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19.2월의 영화 이원세, 1981

by.강병진(영화저널리스트,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2019-02-01조회 6,597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영화는 두 소년, 소녀의 대화로 시작한다. “완두의 큰 것과 작은 것을 교배시키면 키가 큰 놈만 나온다고”, “그러니까 영수 너가 이다음에 커서 결혼을 하면 너희 아버지처럼 난장이가 아니라 큰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이지?” 소년 명수의 아버지는 사람들이 ‘난쟁이’라고 놀리는 ‘왜소증 장애인’이다. 아버지가 놀림당할 때, 그의 아이들은 나도 ‘난쟁이’가 되거나, 난쟁이’를 낳게 되는 게 아닌지 두려워한다. 그런 명수에게 어딘가에서 본 ‘멘델의 유전법칙’은 나름대로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명수는 소녀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동네 사람들의 직업인 염전노동자가 되지 않겠다 약속한다. 명수(안성기)는 다행히 키 큰 청년으로 성장하고, ‘염전노동자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성인이 된 그는 하고 싶었던 공부도 못했고, 변변한 직업도 없는 신세다. 그럼에도 그를 둘러싼 가족만큼은 단단하다. 이들은 가족만을 생각하는 엄마(전양자)의 헌신과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김불이)에 대한 존중으로 함께 살고 있다. 엄마는 “그래도 우리 가족이 모여 살 집 한 채가 있다는 게 어디냐”고 말한다. 어느 날, 그 집 한 채마저 사라질 위기가 닥친다. 위기는 난데없는 굉음으로 먼저 찾아온다. ‘탁 탁 탁 탁!!!’ 판자를 붙여 만든 대문에 누군가가 망치질을 하고 있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가족의 표정에는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는 좀비를 마주한 것 같은 공포가 서려 있다. 망치질을 끝낸 사람이 말한다. “번호판을 잘 지키십시요. 번호판이 없으면 보상을 못 받게 됩니다.”  가족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엄마는 마음을 다잡고 아들을 먼저 안심시키려 한다. “놀랄 거 없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꼭 찾아올 것들 중 하나니까, 이제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로구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유명한 소설을 영화화하는 감독은 모두가 원작의 무게에 짓눌릴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을 연출한 이원세 감독은 조세희의 동명 원작과 공간을 달리하면서 그 무게로부터 벗어난다. 원작의 낙원구 행복동 46번지는 한강을 지척에 둔 달동네이지만, 영화의 배경은 쇠퇴한 염전마을이다. 촬영장소는 지금은 시화공단이 된 과거 군자염전 마을이고, 실제 그곳을 다니던 수인선 협궤열차도 중요한 공간으로 나온다. 영화의 배경이 원작과 다른 이유가 검열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원세 감독의 마스터클래스에 따르면 처음부터 염전마을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원세 감독 자신이 실제 군자염전마을에서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경험을 토대로 그는 김수용 감독의 1968년 작 <수전지대>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으며 자신이 연출한 <엄마 없는 하늘 아래> (1978) 속 아버지를 염전 노동자로 설정하기도 했다. 공간이 바뀌면서 영화는 감독이 가장 잘 아는 곳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영화 속의 염전은 상황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전국을 돌며 서커스 공연을 다녔던 김불이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만날 때의 염전은 풍요롭게 빛난다. 하지만 명수가 옆집에서 함께 자란 명희(전영선)와 염전 밭 사이를 걸으며 불안한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는 사방이 축축한 절망의 공간이다. 그 때문에 인물들이 갇힌 공간이 원작보다 더 고립되어 보이기도 한다.  김불이와 명수가 한강에서 작은 나무배를 타고 나가 대화를 나누는 원작의 장면도 영화에서는 바닷가로 바뀌었는데, 이 상황은 멀리 보이는 노을 덕분에 더 애틋하다. “난 너희 어머니를 위해 먼저 달나라에 가서 릴리푸트 마을을 건설할 셈이야.” 이원세 감독은 그처럼 다양한 염전의 표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침이면 일터로 나갔다가 밤이면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돌아오는 가족의 모습 또한 그의 기억에서 나온 장면일 가능성이 크다. 덕분에 영화 <난쏘공>은 지금은 사라진 공간에 대한 희귀한 기록이 되기도 했다. 서울 달동네 대한 기록에 비해 군자염전에 대한 기록은 훨씬 더 적을 테니 말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당장 집을 내줘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 가족에게 마땅한 탈출구는 없다. 아파트 입주권을 팔아도 대부분의 돈을 빚 갚는데 써야 하고, 아파트로 들어가려면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명수는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명희의 죽음을 겪고, 유명한 권투선수가 되어 돈을 벌어보려고 했던 동생 영호(이효정)는 경기에서 지고 만다. 오빠들이 사랑하는 여동생 영희(금보라)는 가족의 생존을 위한 위험한 모험에 몸을 던진다. 원작에도 나타나는 남루하고 절망적인 이야기들이지만, 이원세 감독은 원작보다 더 강인한 인물들을 그리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가장 두드러진 묘사는 배우 전양자가 연기한 엄마에서 나타난다. 남편을 존중하고 자식들을 소중히 여기는 전형적인 여성상 같지만, 그녀는 이 가족 구성원 가운데 가장 냉철한 캐릭터다. 자식들에게 이제 너희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을 일깨우고, 위기가 닥쳤을 때는 당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의연함을 보인다. 

이 캐릭터의 가장 강렬한 모습은 철거용역이 집을 철거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가족들은 이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인 걸 아는 듯 고기를 굽는다. 철거용역은 이 집에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철거를 시작한다. 가족들은 집이 무너지는 소리에도 계속 고기를 먹는다. 급기야 철거용역은 아들이 식사를 하는 방까지 부숴버린다. 영화는 인물들의 얼굴 뒤로 집이 무너지는 광경을 배치하면서 이들이 다부지게 고기를 씹는 표정을 강조한다. 철거용역은 그제야 사람을 보고 잠시 철거를 멈춘다. 영화는 이때 엄마의 존재를 또 한 번 부각시킨다. 엄마는 남은 고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 철거 단원들에게 한 점씩을 먹인다. 마지막 식사를 배려해준 그들에 대한 최선의 호의. 동시에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다. 절망적인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은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된 지금도 사랑받는 이야기다. 지난 2017년까지 300쇄가 팔렸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주인공 김불이의 가족이 겪는 고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겪고 있을 법한 것이기 때문일 것 같다. 집이 없다는 불안감은 소설이 나온 1975년이나, 영화가 나온 1981년이나 이 글을 쓰고 있는 2018년에나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실제 「난쏘공」은 지난 2006년에도 영화화 시도가 있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영화화에 참여한 프로듀서는 "원작의 시대적 배경인 1970년대를 그대로 반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라며 “「난쏘공」이라는 뛰어난 작품의 환경과 인물을 빌려 이 시대 가장 낮은 곳에 살고 있는 소시민 가족들의 정신적인 소통과 애정, 사랑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난쏘공」은 1981년의 영화 <난쏘공>이 보여준 것처럼, 공간을 달리해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들이 일정한 구역 안에서 보호를 받듯이 우리도 이질 집단으로서 보호를 받았다. 나는 우리가 이 구역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작의 이 문장에서 지금도 울림을 느낀다면, 동의할 것이다. 2020년을 바라보는 지금의 낙원구 행복동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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