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2003

by.김봉석(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평론가) 2011-08-03조회 5,377
지구를 지켜라

<지구를 지켜라>가 장준환의 유일한 영화가 될 리는 결코 없겠지만, 장준환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특이한 영화로 남을 가능성은 꽤 높다. 한국영화계가 한창 타오르던 시절에 만들어졌기에 <지구를 지켜라>는 저예산 영화를 뛰어넘은 기이한 상업영화가 될 수 있었다. 차승재라는 탁월한 프로듀서의 힘도 컸다. 젊은 감독의 재능을 꿰뚫어본 노련한 프로듀서의 뚝심, 그리고 한국영화의 호시절이 괴상한 걸작 <지구를 지켜라>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지금도 이런 영화는, 이런 조합의 영화는 만들어지기 힘들다. 재능과 혜안과 타이밍이 제대로 맞물리기는 결코 쉽지 않다. 초저예산이라면 또 모를까. 그런 점에서 <지구를 지켜라>는 기묘한 걸작으로 남을 것이다. 한국영화사에서 유사한 영화를 찾기 힘든, 영화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괴상한 곳에 위치한 ‘저주받은 걸작’으로서.

허무맹랑하고도 처절한
<지구를 지켜라>는 누가 보기에도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병구(신하균)는 외계인의 지구 침공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지구인으로 위장한 외계인들이 곳곳에서 암약한 채, 며칠 앞으로 다가온 개기 월식이 되면 인류는 멸망한다고 분석한다. 동춘서커스단에서 외줄타기를 하던 애인 순이(황정민)와 함께 병구는 강사장(백윤식)을 납치한다. 화장실 변기와 이발소 의자를 조립해서 만든 고문 의자에 강사장을 묶어놓고 심문을 시작한다. 안드로메다 왕자가 어디에 착륙하는지를 말하라는 것이다. 당연히 강사장은 답을 하지 못하고, 병구는 고문을 시작한다.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어느 순간 우리의 현실과 분명하게 얽혀든다.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현실의 무게가 얹히고, 숨이 막힐 듯 처절해진다.

현실과 비현실의 혼재
장준환 감독은 공포와 유머라는 양날의 칼을 무지막지하게 휘두른다. <지구를 지켜라>에는 서로 상반된 것들이 이질감 없이 혼재한다. 현실과 비현실. 병구는 사람들을 납치해 외계인임을 실토하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을 선택한 이유는 개인적인 원한이다. 정상과 비정상. 병구는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이용해 스토리를 꾸며대는 강사장의 거짓말을 단번에 알아내지만, 코마 상태인 어머니를 살리는 약이 차 트렁크에 있는 벤젠이라는 주장은 그대로 믿는다. 이성과 광기. 병구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외계인을 물리쳐야 한다고 진지하게 믿고 있지만, 작업실에는 <양들의 침묵>처럼 잘라낸 손발과 장기가 가득 담긴 표본병이 널려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지구를 지켜라>는 본심과 너스레를 뒤섞어가며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망상을 통한 현실의 귀환
그러면서도 <지구를 지켜라>에는 고개를 끄덕일 만한 타당함이 있다. 병구가 왜 과대망상에 빠졌는지를 밝히기 위해 현실의 근거를 끌어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병구의 과거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사고로 죽고, 어머니는 식물인간이 되고, 애인은 파업을 하다가 맞아 죽었다. 병구는 선생에게, 불량한 친구들에게, 소년원의 교도관에게 무수하게 맞았다. 병구는 지옥에서 도망치기 위하여 ‘망상’을 택했고, 망상을 통해 다시 현실로 귀환한 것이다. 병구는 웃음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와 같은 과거를 지닌 인물이다. 황당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친구다. 신하균백윤식의 불꽃 튀는 연기 역시 그 모든 것을 농담이라고 돌릴 수 없게 만드는 요소다.

장준환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를 최고의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이한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지구를 지켜라>는 누구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섰던 한국영화다. 기존의 상식을 깨고, 자기만의 세계를 선언하는 진정한 데뷔작의 패기와 열정이 <지구를 지켜라>에는 시퍼렇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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