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찬욱,2006

by.한동균(영화애호가) 2017-08-18조회 5,917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조현병 환자 영군(임수정)은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할머니를 ‘하얀맨’에게 끌려갔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에게 틀니를 가져다주려 자전거로 쫓지만 앰뷸런스를 따라잡을 수 없자 영군은 스스로를 ‘방전된 싸이보그’라 이해한다. 그래서 다소 엽기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몸을 충전하려다 정신을 잃게 되고, 그 길로 ‘신세계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박찬욱 감독의 2006년 작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이렇게 시작한다. 

병원에 갇힌 영군은 자신이 ‘고장’날 것이라는 걱정으로 밥을 먹지 못하고 결국 아사 직전까지 간다. 건전지로 자신을 충전하려 하지만 건전지의 전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또 충전이 될 리도 없다. 그런 와중에도 영군은 할머니를 찾으려 하는데, ‘하얀맨’들이 할머니를 어디로 끌고 갔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영군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두어야만 하는 것은 바로 동정심을 버리는 것이라 믿는다. 이를 위해 ‘뭐든지 훔칠 수 있는 남자’인 안티소셜증후군 환자 일순(정지훈)에게 자신의 동정심을 훔쳐 줄 것을 의뢰한다. 자신이 훔치고 싶은 것만 훔치는, 나름대로 지조(?) 있는 도둑 일순은 영군의 동정심을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그녀를 미행하며 관찰한다. 그리고 마침내 일순이 영군의 동정심을 훔쳤을 때, 그는 사랑에 빠진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처음 보았던 2006년의 어느 겨울, 스무 살을 바라보던 나는 ‘사랑은 구원’이라고 믿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당시를 복기하자니 (감히) 한 개인이 다른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지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나는 꽤 진지했다. ‘라이스 메카트론’이란 이름의 장치를 고안해 영군을 아사로부터 구해낸 일순. 그리고 안티소셜증후군 환자마저도 누군가를 동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만든 영군. 당시 내 눈에 비친 영군과 일순은 서로에 대한 구원이었고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사랑을 하고 있었다. 사랑이 한창 궁금할 나이에 마주친 이 이상적인 사랑 이야기는 마치 알고 싶던 문제의 답지처럼 내게 다가왔고, 그렇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박찬욱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 동안 여러 차례 이 영화와 만나면서 처음의 그 감상만을 지니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청소기의 존재 목적은 청소이고 세탁기의 존재 목적은 세탁이듯 대부분의 기계는 탄생의 순간 고유의 기능과 목적을 갖지만 싸이보그로서의 영군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마치 또래의 ‘인간’들이 그러는 것처럼. 하지만 영군이 아무리 밥 먹기를 거부하고, 건전지를 입에 대며 싸이보그의 방식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려 해도 그녀는 태생적으로 기계가 될 수 없다. 생물학적 불가능을 차치하더라도 영군은 동정심과 같은 인간성을 결국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영군은 그녀가 될 수 없는 존재가 되길 원했고, 결국 그녀의 본질과 그녀가 원하는 것 사이의 괴리로 인해 성장통은 또래의 그것에 비해 더 유별난 통증으로 찾아온다. 

“그냥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일순이 설미(이영미)에게 받아 영군에게 준 이 잔인한 대사는 영군과 일순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싸이보그가 되어 세상을 끝장내는 것이나 인간으로서 언젠가는 겪게 될 소멸을 피하는 것과 같은 불가능한 꿈에 대한 희망은 버리고, 그저 힘내서 사는 것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일 테니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결국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느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기에, 사실 우리가 내심 원하는 것은 이미 어렴풋이 예감하기 시작한 실패를 통보해줄 누군가가 아니라, 어렵게 실패를 인정했을 때 준비해둔 반창고를 꺼내 붙여 주며 옆에 있어 줄 사람이다.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빚어낸 신세계 정신병원의 병자들이 참으로 부러웠던 건,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서로를 지적하지 않고 서로의 몽상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누군가가 인간이든 싸이보그든, 비행 양말의 존재를 믿든 말든, 요들송을 부르든 말든, 그 혹은 그녀의 존재와 방식을 보편에 맞춰 고치려 들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옆에 있어 준다. 마치 일순이 영군에게 “당신은 싸이보그가 아니며 또한 될 수도 없다”는 말을 하는 대신 라이스 메카트론과 같은 싸이보그 영군이 납득할만한 방식으로 그녀를 돕고, 언젠가 필요해질지도 모를 반창고 또한 미리 챙겨 두었듯이 말이다. 어쩌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우리에게 제시하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사랑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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