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가 니시키 모토사다 컬렉션: 조선영화 편

▶ "시나리오 작가 니시키 모토사다 컬렉션: 조선영화 편"은 유족 니시키 유리코가 2005년과 2008년에 기증한 조선영화와 관련된 스틸사진 146점과 시나리오 1점으로 구성됩니다.  

영화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와 <병정님>(방한준, 1944)의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진 니시키 모토사다(西龜元貞, 1910-1978)는 자신의 영화 이력을 식민지 조선에서 시작한 재조선 일본인 작가입니다. 조선총독부에 부임한 부친을 따라 10대의 나이에 조선에 이주한 ‘식민자 2세’인 그는 경성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도쿄제대를 중퇴하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그는 조선총독부의 일본어 기관지인 『경성일보』의 학예부에서 영화 담당 기자로 근무하면서 발성영화 제작 시대를 맞이한 조선영화계의 활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이번 컬렉션에 포함된 스틸사진 대부분은 그가 경성일보사 재직 중 영화사들로부터 받아둔 자료 사진들로 추정됩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조선영화 및 조선영화계와 관련된 이 사진들을 통해 당시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니시키 모토사다는 1939년과 1940년에 걸쳐 조선총독부 도서과 영화검열계 촉탁으로 일했고, 촉탁직을 사임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니시키는 고려영화협회의 이창용과 최인규와 교류하면서 영화에 더 가깝게 다가섰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전에 고려영화협회가 <수업료>를 제작할 때 기획에 참여했던 니시키는 부랑아 구제 사업을 펼쳤던 사회사업가 방수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 <집없는 천사> 시나리오를 집필했습니다. 유족이 오랫동안 소장했던 시나리오는 캐스팅이 확정되기 이전에 등사판으로 인쇄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면 상단에는 일본어 대사와 지시문이, 하단에는 등장인물의 조선어 대사가 배치되어 있는데, 조선어 대사를 번역한 사람은 당시 고려영화협회 문예부 촉탁으로 있었던 임화였습니다. 니시키 모토사다 컬렉션을 통해 소개되는 <집없는 천사> 시나리오는 ‘시나리오 작가 니시키 모토사다’의 출발을 보여주는 것이자, 일본인 작가의 시나리오 집필과 조선어 대사 번역이라는 식민지적 이중언어 상황에서 전개되는 영화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집없는 천사>는 조선영화로는 처음으로 일본 문부성의 추천영화로 선정되었다가 내무성 재검열에서 8분 가량이 삭제되고 문부성 추천이 취소된 사건을 겪으며 ‘문제작’이 된 영화이기도 합니다. 일본인 작가가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영화의 결말에서 ‘충량한 황국신민’이 될 것을 선언하는 조선인 아동들의 목소리가 극장 안에 울려퍼질 영화였지만, 거리의 부랑아들을 계몽하는 주인공이 목사이기에 그 헌신의 바탕을 이루는 기독교적 배경이 문제가 되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집없는 천사>의 스틸 사진 중 방 목사와 향린원생들의 기도 장면은 2004년에 발굴해 공개된 필름에서는 볼 수 없는데, 검열에서 삭제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니시키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 1940년대는 조선영화령이 공포되고 전시체제하에서 국가가 영화 제작에 깊이 관여하는 시기였습니다. 조선의 민간영화사들이 해산되고 조선총독부 주도로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가 설립되자 니시키는 이 회사의 기획부 소속이 되어 영화 일을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니시키가 조선에서 집필한 시나리오들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영화로 수렴됩니다. 니시키는 전쟁이 장기화되는 국면에서 아동들을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항공영화’ <우르러라 창공>(김영화, 1943)과 해군특별지원병 선전영화 <태양의 아이들>(최인규, 1944) 외에도, 조선군 보도부가 제작한 영화 <병정님>(방한준, 1944)과 조선군 보도부가 지휘한 <국토방위를 위해>(박기채, 1944)의 시나리오를 집필했습니다. 컬렉션에는 니시키가 기획으로 관여했던 <수업료>, 니시키의 첫 시나리오 <집없는 천사>, 그리고 영화신체제 하에서 본격적인 선전영화로 집필한 <우르러라 창공>의 스틸 사진이 여러 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가 시나리오를 집필한 영화 중 <집없는 천사>와 <우르러라 창공>의 사진들만이 컬렉션에 포함된 것은 아쉬운 점이지만, 식민지 아동들의 ‘어린 마음’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데 어떻게 전유되는지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자료들이라 하겠습니다.  

영화와 영화계를 취재하는 자(경성일보 기자)에서 영화를 검열하는 자(조선총독부 검열계 촉탁)로, 그리고 직접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자(시나리오 작가)로 이동하며 조선영화계와 관계 맺었던 재조선 일본인 작가 니시키 모토사다의 컬렉션을 통해 193, 40년대 조선영화계의 다채로운 풍경과 접속할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 컬렉션 구성과 규모


▶ 영화별 스틸사진 규모(수) 
  

※ 컬렉션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해제)은 본 게시물 하단에 첨부된 [해제 다운로드]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 첨부된 해제 원고의 저작권은 필자와 한국영상자료원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제와 복제를 금합니다. 해제 글의 인용 시 필자명 및 출처를 명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조사·연구: 이화진(영화사 연구자)
- 기획·진행: 이지윤(한국영상자료원 연구원)

참고자료

※ 컬렉션 자료를 인용하실 경우, 자료의 출처를 반드시 명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표시 예: 한국영상자료원, 시나리오 작가 니시키 모토사다 컬렉션: 조선영화 편)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