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윤
Kim Taek-yun / 金澤潤 / 1901  ~  1959
본명
김천규 (Kim Cheon-gyu)
대표분야
제작/기획, 배우, 감독
활동년대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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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흑과 백 (김택윤, 1927)
각본 :
흑과 백 (김택윤, 1927)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김택윤은 일본제국키네마와 동방회사에서 전속배우로 다년간 활동하였다고 한다. 조선에 돌아와서는 1925년 고려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제1회 작품 <쌍옥루>의 전후편 모두에서 주연으로 출연하였다(동아일보a; 조선일보). 이후에는 선활사(鮮活社)의 지배인을 맡기도 하였다. 선활사는 종로 삼정목 101번지에 사무소를 두고 있었는데, 이경선이 촬영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창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배우와 간부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서 특별한 결과물을 만들지는 못 하였다(동아일보b). 1927년 3월에 김택윤은 김택윤영화사를 세우고 첫 번째 작품으로 <흑과 백>을 제작하였다. 이 작품에서 김택윤은 원작, 각색, 감독, 주연을 맡았고, 조연으로는 나운규, 이규설, 유정자(柳精子), 그리고 소녀배우 운성(芸星) 등이 출연하였다(동아일보c; 동아일보e). <흑과 백>은 법학생 김영철이 한 번의 실연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내용의 연애극이었다. 김택윤은 이 영화를 통해 “광선채취나 착생정리 등의 촬영술이 우수”하였으며, “김택윤과 운성양의 출연이 어느 정도까지 성공”했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동아일보d). 이후의 활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는 슬하에 삼남매를 두었는데, 장녀 덕화(德和)는 1955년 김기영 감독의 <양산도>로 데뷔하여 <나는 너를 싫어한다>(1957) 등 10여편에서 주연한 김삼화(金三和)이다(김종원).

* 참고문헌
조선일보 1925년 8월 24일 조간3면.
동아일보a 1925년 8월 24일 3면.
동아일보b 1925년 11월 24일 3면.
동아일보c 1927년 4월 21일 5면.
동아일보d 1927년 5월 1일 11면.
동아일보e 1927년 5월 3일 3면.
김종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및 DB구축 감수, 2011.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생년은 미상이나 출생지는 서울로 보성전문학교를 나왔다. 일본제국키네마 동방회사의 전속배우로 있다가 귀국한 후 이구영 감독의 <쌍옥루>(1925)에 출연하면서 첫 선을 보인다. 1927년 자신의 이름을 딴 김택윤 영화사의 간판으로 <흑과 백>을 감독, 주연했으나 더 이상 활동을 지속하지 못했다. 직접 각본까지 쓰고 나운규와 이규설 등 당시 잘 나가던 유망주 배우들로 짜인 이 영화는 첫사랑에 실패했으나 장가를 잘든 어느 법학도의 이야기이다. 당시 동아일보(연건동인:1927.5.1)에 게재된 관람 소감은 다음과 같다. "스토리는 극히 간단하니 만큼 매우 평범하였다. 이 영화를 털어 놓는다 하면 첫째 칭찬함직한 점은 이제까지 제작된 조선영화로는 그중 광선 채취나 착색 정리 등의 촬영술이 우수하였다. 다음에 김택윤군와 운성 양의 출연이 어느정도까지 성공한 것이며 자막 문구의 무식한 구접이 종종 나타나는 것이며 자막 사자의 불미가 가장 눈에 거슬러 보였고 류정자 양의 서투룬 출연과 스크린에 비추어 아름답지 못한 얼굴을 가진 까닭에 간혹 조소를 사게된 것이고 대체로 보아 각색의 불통일이 아름답지 못하였다. 그러나 첫작품으로 보아 조선키네마 초작 '농증조'에 비하여 못하지 아니한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눌러 볼 수가 있다." 그는 슬하에 덕화,대화,희자 삼남매를 두었는데, 장녀인 덕화는 19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초까지 <양산도>(1955),<나는 너를 싫어한다>(1957) 등에 출연한 주연급 배우로서 삼화라는 예명을 갖고 있다. 서울대 미학과 출신으로 데뷔(1955) 전 개인 무용소를 경영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마이애미에 거주하고 있으며, 3녀인 희자의 부군은 서울대학교 미대 교수를 지낸 이만익 화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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