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남과 북 김기덕, 1965

by.박유희(영화평론가) 2012-05-03조회 3,168
남과 북

<남과 북>은 ‘분단 멜로드라마’의 원조이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 말이 있다. 개인의 사랑은 어떠한 경우에도 막을 수 없다는 낭만적 사랑의 신화를 집약하는 말이다. 이러한 믿음은 근대적 결혼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도덕적 조건으로 작용한다. 근대 이전에 분리되었던 사랑과 결혼이 부르주아적 도덕에 의해 합체되며 ‘사랑하면 결혼한다’, 혹은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인과적 공식을 형성한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이러한 공식에서 출발하는 장르이다. 열렬히 사랑하는 두 주인공은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 하고 당연히 결혼을 원한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을 가로막는 ‘혼사장애’로 인해 그들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주인공의 의지와 그것을 방해하는 혼사장애 사이의 충돌이 멜로드라마의 서사적 갈등을 이룬다. 여기에서 ‘혼사장애’로 작용하는 것은 그 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반영한다. 멜로드라마가 가장 사적(私的)인 동시에 공적(公的)인 장르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강력한 혼사장애는 ‘분단’이었다. 사랑이 다른 국경을 다 넘을 수 있다 해도 결코 넘을 수 없는 것이 ‘휴전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단’은 전쟁이나 천재지변과 같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을 만들어내는 원천으로 작용해왔으며, 시기에 따라 그 결이 달라지는 숙명적 비극을 만들어왔다. <길소뜸>(임권택, 1985)이나 <국경의 남쪽>(안판석, 2006) 등은 모두 그러한 영화들이다. 그리고 그 첫머리에 <남과 북>이 놓이는 것이다.

<남과 북>은 낡은 철모가 덩그마니 놓여있는 화면 위로 1983년 ‘이산가족찾기’의 주제가로 쓰여 너무도 유명해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가 흐르며 시작된다. 이 오프닝은 이 영화의 감상적 비극성의 정조를 그대로 드러낸다. 곧이어 인민군 소좌 장일구(신영균)는 남쪽에 사는 약혼녀 고은하(엄앵란)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포로가 된다. 그들은 주인의 딸과 머슴으로 만났지만 신분을 넘어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했고 여섯 살 난 아들까지 둔 사이이다. 그러나 고은하는 장일구를 기다리다 가까운 곳에서 손을 내미는 이 대위(최무룡)과 결혼했고 이 대위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 그런데 장일구 소좌를 포로로 잡은 이가 바로 이 대위이다. <남과 북>은 이러한 극적 우연성 속에서 삼자대면을 향해 급박하게 진행된다. 

세 인물이 만나는 장면에서는 피학적인 정서가 넘쳐흐른다. 장일구는 이 대위에게 고맙다고 하며 두 사람을 축복하고, 이 대위는 만일 장일구가 찾아오면 자신이 물러나겠다는 것이 청혼의 조건이었다며 아내를 양보하려 한다. 이러한 정황은 결국 잘못은 아무에게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강박성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각자의 책임감을 과도하게 표출함으로써 각자의 도덕성과 그들이 처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피학과 가학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피학적 에너지는 결국 가학적 에너지로 전화(轉化)되어 세 사람을 모두 쓰러뜨린다. 그것은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안절부절못하던 고은하가 실신하여 들것에 실려 나감으로써 표면화되기 시작하여, 장일구와 이 대위 모두 죽음에 몰아넣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여기에서 모두가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이며, 결국 어느 한 쪽만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남북한 대치 상황에서의 선택은 모두 다 불행해져 버리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이러한 피학성은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제작되던 시대는 중공군에게 강간당할 위기에 놓인 국방군 여포로를 인민군이 구해 귀순하는 내용을 그렸다는 것 때문에 영화감독이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 들어가던 때였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도 장일구의 죽음은 원작과 달리 처리되었다. 원작에서는 이 대위가 인민군의 총에 맞아 죽는 것과 같이 장일구도 국방군 정보장교의 총에 맞아 죽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장일구는 이 대위의 전사 소식을 듣고는 자살한다. 장일구가 북한군의 정보를 다 주며 남한에 협조한 상태에서 남한군이 그를 죽이는 것으로 설정하는 것이 영화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시종일관 감상적 정조로 덧칠되는 이 영화의 피학성은 분단 멜로드라마가 지닌 본질적 정치성을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하는, 당시에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었다. 국방군은 절대선, 인민군은 절대악이라는 이분법의 시대에 ‘모두가 불쌍하다’는 인식을 눈물로 길어 올린 것은 당대의 인식에서 진일보한 지점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이후 20년 동안 한국영화에서 이러한 인식이 오히려 퇴행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 영화가 이룬 성취가 더욱 값지게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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