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수취인불명 김기덕, 2000

by.남동철(BIFF 아시안필름마켓 실장) 2012-02-03조회 4,294
수취인불명

<수취인불명>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가운데 예외적으로 자전적 요소가 가장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혼혈로 태어나 불행하게 살다간 어린 시절 친구를 기억하며 만든 이 영화에서 김기덕은 죽은 친구뿐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역시 깊이 투영했다. 이런 자전적 요소 탓에 <수취인불명>은 현실만큼 환상 혹은 비현실을 중요하게 다루는 그의 다른 영화들과 다르다. 여기엔 환상이나 비현실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이 많고 이야기가 복잡하다는 점에서도 예외적이다. 초기 몇 년간 김기덕은 이야기를 매끄럽게 다루지 못하는 감독이라는 비판이 뒤따랐으나 <수취인불명>은 그런 비판을 불식시킨다. 이 영화는 어떻게 하면 이야기에 역사의 무게와 두께를 더할 것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될 만한 영화적 화술을 보여준다. 1970년대 한국을 그린 영화 가운데 <수취인불명>만큼 섬세하며 절절하고도 풍부한 영화를 달리 본 적이 없다.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리라>의 첫 구절에 쓴 것처럼 <수취인불명>은 각각의 이유로 불행한 인물들을 그린다. 창국은 양공주 어머니를 둔 혼혈이어서, 지흠은 사랑하는 여자조차 지키지 못하는 유약한 젊은이여서, 은옥은 어린 시절 오빠의 장난으로 한쪽 눈을 잃어서 불행하다. 그들 부모 세대도 각각의 이유로 불행한데 창국의 어머니는 자신을 미국에 데려가기로 약속한 남편한테 아무 연락도 못 받고 있어 불행하고 지흠의 아버지는 낙동강 전투 때 인민군 3명을 죽인 대가인 훈장을 받지 못해 불행하다. 한편 개장수 개눈은 젊은 날부터 연모했던 창국 어머니를 미군에게 뺏긴 전력이 있어 불행하고 은옥의 어머니는 죽은 남편 앞으로 나오던 연금이 하루아침에 취소되는 사태를 맞아 불행하다. 은옥의 눈을 고쳐주는 미군 병사 역시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는 세계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미군의 대의명분을 믿지 못하며 의미 없는 군대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마약에 빠져든다. 

김기덕 감독은 이들 각각의 불행을 가학과 피학의 그물망으로 걸러낸다. 개눈이 개를 두들겨 패고 창국이 자기 어머니를 때리며 개눈은 그런 창국을 개처럼 패다 마침내 개들에게 목이 졸린다. 동네 불량배가 지흠을 때리면 창국이 불량배를 혼내주며 영어로 까불던 녀석들은 영어로 앙갚음을 당한다. 은옥에게 시력을 되찾아준 미군 역시 기어코 다시 은옥이 자기 눈을 찌르게 만든다. 불행은 이렇게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의 쳇바퀴를 만들어간다. 잃어버린 눈을 되찾기 위해 미군의 품에 안겨야 했던 은옥에게서 창국 어머니의 삶을 연상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은옥이 미군 병사와 함께 있을 때 개눈이 경고를 하는 것도 은옥도 그가 사랑했던 창국 어머니처럼 될지 모른다는 걸 은연중 알았기 때문이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지흠 아버지처럼 지흠 역시 영화의 마지막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는다. 은옥을 지키지 못한 지흠은 자신의 개도 지키지 못했고 친구 창국도, 창국의 어머니도 지키지 못한다. 백정이라고 따돌림 당하고 개한테 화풀이하던 개눈이나 혼혈이라 차별 받으며 어머니를 구타하던 창국 또한 운명의 반복이란 점에선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각각의 이유로 불행했던 그들은 불행을 반복한다는 점에서만은 비슷해 보인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다룬 많은 영화와 책에서 한국전쟁은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의 참혹한 비극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대부분 적은 무언가 지목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공산주의든, 자본가 계급이든, 전쟁 자체이든, 이데올로기 자체이든 말이다. 하지만 <수취인불명>에서 등장인물들의 불행을 만들어낸 원인은, 그들의 불행을 막기 위해 싸워야 할 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때로 미군이, 때로 반공이데올로기가, 때로 가난이, 때로 뒤바뀐 운명이 물리쳐야 할 적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이유로 불행한 그들에게 공통의 적이 무엇인지 지목하기란 불가능하다. 굳이 말하자면 한국 현대사 전체가 악의 화신처럼 보인다. 손쉽게 타자화하거나 적과 나를 구분할 수 있을 때 편안한 감상이 가능한 것과 달리 <수취인불명>은 그래서 불편하고 무섭다. 누구 탓으로 돌릴 수 없는 비극이기에 그걸 막을 도리도, 피할 방법도 없다. 역사를 다루는 이런 태도를 나는 <수취인불명>이 이룩한 독보적 성취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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