 땅에 묻힌‘안나의 죽음’으로 큰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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