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통용제명: 아프리카의 여왕
수입개봉명: 아푸리카의 여왕
원제: The African Queen
제작년도: 1951
제작사: Romulus Films, Horizon Pictures
감독: 존 휴스턴(John Huston)
출연진: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 캐서린 헵번(Katharine Hepburn)
수입사: 삼광영화사
개봉극장: 단성사
개봉일: 1955.12.15.
전단지 구성 및 특이사항: 전단지 한 면에는 캐서린 헵번의 사진이 거의 전면을 장식하고 험프리 보가트의 얼굴이 하단 오른쪽에 작게 위치하고 있다. 그 뒷면에는 간단한 캐스트와 스탭 소개와 함께 해설과 스토리, 그리고 두 배우의 프로필이 제시되어 있다. 또한 왼편에 삼광영화사가 수입한 또 다른 영화인 <시바의 여왕>의 간단한 해설과 사진이 실려있다.
줄거리: 노처녀 로즈(캐서린 헵번)는 오빠와 함께 독일 점령지인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선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에 의해 남매의 선교활동을 금지당하고 그 와중에 오빠가 죽는다. 그곳을 떠나려는 로즈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폐선 직전의 증기선 ‘아프리카의 여왕’의 선장인 찰리(험프리 보가트) 뿐이다. 술주정뱅이에 거친 성격을 가진 찰리와 깐깐하고 고지식한 기독교신자인 로즈는 서로 혐오하면서 계속 다툰다. 탈출하기 위해서 긴 강을 따라가는 동안 로즈는 점잖은 숙녀에서 대담무쌍한 모험가로 변신한다. 독일군함 ‘루이자’가 그들의 앞길을 막자 로즈는 그 배를 격침하자는 무모한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두 사람은 포로로 잡힌다.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 찰리는 로즈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선장은 마지못해 승낙하고 둘이 결혼했음을 선포하고 다시 밧줄에 목이 걸리는 순간 불발로 끝났던 ‘아프리카의 여왕’의 폭탄이 터져 루이자호는 격침된다.
NOTE: 미국에 유명한 스타 두 사람이 각각 괴팍한 술주정뱅이 선장과 깐깐한 도덕주의자 노처녀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관록 있는 두 배우의 연기가 빛나는 작품이다. <아프리카의 여왕>은 기본적으로 독일 점령지를 탈출하는 과정과 더불어 작은 증기선으로 독일군함을 격침시키려는 모험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의 재미는 긴 여정 동안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서로 혐오하는 관계에서 상대를 인정하고 사랑이 싹트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 이미 노년에 접어들기 시작한 두 배우는 정반대 성격을 가진 두 인물의 토닥거리는 말싸움을 비롯해서, 다양한 갈등과 화해과정을 노련하게 그려내었다. 그 결과 두 배우와 감독 그리고 각본가 모두 아카데미상 후보가 되었고 험프리 보가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아프리카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모든 배우와 스텝들이 더위와 병으로 인해 고생한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캐서린 헵번은 이질로 인한 구토로 매우 힘들어 했다고 한다. 유독 험프리 보가트와 존 휴스톤만은 잘 지냈는데 두 사람은 계속 마셔댄 스카치 위스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로케이션 기간 동안 험프리 보가트의 아내인 로렌 바콜이 계속 함께 있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 배우가 열연했지만 한국에서는 캐서린 헵번을 홍보에 더 부각시켰다. 전단지에 실린 험프리 보가트의 이미지와 비교도 안 되게 크게 실린 캐서린 헵번의 이미지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대부분 신문광고는 둘이 배 위에 있는 영화장면이 실려 있거나 아니면 캐서린 헵번의 얼굴이 부각된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신문광고는 ‘두 사람의 모험과 로맨스’ 그리고 아카데미 수상작이라는 점과 ‘색채의 극치’라는 수식어로 이 영화를 선전하였다. 평론가 허백년은 1955년 세모를 장식한 이 영화를 해당년도 외화 베스트텐으로 선정했다.
이길성(영화사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