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로 시작하는 노래 <
남과 북>(한운사 작, 박춘석 작곡, 곽순옥 노래)은 바로 영화 <남과 북>(1965, 한운사 작,
김기덕 감독), 그리고 이 작품의 원작인 라디오드라마 <남과 북>의 주제가이다. 1960년대에 쏟아져나온 수많은 6?25 전쟁 소재 영화중 <남과 북>은 반공주의로 기울지 않은 매우 드문 작품이다. 한운사의 라디오드라마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같은 작가의 <
빨간 마후라> 등과 비교해 보아도, 반공주의의 색깔이 많이 희석된 독특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작품은 여러 매체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작품 중 하나일 터이다. 1964년 KBS의 28부작 라디오드라마로 처음 발표(홍두표 연출)된 이후, 1965년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로, 1972년에 KBS에서 최상현 연출의 13부작 텔레비전드라마로, 1984년
김기 감독의 영화로, 1992년에는 MBC에서 고석만 연출의 2부작 텔레비전드라마로 제작되었고, 1996년에는 KBS에서 다시 라디오드라마로 리메이크했다. 여기에 리라이팅 소설과 뮤지컬까지 만들어졌으니, 아마 신파극 <장한몽>이나
나운규의 <
아리랑>을 제외하고는 이 정도의 리메이크 기록은 깨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작품의 핵심이 매력적이고 탄탄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용은, 6?25 전쟁 막바지에 전선에서 만난 남과 북의 두 장교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겪는 비극이다. 국군 대위 이해로는 전선을 뚫고 남하하여 투항한 인민군 소좌 장일구를 잡는데, 그 장일구가 자신의 아내 고은아와 그 아들을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남하했음을 알게 된다. 장일구는 인민군의 총공격 정보를, 고은아를 데려오는 조건으로만 털어놓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그를 담당한 정보참모는 48시간 안에 고은아를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장일구에게 정보를 빼내려 한다. 이미 이 구도만으로도 작품은 팽팽한 긴장으로 넘친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일구와 고은아가 열정적인 사랑을 했고 이미 그들 사이에 아이까지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사랑은 안타까운 사랑이 되어 있다. 그러나 전쟁으로 장일구와 헤어진 이후 간호장교로 일하던 고은아를 열정적으로 설득하고, 결국 장일구가 돌아오면 그에게 돌아가도록 해주겠다는 약속까지 한 후 결혼한 이해로와의 사랑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이들 사이에도 이미 임신 3개월의 아이가 생겨나 있다. 삼각관계는 한껏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으로 넘친다.
여기에 48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과, 인민군의 총공격이 임박하여 빨리 정보를 빼내야 한다는 조건이 긴장감을 더한다.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는 장일구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고, 이해로가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고은아를 장일구 앞에 대령해야 한다. 시간이 마냥 주어진 것도 아니고 적진에서는 총성이 들리기 시작하는데, 악천후 속에서 청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고은아를 데려와야 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행동을 마무리해야 하는 이러한 설정은 ‘웰 메이드 플레이’의 정석을 보여준다.
이 점은, 다소 늘어질 수 있는 28부작 드라마를 2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해도 매우 잘 짜여진 구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바탕이 되었다. 이해로 역의
최무룡, 장일구 역의
신영균, 고은아 역의
엄앵란, 정보참모 역의
남궁원이 열연하는 영화 <
남과 북>은 1960년대 작품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팽팽한 긴장감과 빠른 속도감을 지닌 작품인 셈이다. 당연히 드라마에 비해 영화는 훨씬 속도가 빠르다. 드라마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장일구의 과거 이야기,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수재 장일구의 성장과정, 상전 집 고명딸 고은아의 사랑 등 방송극 특유의 일상성을 과감히 제거했다. 그 결과 영화의 속도감과 구성은 좋아졌으나, 대신 군대 내의 논의 과정에서 전달되어 오는 작가의 전쟁관, 즉 6?25 전쟁이 우리의 선택이 아닌 국제적 역학관계의 산물이라는 내용 등이 제거되었고, 고은아와 결혼할 때에 약속했던 것처럼 장일구에게 아내를 내어주겠다는 이해로의 고뇌 장면도 많이 제거되었다. 그 결과 영화에서는 이해로가 다소 약화되어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장일구와의 힘의 균형이 다소 깨어진 아쉬움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빛나는 지점은, 수많은 반공적 작품이 생산되고 있던 1960년대 중반에 이 작품을 반공이 아닌 반전의 주제의식 몰고 간 점, 주인공들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파적 갈등 속에 던져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절제감과 격조를 유지하며 이야기를 끌고간 점 등이다.
여러 리메이크 버전을 놓고 비교해 보면 결말 처리가 계속 달라지고 있음이 눈에 띈다. 1964년 원작 드라마와 1965년 영화의 결말(영화에서는 마지막 부분 필름이 유실되어 시나리오로만 확인할 수 있다)은 이해로와 장일구가 모두 전선에서 죽는 것으로 끝난다. 이해로와 장일구, 고은아의 삼자대면에서, 이해로는 자신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결행을 하여 고은아를 만나러 온 장일구의 사랑을 보며 약속대로 고은아를 양보하겠다고 하고, 장일구는 이미 멋진 남자와 결혼하여 잘 살고 있는 고은아를 보며 자신이 물러나겠다고 하고, 고은아는 울다가 탈진하여 의무실로 실려 간다.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이해로는 전투에 나가게 되고 거기에서 어이없이 전사하는데, 이 소식을 들고 충격을 받은 장일구는 이해로를 죽인 놈들을 가만 둘 수 없다며 맨몸으로 총격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뛰어나간다. 이때 정보참모가 ‘빨갱이들의 총에 죽게 할 수 없다’며 장일구를 자신의 총으로 쏘아 죽인다. 가장 비참한 결말이지만, 전쟁의 비극을 부각하기에는 가장 좋은 결말이다.
그런데 1972년 텔레비전드라마에서는 전쟁이 끝난 4년 후 그간 소식을 끊고 살다가 정보참모를 찾아온 장일구에게 4년 전 이해로의 전사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반면 1984년 영화에서는 장일구만 이동 중에 사고로 죽는다. 1992년 MBC 드라마에서는 이해로는 부상당한 채 살지만, 장일구는 이동 중 사고가 나서 어수선해진 틈에 정보참모의 총을 꺼내 자살한다. 두 명을 모두 죽이는 애초의 결말이 너무 처참해서 어쨌든 한 명이라도 살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작가가 아무리 측은지심을 발휘하려 해도 전쟁의 비극은 엄연하다. 1964년 드라마와 1965년의 영화가, 수많은 리메이크 중 가장 뛰어난 버전으로 남은 것은 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