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영화문화운동 컬렉션 (1) 문화학교 서울

▶ 전 세계 K-콘텐츠의 활약이 돋보이는 오늘날, 한국영화가 이룬 놀라운 성장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한국영상자료원은 동시대 한국영화 성장의 동력이자 영화문화운동의 하나로서, 1990년대부터 꽃피우기 시작한 '시네마테크 문화'에 주목합니다. 

1990년대 영화문화의 중심에는 시네마테크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 시네마테크들은 비디오테이프를 공유하고, 함께 보고, 함께 토론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쉽게 구하기 힘든 희귀 비디오가 자주 교환되고 공유되었던 탓에, 새로운 영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던 당대 젊은이들은 여러 시네마테크에 모여들었습니다.

1990년 10월에 문을 연 '영화공간 1895'를 필두로, 그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씨앙씨에를 비롯해 문화학교 서울, 영화사랑, 신 표현, 영화연구소 OFIA, 시네포럼 등이 서울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회원제'를 기반으로 상업영화 신(scene)에서는 볼 수 없는 미개봉 희귀 비디오와 예술적 가치가 높은 비디오를 상영하고 교환했습니다. 또한 이곳의 회원들은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새로운 영화 읽기'를 제안했습니다. 

이 같은 새로운 영화문화운동의 일환으로 1990년대 전국적인 붐이 일어난 시네마테크 중에서도, 2024년 한국영상자료원이 우선적으로 주목한 곳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문화학교 서울'과 대전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씨네마떼끄 컬트'입니다. 

 

문화학교 서울은 영상 제작에 관심이 많았던 한의사 故 최정운 대표가 1991년 5월, '학원업'으로 등록한 교육단체였습니다. 처음, 이곳에서는 판토마임 워크숍이나 청소년 영화제작 교실 등이 진행되었는데, 이후 단편영화 제작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드나들면서 영화 스터디 모임을 진행한 것이 그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문화학교 서울은 1992년 11월, '작은 영화제: 레오 까라와 짐 자무쉬'라는 제목의 비디오 영화제를 처음 개최했습니다. 계속해서 중국영화제, 제3세계 영화제 등을 개최했던 문화학교 서울은 1993년 8월부터 '정기상영체제'를 도입해, 매달 한 프로그램씩 영화 상영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부터는 회원을 모집, '씨네마떼끄'라는 이름의 회원 대상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차차 문화학교 서울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1994~95년경, 문화학교 서울의 누적 회원 수는 3,500명을 넘었고 운영위원들은 월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간의 상영 활동 경험을 토대로 시네마테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씨네필》, 《씨네마떼끄》와 같이 문화학교 서울이 발간한 자료집 성격의 정기간행물은 단순 정보 제공을 넘어, 작품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을 이끌어 내는 교재와도 같았습니다. 문화학교 서울 운영위원들이 토론 및 연구를 통해 주제와 작품을 선정했고, 그에 따른 배경지식이나 정보를 담은 길거나 짧은 글을 작성한 뒤, 이를 책자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제공하고 관객의 토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문화학교 서울을 말 그대로 진짜 '학교' 즉, '교육'의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밖에도 문화학교 서울은 연구회원들과 함께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영화 탄생 100주년 기념 걸작 100선』(1995)와 『한국영화, 비상구』(1996) 등의 도서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다수의 영화제가 개최되는 등, 영화 마니아들의 관람 환경이 점차 필름 관람으로 이동해 가자, 문화학교 서울 역시 1998년 말부터 필름 영화제를 개최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국내의 영화 수입사들의 도움으로 영화 필름을 제공받았지만, 점차 자력으로 필름 수급망을 구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000년대 초반, 루이스 브뉘엘, 에릭 로메르, 스즈키 세이준, 장 르누아르 등의 작가전을 개최했고 그와 함께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 시네마테크총서를 발간하며 시네마테크 본연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문화학교 서울은 2003년 무렵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2002년, 문화학교 서울의 대표 및 사무국장을 비롯한 운영위원들이 그해 1월에 발족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중책을 맡기 시작했고, 5월에는 아트선재센터(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자리를 잡고 개관한 서울아트시네마가 문화학교 서울의 상영 기능을 자연스럽게 이어갔습니다. 그러하기에 1990년대 새로운 영화에 대한 갈망과 그것을 함께 나누고픈 바람을 가진 젊은 영화 마니아들의 '학교'와도 같았던 문화학교 서울의 역사는, 다양한 국제영화제와 아트하우스들이 생겨나며 새로운 영화들의 필름 상영 및 관람 기회가 확장된 2000년대 무렵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됩니다. 

2024년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존 중인 문화학교 서울 관련 자료는 각종 상영 프로그램 자료집과 《씨네필》, 《씨네마떼끄》와 같은 정기간행물, 각종 단행본 등 총 108점에 이릅니다. 특히 이 자료들은 한국영상자료원이 자체적으로 수집하거나 구입한 것들과 권옥자(故 홍성남 영화평론가의 모친), 김홍준(영화감독, 현 한국영상자료원장), 류승완(영화감독), 원승환(인디스페이스 관장), 이승구(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정미(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황규석(대전 씨네마떼끄 컬트 대표) 님이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하신 것들입니다. 

또한 이번 컬렉션은 문화학교 서울의 10년 남짓한 역사를 보다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해당 자료들을 편의상 세 가지 시기로 나누었습니다. 먼저 1기로 분류한 시기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로, 이 시기는 문화학교 서울이 설립 후 정기간행물 《씨네필》, 《씨네마떼끄》를 발행하고 이와 연계한 상영회를 진행하며 시네마테크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한 때입니다. 2기로 분류한 시기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로, 문화학교 서울 일원들의 분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문화학교 서울 운영진들은 단행본 『한국영화, 비상구』 출판 및 인디포럼 개최에서 시작해 한국독립영화협회 발족, 인디스토리 설립에 관여하는 등 한국영화계로 진출하는 한편, 연구팀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연구 활동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마지막 3기는 필름영화제로 전환하며 체질 개선에 나선 1999년부터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한 2003년까지입니다. 물론 이번 컬렉션에는 2003년 이후의 자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록 2003년 무렵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했다고는 하지만, 문화학교 서울은 서울아스트시네마 혹은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상영 프로그램에 공동주최자로 계속해서 이름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자료들은 ‘3기 이후(2004-)’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 컬렉션 구성과 규모


문화학교 서울이 학원업으로 등록을 시작한 1991년부터 잠정 활동을 중단한 2003년 무렵까지 10여 년 넘는 역사에 비하면, 2024년 현재 컬렉션을 구성하는 자료는 소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과거가 더 이상 기억으로만 머물지 않도록, 문화학교 서울 컬렉션은 앞으로도 차곡차곡 채워질 것입니다. 

※ 컬렉션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해제)은 본 게시물 하단에 첨부된 [해제 다운로드]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 첨부된 해제 원고의 저작권은 필자와 한국영상자료원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제와 복제를 금합니다. 해제 글의 인용 시 필자명 및 출처를 명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조사·연구: 박진희(영화연구자)
- 기획·진행: 이지윤(한국영상자료원 연구원)

참고자료

컬렉션 자료를 인용하실 경우, 자료의 출처와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관리번호를 반드시 명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표시 예: 한국영상자료원, 1990년대 영화문화운동 컬렉션 (1) 문화학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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