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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단편영화제 컬렉션
▶ 삼성전자 주최로 1994년부터 1997년까지 4회 간 개최된 서울단편영화제는 당시 '대기업이 주최하는 최초의 단편영화제'로 주목받았습니다. 1990년대는 대기업의 영화계 진출과 함께 한국영화의 산업화가 진행되고, 1970년대의 문화원 세대, 1980년대의 영화운동 세대를 지나 새로운 영화인들이 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서울단편영화제는 임순례, 정지우, 윤종찬, 정윤철, 송일곤, 육상효, 곽경택, 박기형, 이윤기 등을 발굴했습니다.
1990년대는 대기업 자본이 국내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영화 인력의 세대가 교체되며 영화계 지형이 변화하던 시기였습니다. 1992년, 삼성물산 산하의 드림박스가 투자한 <결혼이야기>가 흥행에 성공하며 대기업의 영화산업 진출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충무로 중심의 기성 감독들이 아닌 대중의 취향을 읽어낼 수 있는 젊은 감독으로 세대가 교체되고, 대기업이 자본을 투자하는 ‘기획 영화’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 대기업의 영화 투자 방식은 비디오 판권 구매, 제작비 일부 지원 등 소극적 방식에서 벗어나 제작비 공동 투자, 전액 투자, 자체 제작과 같이 적극적인 방식으로 변화했고,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삼성은 비디오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던 1980년대부터 VCR을 생산하며 미디어 사업에 참여해왔습니다. 1992년, 삼성전자는 광소프드웨어 사업부 나이세스를 발족해 음반, 영화 등의 CD, LD를 비롯한 광소프트웨어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1995년엔 케이블 TV의 도입으로 '다매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대우의 DNC, 제일기획의 Q채널 등 여타 대기업들이 케이블 TV 개국에 나섬에 따라 새로운 미디어 콘텐츠를 발굴할 필요성이 더해졌습니다. 이에 삼성은 나이세스, 드림박스, 캐치원 등 삼성 그룹 내 영화・영상 관련 부서를 ‘삼성영상사업단’으로 통합해 그룹 차원의 영상산업 진출을 도모했습니다. 여러 미디어 산업 중에서도 영화는 다양한 매체로 송출이 가능해 부가가치가 높은 소프트웨어 공급원이자 유망 업종이었습니다. 서울단편영화제는 이러한 흐름 속에 등장했습니다. 대기업의 영화계 진출이 본격화되고 다매체 시대를 맞아 미디어 시장을 개척하던 시기, 신인 영화인을 발굴해 인력을 조기에 확보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대기업의 영화계 진출은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론 제도권 밖의 신인 감독들이 영화계에 진출하는 활로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충무로 중심으로 형성된 ‘도제 시스템’은 기성 감독의 연출부 시절을 거친 후 장편 영화로 데뷔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울단편영화제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신인 감독의 단편영화 연출 경험이 장편영화 데뷔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이른바 ‘해외파’ 영화인들이 서울단편영화제에 대거 등장해 새로운 지형을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앞선 세대에서 문화원과 대학 영화 모임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독립영화인들은 서울단편영화제 조직위와 세미나 발제자로 참여해 그들이 지녔던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에 대한 제도적, 미학적 문제의식을 신진 영화인들과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서울단편영화제 조직위와 세미나 발제자로 참여한 영화인 중엔 198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서울영화집단 김홍준과 박광수, 서울영상집단 홍형숙, 민족영화연구소 이정하, 노동자뉴스제작단 김명준, 바리터 김소영과 변영주, 푸른영상 김동원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서울단편영화제는 한국 독립영화사, 단편영화사 맥락에서도 영화인의 세대가 교체하는 분기점으로서 의의를 지닙니다.
단편영화는 신인 감독들에게 장편 데뷔의 발판일 뿐만 아니라, 극장용 상업 장편 영화와 달리 독자적인 창작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서울단편영화제 이전까지 상업 극장에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서울단편영화제가 처음 개최된 1994년은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인디포럼, 1997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서울여성영화제가 출범하기도 이전이었습니다. 그간 단편영화는 문화원을 기반으로 형성된 동호회나 대학 영화 모임을 중심으로 제작되어 동일한 공동체적 지향을 공유하는 대학, 사회 단체, 교회, 소극장 등 소규모 커뮤니티에서의 일회성 상영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반면, 1990년대에 이르러 앞서 언급된 산업적, 영화사적 맥락에 더해 비디오 붐, 사설 시네마테크 운동을 바탕으로 시네필 문화가 형성되었고, 이는 서울단편영화제가 대중과 호응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즉 서울단편영화제는 단편영화가 대중을 만나 작품으로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였으며, 국내외 신진 영화인들이 교류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처럼 1990년대 대기업과 영화의 관계는 상생 혹은 착취로 수렴되기 어려운 복잡한 형태였습니다. 당시 삼성영상사업단에서 근무하며 서울단편영화제를 기획했던 프로듀서 김은영은 “(삼성이: 인용자주) 영화제작에 손대면서 한국영화의 취약한 구조와 맞닥뜨렸고 영화 인력 배출이 한국영화를 살리는 길이라는 판단에서 단편 영화제를 만들었다”(<단편영화시대 열린다>, 《한겨레》, 1994년 11월 11일, 15면)고 말합니다. 그중 임순례는 서울단편영화제가 그린 ‘빅 픽처’였습니다. 임순례는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중산책>(1994)으로 최우수작품상과 프레스상을 수상합니다. 삼성영상사업단과 임순례의 연은 이후 삼성영상사업단이 임순례의 장편 데뷔작 <세 친구>(1996)에 제작비 전액을 지원하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임순례가 “이런 통로가 아니고, 시나리오를 직접 충무로로 들고 갔다면 여전히 장편을 만들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제작자들의 편견은 그만큼 뿌리 깊다”(<“단편의 참신・실험성 장편서도 잇겠다” 영화계 두번째 여성감독 ··· 첫 장편영화 ‘세친구’ 작업 들어가>, 《한겨레》, 1996년 1월 30일)고 말했듯, 서울단편영화제는 제도권 밖 신진 영화인들이 제도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1995년부터 제정과 개정을 거듭하던 영화진흥법과 함께 영화정책이 격동하던 시기, 그 중심에 있던 서울단편영화제는 영화인들이 모여 영화계가 마주한 제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장이었습니다. 당시 영화인들의 화두는 단편영화를 포함한 독립영화의 유통 및 배급 시스템 형성, 표현의 자유를 위한 검열 철폐였습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개최를 기점으로 한 영화제들의 출범은 영화제가 정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구축의 필요성을 더했습니다. 더불어 1996년 헌법재판소의 사전심의 위헌판결은 단편영화, 소형영화, 독립영화, 영화제 영화 검열에 관한 영화인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을 키웠다. 이와 관련해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영화인들이 발표한 선언문은 본 게시물 하단에 첨부된 ‘해제’에 부록으로 별도 수록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컬렉션은 한국영상자료원이 수집한 자료와 함께 서울단편영화제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존 중인 서울단편영화제 자료는 총 39점으로, 전체 자료는 온라인에서 열람이 가능합니다.([표 1] 참조.) 그중 티켓카탈로그에선 상영 시간표, 시놉시스, 감독 이력, 영화제 규정 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세미나 자료집엔 영화제 전 회차에 걸쳐 진행된 세미나 발제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세미나는 감독, 평론가, 프로그래머 등 영화인들의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단편영화뿐만 아니라 독립영화 전반을 역사적, 미학적, 산업적, 제도적 관점에서 폭넓게 논의하는 세미나 자료집을 통해 당대 독립영화의 지형과 영화인들이 당면한 현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세미나 자료집 또한 온라인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표 2] 참조.)
서울단편영화제는 IMF의 영향으로 영상사업 분야가 직격탄을 맞고, 삼성이 삼성영상사업단의 해체 수순을 밟음에 따라 자본의 논리 아래 사라지게 됩니다. 그 역사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4년에 그쳤지만, 한국 영화계에 가져온 영향은 단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서울단편영화제는 앞선 세대 독립영화인들이 지니고 있던 단편영화, 독립영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신진 영화인들이 이어받고 새로운 지형에서 담론을 전개할 수 있는 매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연속은 1990년대 영화계의 산업적, 제도적, 인적 변화와 함께 등장한 신진 영화인들이 새로운 좌표를 모색하면서도, 앞선 세대의 지향과 완전히 결별하지 않은 채 단편영화, 독립영화의 지평을 확장시켰다는 의의를 지닙니다. 서울단편영화제의 짧고도 긴 역사를 재조명하는 본 컬렉션이 서울단편영화제의 현재적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컬렉션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 게시물 하단에 첨부된 [해제 다운로드]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 개별 자료에 대한 세부 정보 및 상세 해설은 아래 ‘자료 목록’의 자료명을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기획·연구: 송은지(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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