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세한
No Se-han / 盧世翰 / 1942  ~ 
대표분야
감독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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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유혹의 오후 2시(당신 부인은 어디 있습니까?) (노세한, 1993)
백치애인 (노세한, 1992)
대학촌의 달빛 (노세한, 1990)
마지막 남자의 모습 (노세한, 1990)
'90 벌레먹은 장미 (노세한, 1990)
아낌없이 주련다 (노세한, 1989)
카멜레온의 시 (노세한, 1988)
빙해 (노세한, 1987)
춤추는 딸 (노세한, 1986)
여자의 대지에 비를 내려라 (노세한, 1985)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서라벌 예술대학 서양화과를 다니던 스무 살 때인 1962년 "그림보다는 영화가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 영화판에 뛰어들었다고 한다(동아일보). 이후 17년간 권영순,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로, 조감독으로 70여 편의 영화를 작업하다가 1979년에 감독 데뷔한다. 데뷔작의 제목은 <26×365=0>인데, 26세가 되던 날, 자살한 호스티스의 수기를 영화화한 것으로, 2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끌며 성공작이 된다. 이후 1980년대 말까지 감독한 영화들은 대개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들이거나, 여성 주인공들의 성적 방황을 다룬 영화들이다. 특히 1989년에 만든 <아낌없이 주련다>는 유현목 감독의 1962년작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신성일, 이민자가 연기했던 역할에 이영하, 김지미를 캐스팅하여 흥행에 성공한다. 1980년대 말부터 <카멜레온의 시>(1988), <대학촌의 달빛>(1990), <백치애인>(1992) 등의 청춘 영화를 만들며 장르 변화를 꾀하나 좋지 않은 흥행 성적을 거둔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79년 3월 17일 5면

[작성: 전민성 ]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42년 2월 26일 출생. 본적지는 충북 충주시 흥덕구 장암동 449번지. 서라벌 예대 서양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2년 권영순 감독의 <정복자> 연출부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으며, 이후 학교를 졸업한 1964년부터 신상옥, 이규웅 감독의 연출부를 거쳤다. 1970년대에는 임권택 감독의 조감독을 하면서 <증언>, <아내들의 행진>, <족보> 등 임 감독의 1970년대 영화 대부분에서 조감독을 역임했다.
그가 감독으로 데뷔한 것은 1979년이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1970년대 호스테스 영화가 한창 유행하고 있을 때였는데, 노세한 감독 역시 그런 경향의 영화 <26Ⅹ365=0>로 데뷔했다. 가족의 생계 때문에 호스테스가 되어야 했던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당시의 경향과 비슷한 내용의 이 영화에는 유지인, 하명중, 김추련, 선우용녀 같은 당대 최고의 스타가 출연했으며, 흥행 성적도 좋아 18만 명이나 들었는데, 그는 이 영화 흥행 보너스로 할리우드 연수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길었던 조감독 생활의 서러움을 떨칠 만큼 좋은 출발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이후의 행보는 데뷔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개가 호스테스 영화거나 여성의 성을 선정적으로 부각시킨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꽃띠 여자>(1979), <조용한 방>(1980), <탄야>(1982), <장대를 잡은 여자>(1983), <여자의 대지에 비를 내려라>(1984), <아낌없이 주련다>(1989), <90 벌레 먹은 장미>(1990), <백치 애인>(1992) 등이 그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 가운데 <아낌없이 주련다>처럼 흥행에 성공한 영화도 있으나, 비평에서는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여성의 성을 깊이 있게 다루기보다는 선정적으로 다루거나, 그 방법이 그리 새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활동한 1970년대 말이나 1980년대 초·중반은 이런 영화가 나름대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시기였고, 그런 흐름에서 노 감독은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그런 경향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한편 그는 1989년부터 국방부 홍보 영화를 촬영하기도 했다. <갑종 인생>(1989), <통신보안 이대로 좋은가>(1994) 등이 있는데, <종이학>(1992) 같은 영화는 국방부 장관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노 감독은 코리아 시네마(주)의 제작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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