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 코멘트
하녀
인간은 사력을 다해 동물과 다름을 증명하려 하지만 끝내 실패한다. 숨이 멎는 순간까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하녀처럼 집요한 야생의 불안감은 한국영화에서 대체 불가능.
마음의 고향
한국영화가 처음으로 선전과 이념과 정형화된 정서의 강박을 걷어내고 영화의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거대서사에 짓눌려 있었을 해방공간에서 자발적인 감응을 끌어낸 하나의 기적.
마더
이 엄마의 검은 심연에서는 도덕률도 죄의식도 용해되어 형태를 알 수 없고 단지 모든 것이 거리낌 없이 가능하다. 어쩌면 자아의 맹목성에 대한 독한 사고실험과도 같은 영화.
장군의 수염
한국전쟁의 참혹한 기억에 대해 종전 15년 후의 한국인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과감하고 다채로운 양식으로 보여주는, 당시로서는 놀랄만한 ‘한국전쟁’ 소재의 실존주의 영화다.
산불
유려한 카메라 워크와 구도, 거대한 세트장과도 같은 산의 활용, 결핍과 욕망이 서로의 부싯돌이 되어 탈 듯 말 듯하다가 발화하는 감정선의 호흡, 이 모든 것이 걸작의 면모를 지녔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영화의 틀 안에서 관념적인 미술 작품들을 3시간 가까이 ‘바라보는’ 것과 다름없다. 감독의 시선, 관객의 시선,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나름의 지점을 향하는 황홀한 순간.
낮은 목소리 3 - 숨결
여전히 힘겨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는 아직도 듣지 못했다. 후일담의 정서가 감돌아 더 가슴 아픈 영화. 그들의 숨결은 바람처럼 흩어져도 영화는 남는다.
안개마을
초법적 존재로서 공인된 익명성을 획득한 깨철이가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섬뜩한 눈빛은 한국영화사상 가장 위압적이라고 할 만하다. 날 선 알레고리에 찔리는 경험을 주는 영화.
마스카라
중독성 있는 감각, 미처 피어나지 못한 재능에 대한 아쉬움, 성 마케팅으로 오인받은 것에 대한 억울함. 이것만으로도 이 괴작을 한국영화 100선에 추천하는 위험을 감수하겠다.
기생충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 지하와 지상의 대조, 인디언의 상징 등 다소 진부한 대립 구도들이 ‘냄새’를 풍기는 순간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해부도로 환골탈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