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현해탄은 알고있다 김기영, 1961

by.김소영(영화평론가) 2012-07-05조회 5,748
현해탄은 알고있다

김기영 감독의 1961년 작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학병을 싣고 가는 군함으로 시작한다.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이 위의 정보를 전한다. 정면으로 군함의 풀 샷이 보이고 , 조타 중인 조정실이 보인 인 후 숏이 바뀌어 일본 장교(김승호)와 등을 보이고 앉은 군인이 보인다. 

일본 장교가 묻는다. 네 이름이? 아로운입니다. 일본 장교는 아로운! 이라고 말한 후 그가 요주의 인물로 분류 되어있음을 알린다. 군함에 경계경보가 울리고 선실의 병사들은 경계 태세로 들어간다. 처음부터 거의 인물들을 정면 숏으로 프레임에 넣고 기둥 등으로 프레임을 정확하게 나누는 이 영화는 군인들이 경계 태세를 갖추는 이 장면을 트레킹을 처리하는데, 카메라가 트레킹으로 두 선실을 수평으로 가로지름으로서 그 두 선실의 한쪽 벽이 카메라를 향해 개방되어 있는 세트임을 명백하게 전경화 한다. 연극 무대 장치처럼 한쪽 벽이 없는 혹은 그 벽이 관객에게 열려있는 세트장 임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어 바다가 보이고 현해탄(玄海灘 )이라는 타이틀 자막이 뜬다. 배우를 비롯한 스탭 소개 크레딧이 물결치는 바다 위로 중첩된다. 일본에서는 현계탄(玄界灘, 겐카이나다)로도 부르는 이 현해탄을 아로운(김운하)을 비롯한 학병들이 1944년 나고야로 가기 위해 건넌다. 

공중 샷(aerial view)으로 도열한 군함들이 미니어처 촬영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세트의 전경화와 미니어처 촬영으로 어느 정도의 비평적 거리감 혹은 반대로 어떤 영화적 위용(spectacle)이 만들어진 후 , 우리는 이들 학도병이 나고야의 수송 부대로 배치되고 내무 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일본군 모리 (이예춘)는 다시 문제아로 아로운을 호명한다. 이후 영화는 모리가 아로운을 새디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보게 된다. 마구 구타하고 , 자신의 똥 묻은 군화를 혀로 핥고 삼키게 하는 등의 군대가 아닌 수용소의 전쟁 포로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아로운은 비인간으로 전락한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개의 중요한 참조틀이 있다. 우선 이 영화의 원작자인 한운사의 이 영화 관련 소설 TV , 라디오 방송극 등이 있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 <남과 북>, <아낌없이 주련다>,<빨간 마후라>,<잘돼갑니다>,<나루터 3대>등의 작품이 있으며 노래 <잘 살아보세>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1)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주인공 이름을 딴 아로운(아큐정전의 그 아(阿) 다)삼부작 『현해탄은 알고 있다』(정음사, 1961), 『현해탄은 말이 없다』(정음사, 1961), 『승자와 패자』(정음사, 1961)의 연작은 “현해탄 3부작”으로 불리기도 한다 .

1. 활유법과 현해탄 

한반도의 지리적 경계이자 정동의 장소인 두만강, 압록강, 황해등과 더불어 보면 현해탄은 두만강과 더불어 현해탄 서사라 불릴 만큼 사연이 많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주인공 학병 만이 아니라 수많은 청년들, 중장년들이 현해탄을 건넜다. <현해탄> 이라는 시집을 쓴 임화 역시 1929년 도일했다. 

한운사의 현해탄 서사는 임화의 『현해탄』보다 몇 년 뒤에 일어난 학병 경험을 소재로 하고 4.19 혁명이라는 청년 정치의 파고 속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배열, 거울 쌍을 만들뿐만 아니라 소설, 라디오, 영화 등의 멀티미디어로 다종다기, 파생하는 예를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40년대 중반과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의 두 시간 대가 만나 역사적 짝패(pairing)를 이루고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생성되고 , 역사적 쌍과 거울 쌍은 소설, 라디오, 다매체를 횡단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복합성 속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화자의 문제다. 곧 시대를 종단하고 매체를 횡단하는 복합적 텍스트가 되는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제목에서 소위 활유법, 무생물을 생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식을 택하고 비유법인만큼 이것은 당연히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무생물인 현해탄이 정보나 지식을 가질 리 없다 .인지나 지각을 할리 없다. 그럼에도 현해탄은 알고있다 라고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한 많은 식민지 역사의 목격자로서의 위치를 현해탄에 부여하는 것이며 , 식민지 역사의 앎의 장소로서 현해탄을 호명하는 것이다. 

활유법(prosopopeia)에 대해 미셀 리파테르 (Michel Riffaterre)는 퐁텐니에(Fontanier)의 활유법에 대한 글쓰기를 환기시키면서 이것이 의인화와 달리 부재한 것, 죽은 것, 초자연적인 것 혹은 비생물적 존재들을 무대화 한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것처럼 이것들이 행동하고 말하고 대답하게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것들은 우리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 증인, 고소인, 복수하는 사람, 판사 등등이 된다고 설명한다. 2)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 현해탄은 목격자, 증인, 일종의 식민지의 침묵, 무언의 아카이브지만 언젠가는 입을 떼고 , 문을 열 아카이브가 된다. 왜 현해탄이 살아있는 것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 예컨대 앎의 주어 일 뿐만 아니라 , 잠재적으로 말할 수 있고 증언할 수 있는 생명체로서 기능이 부여되는 - 활유법을 증여받는가는 명백하다. 살아있는 것, 식민지의 하위 주체, 서벌턴이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있으나 식민화된 주체는 오히려 말할 수 없는 비인간이 되고 생명을 갖지 않는 현해탄은 활유를 통해 살아난다. 이런 역설을 드러내기 위해 현해탄이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현해탄이 알고 있다는 것은 또한 훗날 복수의 근거가 된다. 현해탄이 증인이고 증언이기 때문이다. 

2. 고백, 진실, 섹스 

김기영 감독 영화는 학병 아로운을 다루면서 활유의 공간으로서의 현해탄과 대구를 이룰만한 하나의 양식을 적절히 활용한다. 그것은 고백이다. 아로운은 평범한 일본 여성 히데꼬(공미도리)와 연인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들의 관계가 시작되고 지속되고 발전되는 방식은 아로운이 히데코에게 자신이 일본군에게 구타당하고 학대받은 것에 대한 고백을 하는 것이다. 히데코 역시 처음에는 조선인들이 도둑질을 일삼는 민족이라는 인식을 가진 일본 여자 였으나 아로운이 당한 폭력의 내용을 듣고 그것을 지켜봄으로써 아로운을 사랑하게 된다. 위의 활유화된 현해탄이 학병으로 끌려가는 조선인들을 지켜본 무언의 증인으로 설정되었다면, 일본 여성 히데코는 증언을 듣는 자, 청자로 설정 되어 있다. 인종적, 권력적 폭력이 매개한 이 관계는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고백과 진실과 섹스가 식민지의 담론으로 배치되는 순간이다. 이 담론의 복잡한 역학을 사실 현해탄인 들 알 수 있었겠는가?


1) 한운사의 작품에 관한 연구로는 윤석진,<방송극 작가 한운사의 ‘통일 연습 시리즈’ 고찰1: 반전 드라마를 중심으로>,한국문학연구 39집 , 김예림의 <치안, 범법, 탈주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전후(前後>, 대중서사 연구 제 24호 , 이 경숙의 <한운사의 ‘아로운(阿魯雲)’ 삼부작 연구>,『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 33집 (10권 4호) 등이 있다. 

2) Michael Riffaterre,“Prosopoperia”,Yale French Studies, No.69,1985.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