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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호
Jang Il-ho / 張一湖 / 1926 ~ 2009
본명
장광석 (Jang Gwang-seok)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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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호
이해윤 은막의 스타,그 날개를 달다
대중과 함께한 영화인생 장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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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나는 너를 천사라고 부른다
(김인수,장일호, 1992)
총감독
사랑하는 사람아 제3부
(장일호, 1984)
사랑하는 사람아(속)
(장일호, 1983)
사후세계
(장일호, 1981)
사랑하는 사람아
(장일호, 1981)
호국 팔만대장경
(장일호, 1978)
난중일기
(장일호, 1977)
여수 대탈옥
(장일호, 1976)
옥중녀
(장일호,로키, 1976)
오계
(장일호, 1976)
주요경력
1995년 공연윤리위원회 영화수입 심의위원장
기타정보
주요 영화작품
의적일지매(1959)
원술랑(1959)
화랑도(1960)
그리움은 가슴마다(1967)
난중일기(1977)
사랑하는 사람아 1-3(1979,80,81)
수상내역(영화)
<총각김치>(1964) 국제영화 감독상/
<화산댁>(1968) 대종상 특별상/
<난중일기>(1977)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
1965년 한국최고 인기배우상 및 영화상 : 감독상/
1984년 제22회 영화의 날 기념 : 유공영화인 표창/
2004년 제44회 영화의 날 기념 : 유공영화인 표창/
한국영화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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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지] 월간영화 1984년 9월호
발행일
1984-08-31
[영화잡지] 국제영화 1964년 1월호
발행일
1964-01-01
[영화잡지] 국제영화 1962년 10월호
발행일
1962-09-01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46년 극단 극예술협회, 1948년 미공보원 연극과를 거쳐, 1950년 신협(신극협의회)의 배우로 활동하게 된다. 신협에서 박암, 문정숙, 최남현, 황정순, 장민호 등의 배우들과 함께 유진 오닐 원작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 박종화 원작 <금삼의 피> 등에서 공연하며 배우와 연출가로 활동하다(동아일보a), 1956년 신필름에 배우로 입사하였다. 그러나 배우로 입사한 신필름에서는 그의 연극 연출 이력 덕분에 <무영탑>(1957)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1959) 때부터 신상옥 감독의 연출부로 활동하게 되고, 이후 <이 생명 다하도록>(1959) <성춘향>(1960) 등에서 조감독 활동을 거쳐 <의적 일지매>(1961)로 감독 데뷔하기에 이른다. 당시 한국영화계에 일던 사극 붐과, 그 사극 붐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던 신필름의 지원 아래 <원효대사>(1962), <석가모니>(1964) 등 대작 사극을 연출하는 한편(동아일보b), 1970년대에는 홍콩으로 건너가 <철권>(1973), <대결투>(1973), <흑발>(1974) 등 쇼브라더스와의 합작 액션 영화를 연출하기도 한다. 귀국 후에는 자신이 대표작으로 꼽는 <난중일기>(1977)을 만들고, 1980년대에는 멜로드라마인 <사랑하는 사람아> 3부작을 만들어 대만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한다(경향신문). 1992년 <나는 너를 천사라고 부른다>를 마지막 작품으로 2009년 2월 11일 별세한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82년 6월 11일 12면
동아일보a 1955년 1월 8일 4면
동아일보b 1961년 11월 30일 4면
[작성: 황미요조]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본명 장광석. 1926년 평양 출생. 해방 이후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으며, 국학대학교 국문과 2년을 수료했다. 연극배우인 친형 장일에게 놀러갔다가 1946년 극단 극예술협회에 입단하면서 연기 생활을 시작했고, 1948년에는 미공보원 연극과에서 일했으며, 1950년에는 국립극장 전속 신극협의회 소속이었다. 이후 극단이 어려운 시기에 유치진의 권유로 연극 연출을 하면서 배우와 연출을 겸했고, 그러던 중 국립극단이 해산되었을 때 주위로부터 연기보다는 연출을 권유받고 영화 연출을 하기로 결심, 1956년 신필름에 입사했으며, 이후 6년 동안 신필름에서 연기지도 조감독으로 일했다. 이때 그는 <무영탑>(신상옥,1957)에 출연하기도 했고, 신상옥 감독의 일련의 영화들, 즉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1959),<성춘향>(1961)등의 영화에 조감독을 맡기도 했다.
1961년 <의적 일지매> 로 그는 70여편의 많은 작품을 발표한 다작 감독중의 한사람이다. 1945년 해방되던 해 “낙낭극회” 와 극단 “신협”에서 16년간이나 배우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연극 콩클에서 연기상을 타기도 했다.
무대에서 익힌 경험으로 자연히 드라마 소화에 대한 기본 지식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무대 연출을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유치진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극단이 해체되자 최은희 여사의 소개로 신필림에 적을 두게 되었다. 이때는 이미 연극으로 무장된 몸이라 자매 장르인 영화가 낯설지는 않았다. 그런 인연이 일찌감치 데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영화란 곧 드라마인데 그 힘은 스토리 운반을 어떻게 하느냐로 성패가 판가름 지어진다는 주장이다.
그가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은<난중 일기>(1976년). <난중일기>는 알다싶이 성웅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이다. 당시 장감독은 막대한 자금이 드는 이 영화를 필생의 작품으로 마음먹고 최선을 다 했다고. 이 작품은 작품과 흥행양면에서 모두 성공한다.
그는 현대물에 손을 댄다. 본래가 현대물의 그의 취향이기도 했다. 이후<화산댁이>(1968년) <황혼의 부르스>(1968년) <총각 김치>(1986년> <사랑하는 사람아>(1981년) 등을 연출한다.
<화산댁이>는 황정순이 화산댁 주연을 맡아 열연을 했다. 화산댁이 작은 아들을 찾아 서울로 올라온다. 하지만 처가살이를 하고 있는 아들은 에미를 마치 자기집 하녀처럼 구박했다. 며누리도 시어머니 대접을 제대로 할리가 없었다. 이에 어미는 눈물을 먹음고 다시 시골로 내려간다. 그후 아들은 사업에 실패하여 부도 수표를 낸다. 도피 생활이 시작된다. 어미는 시골의 땅을 팔아서 아들의 빚을 갚아 준다. 비로서 아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뇌우치게 된다.
사극에 손댄 것 만도 부지기수. <원술랑>(1961년) <원효대사>(1962년) <화랑도>(1962년) <햇님왕자와 달님공주>(1963년) <석가모니>(1964년> <아랑의 정조>(1964년) <일지매 팔사의 검>(1966년) <정든 님>(1968년) <전설따라 삼천리>(1968년) <비운의 왕비>(1970년><호국 팔만 대장경>(1978년)
스릴러 물로는 <황혼의 부르스>(1968년) <국제 간첩>(1965년) <살인 수첩>(1966년) <국제 금괴사건>(1966년) <남남서로 직행하라>(1967년) <제4의 사나이>(1969년) 등등.
<황혼의 부르스> 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재일교포 모녀가 그들의 재산을 탐낸 일당에게 감금된다. 그러나 가내야마라는 의사가 나타나서 악당들을 살해하고 모녀를 구출해 준다. 알고보니 조청년계 간부였다. 가네야마 역시 모녀의 유산을 탐낸 남어지 모녀를 북송선에 태우려 한다. 그때 한국의 민완 정보원인 박이 그 사실을 알고 가네야마 일당을 일망타진 함으로서 위기에서 구출한다.
한때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서 홍콩 영화계의 특별 초빙을 받아 일한바 있다. 당시 갸란티 문제로 옥신각신 할 때 그는 일본인 감독과 동등한 대우를 끝까지 요구하여 관철시킨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말년에 그는 <사랑하는 사람아>(1983년) 작품으로 힛트를 친다. <사랑하는.....> 씨리즈는 속편이 3편이나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대만에서의 성공은 국내까지도 잘 알려진 일이었다.
그의 생활신조는 단 한가지. 무슨 일에 있어든 우선 작은 일에서부터 철저를 기하라는 당부이다. 작은 일에서부터 완벽함은 큰 일에서도 완벽함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한동안 위암으로 고생했으나 그럭저럭 회복하여 지금은 조심스럽게 나들이를 한다는 소식이다. 한때 영화감독협회 회장직을 맡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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