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등급정보
(1)
심의일자 1957-03-07
심의번호 제2183호
상영시간 170분
개봉일자 1957-03-08
(단성사, 중앙극장(동시개봉))
다른제목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극장 개봉)
누구를 爲하여 鐘은 울리나(다른 제목)
개봉극장
단성사, 중앙극장(동시개봉)
노트
파라마운트 창립 40주년 기념작이다. 1957년에 동양영화사가 수입하여 단성사와 중앙극장에서 동시에 개봉했다. 흥행은 성공적이었다. 1957년 한해에 극장에 걸렸던 외국영화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관객이 들었다. 상영 일수는 31일에 달했으며 관객수는 75,811명에 달했다. 흥행 1위였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관객수가 8만이었고 당시 한국영화의 장기 상영 기록이 14일이었음을 감안할 때(주석 1), 꽤 높은 흥행 기록이었다.
주연을 맡은 게리 쿠퍼는 인기 있는 배우였다. 뛰어난 미남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서민적인 얼굴에 박력 있는 연기력”을 지닌 ‘세기의 스타’였다(주석 2). 식민지 시기부터 이름이 널리 알려온 대배우였으며(주석 3), 1950년대에 들어와서도 <하이눈>(1952) 등의 작품으로 여전히 건재함을 보이고 있었다. 무뚝뚝하면서도 따뜻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강직함이 매력인 그의 페르소나는 인기를 끌었다. 특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기억에 남을 명연기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우 못지않게 화제인 것은 원작자인 헤밍웨이였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원작자인 헤밍웨이는 인지도가 높은 작가였다. 현대 미국문단의 거장이자 195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었으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인간을 깊이 탐구하는 문제적 작가로 인식되었다.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 자체가 “큰 예술적인 소양의 보탬”(주석 4)이 되는 드문 기회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작품 세계가 예술성을 인정받는 상황이었다. 특히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최대 판매부수를 기록한 1940년대 대표적 베스트셀러였다.
이 영화는 검열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지만 오히려 검열 기준의 일관성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일기도 했다(주석 5). ‘게릴라’를 영웅화했음에도 검열에 무사통과한 것이 의아하다는 반응이 그런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태리 영화 <로마의 여인>이 원작자인 모라비아가 전 공산당원이었다는 이유로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음을 감안할 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경우는 다소 이례적으로 보일 소지가 있었다.
1. "관객 동원 수에서 본 국내외 영화 베스트 텐", 서울신문, 1957.12.29(4)
2. "메아리", 한국일보, 1961.05.14(석1)
3. "‘작년도 전세계의 1위는 게리 쿠퍼씨’", 동아일보, 1938.02.26.
4. "‘휴매니즘’의 제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보고", 경향신문, 1957.03.15.
5. "재검토 돼야 할 외화 검열", 서울신문, 1959.11.22(7)
- 오영숙(영화사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