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당시 찬사를 보낸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KMDb 담당자로부터 <
베테랑>에 관한 글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청탁을 받았을 때는 다소 당황했다. “딱히 걸작이라고까지 생각한 적은 없는데요.” 평소 ‘한국영화걸작선’ 청탁이 들어오거든
임권택 감독의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나
유현목 감독의 <
불꽃>에 관해 쓰겠노라 공상해 왔거늘. 혹은
류승완 감독 영화 중에서 선택하더라도 <
아라한 장풍 대작전> <
주먹이 운다> <
짝패> 중 한 편을 골랐을 테고. 어쨌든 <베테랑>을 이 목록에 넣는 것은 작품의 성취를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베테랑>에 관해 할 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 이런 핑계로라도…….
영화진흥위원회 박스오피스 통계에 따르면 8월 5일 개봉한 <
베테랑>은 총 13,414,009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데뷔 이후 꾸준히 영화를 만들었으나 10년 동안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 팬을 노심초사하게 했던 감독이 지난 5년 사이에 남부럽지 않은 흥행작 세 편을 내놓았으며 그중 마지막 작품은 그해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작품이 됐다니, 감개무량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
베테랑>의 놀라운 흥행은 의아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흥행해도 괜찮은가? 이 영화에 관한 일반적인 합의에 선뜻 수긍해도 괜찮을까? 그리고 그 합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베테랑>의 성취가 단순해지고 있지는 않은가?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베테랑>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재벌의 횡포에 맞서 소시민인 베테랑 형사들이 자기 본분에 충실하게 맞서 싸움으로써 승리를 거두는 통쾌한 사회 비판 경찰 액션 영화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는 상당한 불안을 느낀다. 이 영화는 그렇게까지 수월하게 삼킬 만한 영화는 아니다.
나 역시 <
베테랑>을 보며 기쁨을 느낀 관객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기쁨은 형사 서도철이 온갖 방해 공작을 뚫고 망나니 재벌 3세 조태오를 기어이 혼내주고 정의를 구현했다는 데에서 온 기쁨은 아니다. 나의 기쁨은
류승완의 액션 연출이 한결 보기 편안하면서도 강도는 더 높아졌다는 것, 보기보다 복잡다단한 서사를 다루는 그의 화술이 여전히 능수능란하다는 것, 그리고 항상 장르와 현실 사이의 긴장과 씨름하던 그가 어떻게든 해피엔딩을 끌어내고자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영화를 장르를 내파하기 직전까지 몰고 가며 부지불식간에 자기 쇄신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에서 비롯했다. 이중 앞의 둘은 <베테랑>뿐만 아니라 류승완의 전작들을 함께 아우르며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테니, 여기에서는 마지막 기쁨에 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데뷔 이래 늘 영화광 출신 액션 감독으로 낙인찍힌 탓에 간과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사실
류승완은 언제나 장르와 현실 간의 불화와 씨름해온 이야기꾼이었다. 허문영 평론가는 <
주먹이 운다>에 관한 평론 「충무로 액션키드가 우는 까닭은?」에서 류승완이 처한 딜레마를 ‘액션영화를 만들기 위해 영화적 수련을 했는데 만들 액션이 없다’로 요약한다. 액션 영화의 기본은 주인공이 무력을 이용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지만, 류승완이 담고자 하는 현대 한국 사회는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주먹으로 해피엔딩에 이르기에는 그가 대적하는 상대는 너무 거대하며 세상에 대한 인식은 너무 냉정하다. 그는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피도 눈물도 없이> <
아라한 장풍 대작전>에서 사사롭거나 추상적인 적을 상대로 몸을 푼 뒤 <주먹이 운다>에서 ‘사회’를 끌어들였고, <
짝패>에서 그 사회를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러본 다음 그래 봐야 남는 건 자멸뿐임을 확인했다. 그런 다음에는 (<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를 통해 ‘옛날’ 장르 세계로 돌아가 흥행 참패를 맛보고 나서) 공공연히 장르로서의 액션에는 관심이 없어졌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과연 <
부당거래>는 주먹과 발 대신 정보의 흐름과 차단을 이용해 권력관계 안에서 싸우는 영화였다. (한편 지금으로써는 총체적 난국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
베를린>이 류승완의 세계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듯하다.)
그러나 <
베테랑>은 순도 100%의 액션 영화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유사한 장르 전통, 즉 형사 액션 영화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는 영화다. 멀게는 1940년대 필름누아르, 가깝게는 6~70년대 하드보일드 형사 영화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이 장르의 기본 논리는 사실상 앞서 이야기한
류승완의 딜레마와 무척 흡사하다. ①불의가 있다 → ②법 때문에 불의를 처단하기 어렵다 → ③내 손으로 해결한다. 이것은 법보다는 상식과 감정에 호소하는 장르이며, 사실상 주인공이 악당만큼이나 불편한 존재이기에 십상인 장르다. 많은 형사 액션 영화들은 이 위험을 피하고자 매우 다급하고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형사 주인공의 행동이 불가피하도록 내몰거나, 사법 절차를 매우 비합리적인 장애물로 만들거나, 혹은 주인공의 불편함까지도 끌어안고 네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보면서 모두 다 나빠진다는 식의 주제를 설파하는 길을 택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
베테랑>은 이런 완충 장치를 넣는 데에는 실패한 영화이며, 그럼에도 형사 액션 장르의 관습을 뒤엎음으로써 이를 만회할 가능성을 남기는 영화다. 나는 후자 때문에 <베테랑>을 지지하고
류승완의 다음 영화를 기대하지만, 전자를 간과한 채 마냥 ‘부패한 권력을 혼내주는 소시민 영웅의 통쾌한 액션 영화’라는 식의 찬사를 보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인정하자. 서도철 형사는 매우 위험하고 불쾌한 인물이다. 그는 서민 노동자로서 자신이 지닌 상식과 신념이 당연히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매우 시끄러운 아저씨다. 그는 “싸나이”와 “가오”를 필요 이상으로 입에 달고 살면서 의미심장한 일침을 가하거나 가르침을 주고 싶어 하고, 맞벌이 부부임에도 아내를 ‘당연히 집안일도 도맡아야 하는 여자’로 대우하는가 하면 동료 형사가 여자라는 이유로 “미쓰 봉”이라고 부르는 데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는 구식 성차별주의자고, 범인이 러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야 이 스키야!”라든가 “효도르와 크로캅” 같은 호칭을 쓰는 흔한 인종차별주의자이며, 필요하다면 공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폭력 경찰이다(그리고 이런 점을 지적한다면 틀림없이 ‘사회를 아직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든가 ‘사람 사는 게 그런 게 아니다’고 할 것만 같다). 형사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이 인격적 결함을 지닌 캐릭터인 것도 어느 정도는 장르 전통이지만, 서도철쯤 되면 <
더티 해리> 시리즈의 해리 캘러핸이나 <리쎌 웨폰> 시리즈의 마틴 릭스보다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아마도 한 문화권에서 일상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무례함의 한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
베테랑>이 한국 사회의 지긋지긋한 가부장적 기질, 시스템보다 우선하는 핏줄과 인맥 등을
류승완 영화 중에서도 전에 없이 빼곡하게 채워 넣으며 캐릭터 행동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불편함은 어느 정도는 의도한 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중 서도철 쪽에서 나타나는 많은 병폐는 유머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으며, 카메라가 그에게 상당 부분 이입하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이 <베테랑>의 가장 큰 결함이자 이 영화가 평단과 관객에게 고른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영화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뜻 환영해도 괜찮은 걸까?
따라서 영화가 시작한 뒤 한참 동안, 나는
류승완의 액션 연출이 더욱 보기 편해지면서도 섬뜩함은 잃지 않았으며 복잡다단한 플롯을 한 호흡에 엮어대며 정보를 쥐락펴락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솜씨도 여전히 능란하다는 점에 박수를 보낼지언정, <
베테랑>을 좋아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결국 이종격투기에 능한 재벌 3세와 주먹다짐을 벌여 이긴다 한들 통쾌할 리가 없을 텐데?
반전은 최후에 찾아왔다. 서도철과 동료들은 우여곡절 끝에 조태오를 궁지로 내몰고, 조태오는 도심 한복판에서 경찰을 치고, 시민들의 차를 부수고, 행인들을 위협하며 도주한다. 서도철은 조태오의 차 밑으로 오토바이를 밀어 넣어 추격전을 멈춘다. 행인들이 둘러싼 가운데 무대가 마련된다. 나는 이전에 거의 똑같은 장면을
류승완의 다른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그가 제작자로 참여하고 각본을 썼으며
권혁재 감독이 연출하고
설경구가 음모에 휘말린 전직 형사로 출연한 액션 영화 <
해결사>의 클라이맥스에서다. 거기서도 주인공과 악당은 추격전 끝에 도로 한복판에서 싸움을 벌인다. 추격전이 끝난 순간 악당의 운명은 사실상 결정돼 있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분을 풀기 위해, ‘가오’를 세우기 위해 악당과 대결을 벌여 상대를 때려눕힌다.
서도철은, 시민들의 시선을 의식한 다음, 체포하고자 하는 상대를 호명하고, 또박또박 미란다 원칙을 읊는다. 만약 <
베테랑>에 명대사가 있다면, 그건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가 아니라 바로 이 미란다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추격을 중단하고 주먹을 휘두르기 전의 절차. 형사 액션 영화의 오랜 전통 안에서 미란다 원칙은 대체로 정의 수호를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사법적 장애물 노릇을 해왔다. 형사가 긴급 상황에 몸을 던져 범인을 잡아놓으면 악덕 변호사가 나타나 미란다 원칙 고지 문제를 들먹이며 유유히 범인을 빼낸다. 이에 넌덜머리가 난 형사들은 종종 <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 형사처럼, “너 같은 새끼한테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어. 어? 어? 그리고… 그다음은 생각이 잘 안 나, 이 XX놈아. 나중에 판사가 물어보면 들었다고 그래, 무조건. 어? 이 XX놈아.”라고 농담 반 욕설 반으로 무시하기도 한다. <베테랑>은 악당이 저지른 무수한 악덕의 목록을 열거하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경찰의 선언을 클라이맥스로 삼는 드문 영화다.
그런 다음 예상했던 서도철과 조태오의 액션이 펼쳐진다. 그런데
류승완은 악당을 두들겨 패는 대신 주인공을 두들겨 패는 데에 공을 들인다.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는 서도철이 의도한 바다. 체포 과정에서 폭행을 가했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일단 맞는 모습을 CCTV 기록에 남기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맞아줬다고 말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아프게 맞는다. 그는 머리로 유리창을 들이받고, 차 문짝에 다리를 찍히고, 소화전에 가슴을 찍힌 다음에는 한동안 숨도 못 쉰다. 그렇게 한참을 맞은 다음 “이제부터는 정당방위다.”라고 호기롭게 외치며 2차전을 벌이지만, 그 뒤로도 뺨을 몇 대 친 정도가 전부일 뿐, 죽도록 얻어맞고 결국 발목까지 꺾여 일어나지도 못한다. 그렇게 조태오를 붙들어둔 서도철은 동료들이 도착하자 피떡이 된 얼굴로 웃으며 말한다. “이 XX 싸움 X나 잘해.”
액션 영화의 맥락에서, 또
류승완 영화의 맥락에서, 이 장면과 대사는 기묘한 쾌감과 슬픔을 불러온다. <
짝패>에서, 두 짝패는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그 결과는 죽거나 나쁘거나였다.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했다. 그들이 얻은 건 ‘가오’뿐이었다. <
베테랑>은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 저놈이 나보다 싸움을 잘해, 라는 패배의 인정은 마초 수컷 세계에서는 ‘가오’ 떨어지는 일이다. 혹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맞는 것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서도철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지금껏 끊임없이 구부려왔던 절차를 바로 펴 지킨 다음, 자기 성질을 버리고 액션에서 완패함으로써 승리를 거둔다. 그런즉 돌이켜보면 <베테랑>은 서도철이 체포한 상대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거짓 상처를 내고 거짓 증거를 만들어 폭행했던 순간부터 이어져 온 이야기였던 셈이다.
서도철이, 혹은
류승완이 그 거리를 얼마나 의식적으로 계산하고 변화를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반 이상은 무의식적으로, 몸으로, 영화를 만들고 실패하면서 배운 교훈의 결과이리라. 그럼에도 어쨌든 이 구제불능처럼 보였던 한 인간이 오랜 고생 끝에 조금은 바뀔 조짐을 보였다. 이것이 <
베테랑>에서 가장 존중할 만한 부분이자, 여전히 류승완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되는 요인이다. 듣자하니 그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베테랑>의 속편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보통 속편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여기에는 찬성이다. 나는 서도철이 몸으로 어디까지 배울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 가지만 제안하자면, 그에게 더 큰 악당, 더 높이 있는 악당, 더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대상화할 수 있는 공공의 적을 붙여주기보다는 더욱 복잡하고 서민의 정의감과 상식만으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범법자를 붙여주기를. 나는 그가 증오범죄의 대상이 된 외국인 노동자나 성 소수자, ‘불법시위’를 조직한 시민 앞에서는 어떤 결단을 내릴지 보고 싶다. 미란다 원칙 고지 정도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 앞에서, “저놈은 나쁜 놈이야!”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대 앞에서 류승완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