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의 처녀

해제

현재통용제명: 제복의 처녀
수입개봉명: 制服의 處女
원제: Mädchen in Uniform
제작년도: 1958
제작사: CCC 필름 (CCC Films) / 서독-프랑스 합작
감독: 게자 폰 라드뱌니 (Géza von Radványi)
출연진: 릴리 파머 (Lilli Palmer), 로미 슈나이더 (Romy Schneider), 테레제 기제 (Therese Giehse), 마르테 메르카디에 (Marthe Mercadier)
수입사: 동화흥업주식회사
개봉극장: 단성사
개봉일: 1959. 6. 12.


전단지 구성 및 특이사항
긴 장지를 3등분하여 접어 소책자의 형태로 만드는 빌폴드 스타일의 전단지로, 앞면의 왼쪽부터 1, 5, 6면이, 뒷면의 오른쪽부터 2, 3, 4면의 형태로 접게 되어 있다. 먼저 1면에는 주연 로미 슈나이더와 릴리 파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컬러로 인쇄한 뒤 영화의 표제와 주연 배우들의 이름을 빨간색과 흰색 등 눈에 쉽게 띄는 색으로 배치하였다. 제 2면부터 5면까지는 초록색 계열의 단색조로 인쇄하였는데, 영화의 출연진과 제작진 소개, 줄거리 및 영화 해설, 그리고 <스타 메모> 라는 코너 아래 주연 배우들의 약전을 소개하였다. 제 5면과 6면 역시 컬러로 영화의 주요 장면을 담은 사진을 인쇄한 뒤, 최상단에 "아름다운 여교사에의 가슴 벅찬 동경! 전 여성이 한번은 체험하는 젊은날의 이 추억!"이라는 홍보 문구를 넣은 뒤, 하단에는 당시 가수 송민도(宋旻道)의 노래로 킹스타레코드에서 발매된 노래 <제복의 처녀>의 가사 전체와 악보를 수록하였다. 당시 발매된 음반이 현존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는 1950년대 외화수입과 한국 대중가요계의 연관성을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
1910년 베를린. 홀어머니가 죽어 고아가 된 사춘기 소녀 마누엘라 폰 마인하르디스(로미 슈나이더)는 엄격한 학칙으로 악명 높은 포츠담의 명문 여학교 졸업반에 보내진다. 마누엘라는 여학교의 교장과 대부분의 교사들이 보여주는 군국주의적인 태도에 금세 질려버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을 따뜻하게 아끼는 친절한 여교사 엘리자베스 폰 베른베르크(릴리 파머)의 눈에 들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마누엘라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엄격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려고 애쓰고, 마누엘라 역시 점차 선생과 가까워진다. 곧 선생에 대한 마뉴엘라의 감정은 격렬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학교 연극의 뒤풀이 자리에서 술에 취한 마누엘라가 모두의 앞에서 엘리자베스 선생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파국이 벌어진다. 

학우들은 마누엘라를 이상한 아이로 여겨 멀리하기 시작하고, 가혹한 교장 선생은 그녀를 풍기문란 죄로 퇴학시키려 한다.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엘리자베스 선생이 사표를 제출해 학교를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누엘라는 자살을 시도하다 간신히 살아난다. 마누엘라의 먼 친척인 공작부인이 학교를 찾아와 교장 선생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고, 교장 선생은 고민하다가 마누엘라의 퇴학과 엘리자베스 선생의 사임 모두 없었던 일로 하려 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마누엘라가 자신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계속 번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학교를 떠나고, 마누엘라와 엘리자베스는 눈물의 작별을 한다. (출처: IMDb)


NOTE 
<제복의 처녀>는 독일에서 활동한 헝가리 여류극작가 크리스타 빈슬로(Christa Winsloe)의 반자전적인 희곡인 <그때와 지금 Gestern und heute> 을 토대로 제작된 작품이다. 1931년에 빈슬로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여 여류 영화감독 레온티네 사강(Leontine Sagan)의 연출로 제작된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 한 것이다. 원작 영화는 1930년대 당시로서는 엄청난 사회적 금기였던 여성 동성애(Lesbianism)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상당한 반향과 인기를 끌었으나 이후 나치스 집권 이후 상영이 금지되고 필름의 대부분이 소각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1958년 영화는 1931년의 원작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고 있으나, 원작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그려졌던 동성애적인 요소를 크게 순화하고 개변시켜 원작 영화 및 희곡에 담긴 메시지를 희석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원작 영화가 조선극장에서 상영되어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는데, 변사 박창원에 의한 본 영화의 영화해설 유성기음반이 발매(Polydor 19378, 1936년 12월 발매)되기도 했고, 한동안 당대의 언론에서 영화의 제목인 “제복의 처녀”를 당시 여학교 학생들을 지칭하는 관용어로 사용하기도 했다. 1958년 영화 역시 적지 않은 관객의 호응을 얻어, 1959년 6월 12일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된 이후 그해 8월 성남극장, 9월 경남극장, 11월 계림극장, 이듬해인 1960년 3월 평화극장, 6월 서대문극장 등에서 꾸준히 재상영, 재개봉을 거쳤다. 당대 국내 언론에서는 이 영화를 “재등장하는 옛 명화(名畵)”의 하나로 주목하여 보도하면서도, 동시에 1931년 원작 영화와 비교하며 “시차가 극복”될지를 의문이라는 영화평을 소개하기도 했고, 영화의 여주인공 두 명의 사랑이 “모성애”인지 “동성애”인지에 대한 신문지상에서의 논쟁도 벌어지는 등 다채로운 반응이 있었다. 
석지훈(영화사연구자)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