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 함경남도 이원군 안천에서 국민학교 입학
1945 서울 효창동 금양국민학교 2학년부터 다니기 시작
1950 서울 금양국민학교 졸업, 용산중학교 입학
1952 피난지 부산 구포에서 중학 3년을 마침
1953 서울 용산고등학교 입학
1956 용산고등학교 졸업,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입학
1959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졸업
1960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입학, 충무로 활동과 군입대로 2학년을 마치고 휴학
1953~1956 용산고등학교 연극반 활동. 제1회 전국 고등학교 연극경연대회에서 유치진 원작 <사육신>의 조연출
1957 서라벌예술대학 재학당시 <김삿갓>(이만흥, 1957)에서 김광열 촬영감독의 제3조수로 참여
1958 부산에서 제작 중이던 <제이의 애정>(안낙원, 1959)에서 홍수현 촬영감독의 제1조수로 참여. 부산에서 촬영 중이던 <검사와 여선생>(윤대룡, 1958)에서는 스틸기사로 참여. 서울로 올라와 배우 김정옥의 소개로 임병호 촬영감독의 문하로 들어감. <사람팔자 알 수 없다>(김화랑, 1958)를 시작으로 임병호 촬영감독의 제1조수로 일함
1959 <홀쭉이 뚱뚱이 논산훈련소에 가다>(김화랑, 1959), <나비부인>(박성호, 1959), <흥부와 놀부>(김화랑, 1959), <청춘의 윤리>(김화랑, 1960), <딸>(김화랑, 1960), <울려고 내가 왔던가>(김화랑, 1960) 등 임병호 촬영감독의 작품에 참여. 이 시기 아리플렉스 카메라를 구입하여 렌탈을 시작
1960 임병호 촬영감독의 동생 임진환 촬영감독의 문하로 옮겨가 <양산도>(안현철, 1961), <원술랑>(장일호, 1961), <원효대사>(장일호, 1962) 등의 작품에서 촬영 제1조수로 참여
1961 5.16 뒤 징집되어 원주통신학교를 거쳐 대구 50사단 통신병으로 복무. 이후 육국본부 보도부로 옮겨가 김정호와 민기식 대령의 활동을 정사진과 아이모로 촬영
1963 제대 후 세기상사에 촬영전속으로 입사
1966 <딸이면 어때>(장일호)로 촬영감독 데뷔
1987 제9대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 부회장
1989 촬영감독 자녀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벽파장학회 설립 및 이사장 역임
1993 제11대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