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삼공일 삼공이(301,302) 박철수,1995

by.변재란(순천향대학교 영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2015-03-04조회 8,599
삼공일 삼공이(301,302) 스틸

9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301 302>는 정신/육체의 이원론 아래서 여성의 영역은 정신/영혼이 아니라 육체/살이라는 전통적인 생각, 능동성과 욕망은 남성의 영역이고 수동성과 수용성은 여성의 것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면서 ‘식사 장애’라는 저항의 영역을 탐색하고 집/가정이라는 공간을 낯설게 한다. 이른바 ‘식사장애’는 이렇게 여성들에게 기대되는 동시적이고 모순적인 문화 현실 속에서 나타난 문화적?심리적?정치적 표현이다. 이것은 문화가 여성의 몸에 가져온 하나의 징후이다. 서구의 19세기 사회가 생산한 여성의 질병이 히스테리인 것처럼 현대사회가 생산한 여성의 질병이 식사장애인 것이다. 

이 영화는 2년 전 여전히 청년처럼 활약하다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된 고 박철수 감독의 제작·연출작이다. 장정일의 산문시 『요리사와 단식가』에 영감을 받은 스물을 갓 넘긴 이서군의 각본에 기대어 제작된 이 영화는 당시 본격적 컬트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이제는 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방은진이 배우로서 본색을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두 캐릭터의 몸과 그 몸의 연장으로서 체화된 공간 콘셉트를 반복하면서 여성의 욕망과 주체 형성과정에 주목한다. <안개기둥>과 <어미>로 여성과 모성에 주목해온 박철수 감독은 이 영화 이후 여성의 몸을 매개로 주체와 욕망의 관계를 풀어가는 일련의 영화들을 연출하였다. (<산부인과> <봉자> <녹색의자>등) 

익명성과 자유가 보장되는 독신자용 바이오아파트. 영화는 이웃인 301호와 302호, 즉, 요리광이자 식욕이 넘치는 송희(방은진)의 공간 301호와 거식증에 몸/욕망에 대한 글쓰기를 하는 프리랜서 윤희(황신혜)의 공간 302호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짜간다. 전공간의 부엌, 식당화를 보여주는 301호와 전공간의 서재화로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302호는 공간부터가 이 두 캐릭터의 체현이다. 이렇듯 상이한 공간, 상이한 캐릭터 사이에서 탐식과 거식이라는 대립적인 컨셉과 이미지의 교환과 충돌, 그리고 소통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이 영화의 핵심 줄거리를 이룬다. 

여성들의 거식증과 탐식증에 대한 심층 보고서인 이 영화는 당연한 일이지만 두 여주인공의 삶이 성/음식과 매개되어 표현되고 있다. 송희는 요리된 음식/성적 욕망이 남성 혹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 의해서 먹히지 않자 결국 자기 자신에 그것을 퍼부음으로써 몸과 욕망을 가시화시키고 드러낸다. 어느 날 저녁 그녀가 남편에게 반복적으로 이 음식 저 음식을 맛보게 하려고 할 때 남편의 거부가 반복되고 남편이 먹지 않은 음식을 꾸역꾸역 자기 입에 넣는 장면이 이어진다. 

애완견 살해를 통한 그녀의 이혼 과정은 충격적이지만 그녀의 요리에 대해 남편이 보이는 반응의 변화는 그녀의 탐식증이 남편에 대한 복수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학대의 순간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음식은 사랑의 대용물이 된다. 그렇게 남편에게 무시를 당하면서도 음식 만들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나 남편의 계속된 거부와 함께 그녀의 몸이 점점 비만해지는 과정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사실 그녀의 남편에 대한 분노는 바로 자신에게 한정된 그 노동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정당한 인정/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자료라는 이름의 너무 늦은 보상 덕분에 이제 송희는 요리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잘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상처와 외로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녀의 상처는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301호의 송희에게 음식은 자기 보상과 위안의 역할을 했다. 그녀는 양육자로서 여성의 역할로 욕망을 억제하다가 결국 그 욕망이 진탕 먹기로 터져 나옴으로써 비만에 이른다는 점에서 그러한 여성성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녀의 음식 만들기는 여성다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행위였으나 그것은 남편뿐 아니라 이웃과의 단절 속에서 좌절되었다. ‘301호’ ‘302호’로 불리는 현대 사회에서 요리하고 음식을 나누고 먹는 행위는 더 이상 아름답다고 미화되거나 살기 위한 방편으로 당연하다고 간주되지도 않고 단지 광기로서만 해석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이웃인 302호의 여자인 윤희는 음식/욕망을 욕망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욕망하게 된 또 다른 여성이다. 윤희는 정육점을 하는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이후 음식과 성을 거부하며 몸을 비가시적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런 그녀에게 이웃인 송희의 거듭된 음식세례는 폭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많은 거식증 환자가 그들을 성적인 먹이로 만든 여성의 육체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망에 불을 붙인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설득력을 갖게 된다. 거식증은 또한 자신의 의지력과 욕구에 대한 완전정복을 단언하는 여성의 질환이자 여성의 성역할이라는 함정에 빠지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일을 통해 자립하려 했던 윤희가 성이나 다이어트에 대한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은 지극한 아이러니이자 여성들이 취할 수 있는 막다른 골목이다. 그녀는 자립하기 위해서,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일, 그리고 자신의 몸을 배반해야 하는 모순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다. 

탐식증과 거식증이라는 이름의 식사장애는 남성과 경쟁하면서 동시에 여성적이어야 한다는, 성적인 대상으로 성공하면서 또한 가사노동과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돌봐야 하는 20세기 여성성의 추구가 현대 여성에게 부과한 모순된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두 개의 유지할 수 없고 모순적인, 자본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비자본주의적 위치라는 덫에 대한 저항이자 양육자라는 전통과 여성주체의 자기표현이라는 모더니티 사이의 갈등의 장이다. 

<301 302>는 바로 그 현재의 기대치와 우리가 지금 막 벗어나고 있는 과거의 기대가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충돌의 현장이 바로 여성의 몸이며 그것이 식사장애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모순의 틈바구니에서 301호와 302호, 송희와 윤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그들의 상처는 과연 치유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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