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에 발간된 한국 최초의 영화잡지 「녹성(綠星)」에는 1916년 유니버설 블루버드 작품인 「Shoes」가 <
독류(毒流)>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주인공 메아는 자신이 받는 주급 5달러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도시 노동계급 여성이다. 그녀의 극단적인 가난은 비가 새고 발에 상처가 날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구두로 형상화되는데, 결국 그녀는 새 구두를 얻기 위해 타락의 길에 들어선다.
영화(소설) <독류>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화려한 물질문명의 전시, 선망과 대리만족의 세계가 할리우드 영화의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20세기 전반기의 할리우드는 사회적 빈곤이나 전쟁이 낳은 참상, 지배계급에 의한 착취와 수탈 같은 세계상을 자주 그렸고 식민지 조선에서 할리우드 영화는 그와 같은 보편적 세계상에 대한 이해와 공감 속에서 소비되었다. 남성에게 농락당하는 하층계급 여성의 수난기를 다룬 그리피스의 <
동도(Way Dowm East)>나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것을 보아도 그렇다. 사회적 빈곤을 다루는 이 영화들은 조선인들 또한 세계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같은 삶의 조건에 놓여 있다는 감각, 말하자면 ‘공통의 인류’로서 근대의 생활세계에 대해서 느끼는 어떤 보편적 감각을 생산했다.
오랫동안 한국영화사를 주조해온, ‘빈곤의 미학’으로서의 리얼리즘은 이와 같은 근대세계의 보편성에 맞닿아 있다. 영화사가
이영일은 ‘리얼리즘’이라는 개념 아래 <
아리랑>(1926)을 비롯한
나운규의 영화 세계와 <
수업료>(1940), <
집 없는 천사>(1941)같은
최인규의 영화들, 그리고 해방 후
유현목의 <
오발탄>(1961)으로 이어지는 한국영화의 정전 목록을 제시한 바 있다. 수탈당하는 소작민의 울분을 그렸던 <아리랑>,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을 담은 <수업료>와 <집 없는 천사>는 <독류>나 채플린의 영화들, 더 나아가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이나 <오발탄>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빈곤이라는 근대세계의 보편적 주제를 다뤘다. 예컨대 낡은 구두가 메아의 가난을 표상하듯이 할머니가 주워온 짝이 맞지 않는, 구멍마저 뚫린 신발은 영달의 빈곤한 처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집 없는 천사>가, 그리고 이어서 <수업료>가 발굴되어 다시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이영일의 정전 목록은 대체로 받아들여졌다. 식민 말기의 영화들에 대한 연구가 풍성해지는 가운데, “2차대전 후 네오리얼리즘을 연상”시킨다(이영일)는 전언과 몇 장의 사진을 통해서 최인규 영화의 면모를 짐작해왔던 후세대는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서하는 <집 없는 천사>의 마지막 장면에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업료>는 그보다는 덜 노골적이지만, 일제의 ‘소국민 담론’ 안에서 소비된 맥락으로 보든, 서사의 논리적 구조로 보든 이른바 ‘친일영화’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수업료> <집 없는 천사>를 비롯해 새로 발굴된 식민 말기 친일영화들의 내적 논리를 밝히는 가운데, ‘균열’ 또는 ‘징후’로서 드러나는 조선영화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논의들이 생산되었다. 하지만 친일영화임이 분명한 이상, 어떤 균열이나 징후가 있더라도 이 영화들이 민족영화의 정전으로서의 위상을 고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름의 발굴로 인해 오히려 모호해진 최인규 영화의 영화사적 위상을 다시 정립하기 위해서는 ‘빈곤의 미학’으로서의 리얼리즘을 민족영화의 정점으로 구성해온 이영일의 영화사론을 재고해야 한다. 요컨대 최인규의 영화들은 리얼리즘과 민족영화의 균열지점을 보여주는 문제적인 텍스트들인 것이다.
빈곤의 미학으로서의 리얼리즘이 식민지시대를 넘어 <
꼬방동네 사람들>(1982)이나 <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같은 1980년대 영화들까지 규정하는 틀로서 이어져 온 긴 역사를 생각했을 때, <수업료>와 <집 없는 천사>를 민족영화의 정전에서 배제하는 손쉬운 방법은 해결책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빈곤이야말로 20세기 한국의 대중이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였던 것이며, 그것을 다루는 영화 매체의 보편적 능력을 외국영화들뿐 아니라 식민지 조선과 한국의 영화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리얼리즘으로 한국영화의 “정신의 광맥”을 구성하고자 했던 이영일의 영화사론을 효과적으로 논박하기 위해서는, 빈곤의 재현이 리얼리즘으로 규정되고 그것이 곧 민족영화의 핵심이자 세계적 보편성에 가닿는 것이 되는 논리적 도약이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유효할 수 있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1930년대 초에 카프 비평가들이 나운규의 영웅주의를 아메리카니즘이라고 비난했을 때, 나운규는 자신 또한 “이 현실에 생활고를 느끼는 프롤레타리아의 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영화가 왜 프롤레타리아 영화가 될 수 없는지를 반문했다. 더글러스 페어뱅크스가 분한 쾌걸 조로가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권력으로 인민을 압박하는 자를 징계하는 것으로 자기 사명”을 삼았던 것처럼 <아리랑> 연작의 영진이나 <
철인도>의 개고기 같은 나운규의 활극적 캐릭터들은 비참한 상황에 처한 식민지 조선인들을 ‘영웅적 활동’으로써 구원한다. 나운규와 카프 비평가들은 억압과 수탈의 사회구조와 그로부터 비롯된 대중의 생활고를 다루는 것이 영화의 역할이라고 믿었지만, 나운규는 영웅적 개인의 ‘활동’으로써, 카프 비평가들은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으로써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달랐다. 1930년대 초 나운규 영화 세계에 닥친 위기는 아메리카니즘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프 비평가들 또한 승자가 아니었는데, 그들이 옹호했던 소비에트 영화의 미학은 일제의 검열에 의해 아메리카니즘의 영웅주의보다 더 철저하게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수업료>의 ‘리얼리즘’, 즉 사회적 빈곤의 재현은 모두가 패배한 바로 그 상황에, 조선 영화미학의 폐허 위에서 자라났다.
<수업료>는 가난의 서사가 갖는 보편성에 기반 해서 전개된다. <독류>에서 메아가 쇼윈도우에 전시된 구두를 바라보는 것처럼, <수업료>에서 영달은 또래 아이와 그 아버지가 새 신발을 사는 모습을 쓸쓸하게 지켜본다. 다른 이들과의 비교를 통해 선명하게 부각된다는 점에서 가난은 상대적인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인 의미망 안에서 제시된다고 말할 수 있다. 메아의 구두가 일터로 나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필품이었다면, 영달에게 수업료는 학교라는 사회에 머무르기 위한 기본적 요건이었다. 수업료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한 영달과 정희가 강가에서 책을 읽는 모습으로부터, 교실에서 책을 읽는 다른 아이의 얼굴로 넘어가는 장면의 연결은 ‘공부’ 또한 특정한 사회적인 의미망 안에 놓여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65년 <
저 하늘에도 슬픔이>에서는 주인공 윤복의 눈물겨운 ‘고학’의 정경이 더욱 절절하게 그려지는데, 이는 당시가 제도교육을 통해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신화가 본격화된 시기라는 점과 관련되어 있다. 못 배운 한과 가난의 대물림, 고학을 통한 가난으로부터의 탈출 같은, 근대적 교육제도를 둘러싼 재현의 관습들은 산업화 시대의 산물인 것처럼 보인다. 당장 굶더라도 학비를 마련해서 학교에 가야 하는 것은 가난이 현재의 곤경인 동시에 미래의 박탈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수업료>에서 가난과 공부는 개인의 미래보다는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식민 말기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불우한 아이를 도와주고 계도하여 공동체의 성실한 성원으로 만드는 ‘아동영화’의 주제가 당시 사회상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는 불우한 부랑아들과 뉘우친 불량배들이 함께 황국신민의 서를 외우는 <집 없는 천사>의 마지막 장면에 오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요컨대 조선인들은 모두(그들의 신체적 나이와 상관없이) 훈육과 계도를 받아야 할 어린아이이며, 이들에 대한 교육은 ‘대동아’의 ‘공영’을 위한 일본제국의 의무이자 권리인 것이다. 서두에 일본 제국의 일부로서 조선 반도를 위치 짓는 지리 수업을 보여줌으로써 <수업료>는 식민지에서 제도교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하게 하지만, <집 없는 천사>와 같은 직접적인 선전 메시지를 담지는 않았다.
대신, <수업료>의 세계에는 수원성에 둘러싸인 그림 같은 조선의 정경과 선의로 가득한 생활 공동체의 성원들이 있다. 월급을 털어 영달의 월사금을 주는 일본인 교사, 영달과 병든 할머니의 생계를 걱정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친구 누나, 영달의 곤궁한 처지를 돕기 위해 ‘우정의 상자’에 돈을 모으는 학우들과 교사들, 그리고 월사금을 얻기 위해 60리 길을 걸어온 영달에게 따뜻한 밥을 차려주는 아주머니 등이 구성하는 그 세계에서 사회적 빈곤은 투쟁이 아니라 자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그려진다. 영웅적 개인의 활동을 통해서든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에 의해서든 간에, <수업료> 이전의 가난은 투쟁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는 갖고 누구는 갖지 못한 사회적 불평등은 수탈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인식, 그리고 이와 같은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는 인식은 카프 비평가들뿐 아니라 나운규조차도 공유하고 있던 것이다. 그들이 모두 패배한 뒤에, 특히 계급투쟁의 좌파적 상상력이 절멸된 위에서 이웃의 온정이 사회적 빈곤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부상했음을 <수업료>는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