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등급정보
(1)
심의일자 1972-01-08
심의번호 제4946호
관람등급 미성년자관람불가
상영시간 85분
개봉일자 1972-04-07
다른제목
화분(꽃가루)(다른 원제명)
개봉극장
국도
수출현황
유고(72)
노트
■ 유신 전야의 출구 없는 억압과 분노를 우회적인 방식으로 표출한 영화”(권은선) / “우리나라 영화사에 있어서 보기 드문 퀴어영화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영화”(서동진)
1970년대, 기존의 한국영화를 비판하며 미학적 혁신을 주장했던 영상시대의 대표기수, 하길종 감독의 데뷔작. 이효석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원작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로테스크하고 난해한 영화를 완성했다. 최고 권력을 연상시키는 ‘푸른집’이라는 영화의 주 공간이 암시하듯, <화분>은 영화 전체가 하나의 알레고리로 기능함으로써 억압적인 시대의 분위기를 환기해내고 있다. 영화는 주요한 모티브로 동성애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끌어들임과 동시에 이를 다시 권력과 계급, 성적 본능의 문제와 엮어짜고 있다.
영화는 현마가 군림하는 ‘푸른집’에 젊은 남자인 단주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현마와 단주는 권력과 계급관계를 매개로 동성애적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단주가 세란과 빠지면서 자신과의 관계를 청산하려고 하자 현마는 단주를 처벌한다. 현마라는 권위적 인물이 존재하는 한 단주와 미란의 순수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불가능성은 시대의 억압성과 불구성의 알레고리적 표현으로 보인다. 이제 처벌된 단주는 유령처럼 푸른집을 떠돌며 이곳에 사는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자극한다. 단주는 푸른집이 권력적 장소로 기능하기 위해 억압한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 이 트라우마적 공간은 그 견고하고 화려한 외양 아래 파괴의 조짐을 숨기고 있으며, 이는 느닷없이 폭발한다. 화려한 파티가 있던 다음날 아침 푸른 집은 빚쟁이들의 손에 풍비박산이 난다. 이렇듯 하길종 감독은 엄격한 검열 체제 아래서 매우 우화적인 방식으로 박정희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개봉 당시 파졸리니의 <테오라마>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분분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 제작후일담
- 하길종 감독은 애초 데뷔작으로 동학혁명을 다룬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준비했지만 어떤 영화사도 제작비를 대지 않아 제작에 착수할 수 없었다. 그 후 하길종은 동생이자 배우인 하명중이 건네준 시나리오 <화분>을 보고 영화화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 영화 역시 영화사들이 나서지 않자 하 감독은 살던 집을 사채 시장에 내놓고 하명중이 번 돈을 쏟아 부어 가까스로 영화를 완성했다. <화분> 제작에는 당시 평균 제작비보다 2배 많은 800만원이 들어갔다.
■ 한국영화사에서 혁신과 자괴 사이를 길항하는 하길종이라는 작가의 전무후무한 위상을 보여주는 작품. 미학적 성취와 정치적 비판을 향한 하길종의 자의식은 정교하고 일관된 영화 형식을 통해 ‘완성’되기보다 텍스트 곳곳에서 발견되는 균열의 연속을 통해 징후적으로 드러난다. 텍스트-작가-비평담론-해석 네트워크 사이의 갈등과 협상을 가장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부정합의 텍스트.(박진형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천국 6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