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니 페이스(화니 페이스, 파리의 연인, Funny Face)

해제

현재통용제명: 퍼니 페이스 / 화니 페이스
수입개봉명: 巴里의 戀人
원제: Funny Face
제작년도: 1957
제작사: 파라마운트 픽쳐스(Paramount Pictures) / 미국
감독: 스탠리 도넌(Stanley Donen)
출연진: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 케이 톰슨(Kay Thompson), 미셸 오클레르(Michel Auclair) 
수입사: 불이무역주식회사 영화부
개봉극장: 단성사
개봉일: 1958.02.15.


전단지 구성 및 특이사항 
장방형의 전지에 앞뒤로 내용을 인쇄하였다. 먼저 앞면은 칼라 인쇄로, 주연 배우 오드리 헵번의 얼굴을 비롯한 여러 사진과 일러스트를 상하로 골고루 배치하였다. 하단부에는 큰 붉은색 글씨로 영화의 표제를 적었으며, 그 위에는 “세계 최고의 패션모델 오드리 헵번!”이라는 홍보문구가 있다. 인쇄 당시의 오류로 색분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하단부로 갈수록 글자와 그림의 인쇄상태가 흐려지는 결함이 남아있다. 전단의 오른쪽 상단에서부터 아래방향으로 “지성과 신감각과 우미(優美)의 패션모델! 뉴욕, 파리를 무대로 전개되는 도취의 명작!!”이라는 홍보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뒷면은 갈색 단색조로 영화의 출연진, 제작진, 줄거리, 해설 등을 수록하고, 감독 스탠리 도넌과 주연 배우들의 약전을 사진과 함께 수록하였다. 

줄거리
패션 잡지 <퀄리티>의 편집자인 매기 프레스콧(케이 톰슨)은 "아름답고" "지적"인 새로운 외모를 가졌으면서도 정말로 “겉모습처럼 잘 생각할 줄 아는” 모델을 찾고자 한다.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베테랑 패션 사진작가 딕 에이버리(프레드 아스테어) 역시 겉모습만큼 잘 생각할 수 있는 모델을 찾고자 한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서는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한 서점을 배경으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들이 찾은 가게에는 수줍은 가게 조수이자 아마추어 철학자인 조 스톡튼(오드리 헵번)이 있는데, 매기와 딕은 그들이 원하는 완벽한 얼굴의 모델을 찾았다며 좋아하지만 정작 조 본인은 패션과 모델 산업이 "경제학뿐만 아니라 자기인상에 대한 비현실적인 접근"이라고 말하며 이를 거절한다. 하지만 매기와 조는 굴하지 않고 그녀를 계속 설득하고, 그녀는 파리에서의 사진 촬영과 패션쇼 출연을 마치고 나서 유명한 철학자인 에밀 플로스트레 교수(미셸 오클레르)의 강의를 듣게 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그들의 제안에 동의한다. 

얼마 뒤 매기, 딕, 조는 주요 패션쇼를 준비하기 위해 파리로 떠나 그 지역의 유명한 랜드마크에서 사진을 찍게 되고, 긴 촬영작업 속에서 조와 딕은 사랑에 빠진다. 패션쇼의 개막 갈라 쇼가 열리기 전날 밤, 조는 에밀 교수가 자신이 다니는 근처 카페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딕과 조, 그리고 매기는 갈라 개막식에서 말다툼을 벌이고, 조는 딕을 일부러 골탕먹이고자 에밀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술과 담배를 즐기며 철학 이야기를 나누는 어두컴컴한 지하 까페에서 도발적이고 즉흥적인 노래와 춤을 선보인다. 조는 마침내 에밀 교수를 만나고, 두 사람은 에밀의 집으로 향하지만, 그가 노골적으로 조를 유혹하려고 하자 겁에 질린 조는 그의 머리를 꽃병으로 내리쳐 정신을 잃게 만든 뒤 최종 패션쇼에 참가하기 위해 돌아온다. 조의 출연으로 패션쇼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지만, 마음의 상처를 받은 딕은 잠적해버렸고, 조는 딕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끝내 뉴욕행 비행기가 뜨는 그날 밤까지도 그를 찾지 못한다. 그 사이 딕 역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를 찾아나선다. 마침내 두 사람은 웨딩드레스 차림의 조가 처음 화보를 찍었던 파리 교외의 한 교회에 함께 다다르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뒤 로맨틱한 시간을 보낸다. (출처: IMDb 바탕으로 재작성)


NOTE
1927년 조지 거슈윈이 작곡해 브로드웨이와 이스트엔드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뮤지컬 <퍼니 페이스>를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1927년 뮤지컬 초연 당시 주연배우였던 프레드 아스테어가 다시 주연을 맡았으나, 제작 과정에서 단 4곡의 뮤지컬 넘버를 제외하고 줄거리와 음악 전체가 완전히 개작되어 원래의 뮤지컬과는 완전히 관련이 없는 작품이 되었다. 당시 58세였던 아스테어와 29세였던 오드리 헵번이 연인으로 출연한다는 사실로 인해 영화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고, 1957년 개봉 당시에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실패하였다. 그러나 1964년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재개봉하게 되었고, 이때는 다시 상당한 흥행 성적을 거두어 현재는 1950년대 오드리 헵번의 대표 출연작 가운데 하나이자 명작 뮤지컬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58년 2월 15일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2월 28일까지 14일 동안 당시로서는 장기 흥행하였고, 이후 7월 시네마코리아극장, 8월 경남극장, 9월 동화극장, 10월 서대문극장, 12월 초동극장, 이듬해인 1959년 3월 우미관, 4월 자유극장 등에서 꾸준히 재상영을 거쳤다. 
석지훈(영화사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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