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칠
Hong Seong-chil / 1920  ~ 
대표분야
제작/기획, 미술
활동년대
1950,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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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일등사장 (김기, 1970)
염통에 털난 사나이 (이형표, 1970)
예비군 팔도 사나이 (편거영, 1970)
당신을 알고나서 (이상언, 1970)
밀사 (김병국, 1969)
야적 (안현철, 1969)
동경의 왼손잡이 (최인현, 1969)
상해탈출 (임권택, 1969)
쌍용검 (권영순,손아부, 1968)
비호 (권영순,손아부, 1968)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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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정보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0년에 태어나(추정), 일본 도쿄의 태평양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귀국하여, 공주, 강릉 등지에서 교편 생활을 하던 중(한국일보), <자장가>(1958)로 영화계에 입문한다. 데뷔 초기에 <내가 낳은 검둥이>(1959), <젊은 표정>(1960), <여자의 일생>(1962)의 미술을 맡아 작업하다가, 1962년 동성영화사에 입사하여 서울역 뒤편 만리동에 촬영소를 건설하며, 미술팀을 꾸린다. 이렇게 꾸려진 팀과 함께 이용민 감독이 연출한 석가모니의 일대기 <지옥문>(1962)의 세트를 완성하는데, 이 세트는 8200m2가 넘는 넓이의 성안에, 약 10미터 높이의 우상이 위치하고, 그 앞에 화형장이 마련되는 등(서울신문) 당시 언론에서 '우리 영화 사상의 '모뉴먼트'를 이루었다고 해서 과언이 아니'라는 호평을 듣는다(경향신문). 1964년 제일영화사의 대표가 되어 합동영화사와 함께 서울 원효로에 공동으로 촬영소를 건설한다. 1966년부터는 영화 미술보다는 영화제작과 회사운영에 집중하여, 1967년 당시의 영화사 허가 기준인 아리플렉스급 카메라 3대 이상, 660m2 이상의 스튜디오, 50kw 이상의 조명기구 등을 갖추어 13개 허가 영화사 중 하나가 된다(조선일보). 이후 제일영화사에서 <어느 여배우의 고백>(1967), <강명화>(1967), <동경의 왼솝잡이>(1969) 등의 영화를 제작하나, 1970년 부도 끝에 문을 닫는다(매일경제).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2년 12월 25일 8면
서울신문 1962년 11월 1일 4면
조선일보 1967년 3월 19일 5면
매일경제 1970년 3월 17일 8면
한국일보 1964년 12월 31일 7면
한국영화사연구소 엮음, 『한국영화를 말한다-한국영화의 르네상스3』, 한국영상자료원, 2007년, 519~527쪽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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