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 코멘트
마음의 고향
신파에 기댄 감정의 고양 없이 인물의 감정선에 밀착해 전개되는 이야기와 연출이 부드럽다. (영화의 말미에) 누적된 주인공의 슬픔이 새로운 희망으로 변화하는 영화적인 순간이 인상적이다. 한형모 촬영, 양주남 편집, 최은희의 여성상 등을 생각하도록 한다.
낙동강
전쟁시기에 만들어진 지역영화라는 점, 당대 문화예술인들의 역량이 집결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다시 조명될 필요가 있다. 대사보다 음악의 비중이 큰 탓에 윤이상의 작품세계와의 관련성을 고민하게 한다. 극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영화는 전쟁 푸티지 사용, 만화적인 표현, 음악과 시를 인용하는 등 낙동강의 삶과 비극, 상실과 재건을 문화영화의 형식으로 표현한다.
비무장지대
아시아영화제를 향한 열기를 반영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당대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영화는 아이의 무구한 순수가 전시 상황의 폭력으로 상실되는 비극을 그린다. 반공이 아닌 휴머니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당대의 반공 영화들과 차이를 갖는다.
불나비
장르영화에서 재조명이 필요한 작품이라 판단해 선정했다. 영화는 마치 60년대 일본 뉴웨이브 영화를 연상시키듯 시작되지만, 팜므파탈의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잘 만들어진 미국 누아르 영화를 상기시킨다. 빼어난 편집, 여성 캐릭터, 촬영 등 눈여겨볼 요소들이 많다.
춘몽
유현목이 영상 파 감독으로 평가받고 작가정신으로 영화예술에 몰두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에로틱한 원작을 표현주의 스타일로 변용함으로써 감독의 예술관을 반영한 것과 관련해 다양한 해석을 요구한다.
※ 특별언급: 기존 언급되지 않은 작품과 저의 시각을 중심으로 선정한 탓에 유명한 작품들이 모두 생략되었고 1990년대 이후 작품은 리스트에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판놀이 아리랑>(김홍준, 문원립, 박광수 , 황규덕 , 1982): 서울영화집단의 첫 번째 작품인 판놀이 아리랑은 현실참여와 공동창작에 대한 영화적 실험을 보여준다. 공연 (판놀이 아리랑고개) 기록한 영상을 작품화해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면서도, 소리와 영상을 분리한 실험으로 관객의 적극적 해석(참여)을 이끌고자 한다. 이러한 실험은 '작은영화', '열린영화'에 대한 관념을 작품화함으로써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칸트씨의 발표회>(김태영, 1987):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첫 번째 한국영화로 베를린영화제 한국 단편영화로 최초 초청된 작품. 모두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고 또 모두의 일상을 배회하는 칸트 씨는 광주항쟁의 외상과 징후를 은유한다.<칸트씨의 발표회>는 사진사의 관점으로 아픔과 무력감을 공유함으로써 사회에서 격리되고 분리되어 사라지는 기억 자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질문한다.
<강의 남쪽>(장길수, 1980) : <강의 남쪽>은 영상연구회나 카이두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자기 반영성과 추상성, 80년대 영화운동의 현실 참여적, 다큐멘터리적인 면모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과도기적 작품으로 보인다.
<구멍>(한옥희, 1974): 청년 자의식의 반영과 시적 은유, 추상성, 사회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충무로 외부에서 시작된 변화를 상징적으로 반영한다고 생각해 선정했다. 영상연구회에서 제작한 한옥희 감독의 <구멍>은 카이두로 활동으로 연장되었으며, 해당 작품은 영상시대와 청년영상연구회에도 영향을 준다.
<어화>(안철영, 1938): 평이하고 단조로운 플롯에서 어촌 풍경의 아름다움이 담긴 미장센이 돋보인다. 어촌마을은 미처 근대가 닿지 못한 서정적 순수와 유토피아적 향수가 반영된 공간으로, ‘조선’, ‘향토’에 대한 당대의 감성과 관념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