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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설봉
Ko Seol-bong / 高雪峰 / 1913 ~ 2001
본명
고진섭 (Ko Jin-seop)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1938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DB 수정요청
소장자료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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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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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공연예술인 다큐 <고설봉 편>
(김주헌, )
공룡선생
(이규형, 1992)
교장
용감한 사람들
(김경로, 1990)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이장호, 1987)
회장
가슴을 펴라
(최원영, 1986)
외박
(고영남, 1983)
안개마을
(임권택, 1982)
엄마없는 하늘아래
(이원세, 1977)
교장
한네의 승천
(하길종, 1977)
한네의 부
고가(古家)
(조문진, 1977)
응삼(길녀의 부)
주요경력
1937년 극단 청춘좌(靑春座) 단원
1950-1977년 국립극단 신극협의회(新劇協議會) 단원
1977년 한국영화인협회 원로회원
극단 호화선(豪華船), 아랑(阿娘), 신청년(新靑年), 예술극회(藝術劇會), 민극(民劇) 단원 등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해방전에 서대문의 동양극장에서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악극이 큰 인기로 공연된 적이 있다. 이러한 인기작품을 더 많은 관객들에게 전국적으로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동양극장의 기획으로 1938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당시로도 수준 높은 동시녹음으로 촬영했는데, 본인은 이때에 영화 출연한 것을 계기로 연극무대를 거쳐 평생동안 영화와 연극으로 일생동안 헌신했다.
주요 영화작품
꿈(1955,신상옥)
양산도(1955,김기영)
결혼진단(1955,이만흥)
사도제자(1956,안종화)
가거라 슬픔이여(1957,조긍하)
유관순(1966,윤봉춘)
가슴을 펴라(1986,최원영)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이장호)
애착작품 및 사유
윤봉춘 감독의 "유관순"에서 본인이 아버지 역할을 맡았는데, 감옥소에 잡혀가서 고문 받는 장면이 대단히 끔찍하여 관객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최원영 감독의 "가슴을 펴라"는 감독이 시나리오를 집필할 때부터 주인공 퇴직교장선생님은 저를 모델로 삼았다고 하며, 주연으로 출연해 달라는 부탁해, 세 번씩이나 거절했지만 결국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흥행에도 성공한 작품이었다.
영화속 명소
1986년 최원영 감독의 "가슴을 펴라"의 마지막 장면을 강화 바닷가에서 촬영했는데, 태풍이 올라올 시점으로 가로수가 뽑히고 전봇대가 넘어가는데도 강행했다. 추워서 몸이 얼어 대사가 곤란할 정도이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 몸이 날아가 논바닥으로 떨어지는 등 많은 고생을 했지만 좋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김기영 감독의 "양산도"에서 김진사 역으로 출연하면서부터 관객들에게는 역사상의 대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시나리오에서 배역으로 요구되는 것을 충실히 표현하여서, 관객이 봤을 때 실제상활 그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려면 사려깊은 인간의 내면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사회에 헌신하려는 마음가짐과 관객들에게 충실성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소개 및 취미
영화예술은 서구에서 시작되어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초창기에는 모든 영화재료를 외국에서 들여와 사용했다. 지금도 많은 영화기자재 등을 외국 것으로 사용하지만 사고방식만큼은 우리 식으로 해야하며, 우리만이 갖고있는 세계적으로 독특한 생활상(김치, 깍두기 등)을 활용해야 한다. 특히 영화에서는 모방의 시대는 지났고, 우리역사와 우리말로 독창적인 모습을 화면에 담을 수 있도록 영화배우는 항상 노력해야 한다. 절대로 외국영화를 모방해서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수상내역(영화)
대통령 은관문화 훈장(1989)
수상내역(기타)
■ 수상내역(연극)
연극 500회이상 출연 기네스 메달(1990)/
1990년 은관문화훈장/
1993년 한국 기네스북 등재(최고령, 최다작품 출연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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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3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고진섭(高鎭燮)이다. 반곡학원(盤谷學院)을 졸업했으며, 1936년부터 무대 활동을 시작했다(김기제). 동양극장(東洋劇場)의 전속극단 청춘좌(靑春座)와 호화선(豪華船)을 비롯하며, 극단 아랑(阿娘) 등에서 활동했으며(김기제, 삼천리), 해방 후에는 극단 신청년(新靑年), 예술극회(藝術劇會), 국립극단 신협(新劇協議會), 극단 민극(民劇) 등에서 활동했다(동아일보, 김기제). 영화 데뷔는 신상옥 감독의 <꿈>(1955)을 통해서였으며, 이후 김기영의 <양산도>(1955), <봉선화>(1956), <여성전선>, <황혼열차>(1957), 신상옥의 <무영탑>(1956), 윤봉춘의 <유관순>(1959) 등 1950년대의 대표작들에 출연했다. 1990년대 초까지 꾸준히 많은 작품에 출연했으며, 1993년 최다 작품(연극 500편, 영화 300편)에 출연한 최고령 연극배우로 한국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매일경제). 2001년 9월 88세를 일기로 숙환으로 별세했다(매일경제).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49년 10월 12일자 2면
매일경제 2001년 9월 17일자
朝鮮文化 及 産業博覽會, 映畵篇, 『삼천리』 제12권 제5호(1940년 5월 발행)
김기제 편, 『한국연예대감』, 성영문화사, 1962, 184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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