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탑골공원에서 살아가는 부랑자들. 그들의 삶과 내면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들은 흔히 말하듯 정상적인 삶의 일선에서 낙오된 사람들이지만 그들도 어엿한 삶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인간임을 보여준다. 흔히 삶의 패배자로 간주되는 그들의 삶을 깊이있게 들여다봄으로써 그들의 눈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재조명하고 있다.
연출의도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를 만들고 나서
부랑자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은 그들은 삶의 패배자라는 것이고 그런 생각에는 남들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그들의 무기력에 대한 차가운 비난이 담겨 있다. 어떤 이는 그들은 사회에 대한 적대감으로 인해 다분히 폭력적이고 그래서 위험한 부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살면서 상처받고 좌절을 겪으며 한번쯤은 `이러다가 삶의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짙은 패배감을 맛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기억한다면 이들의 삶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인식을 내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작업의 첫출발은 서울역 주변이었다. 그 곳에는 많은 부랑자들이 있었다. 난 그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놨다. `당신들 얘기를 담고 싶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딱 부러진 것이었다. `촬영조로 돈을 지불하든가, 부랑자가 되어 몇달 살다가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던가`.어설픈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세였다. 그러나 두가지 조건 모두 내겐 버거운 것이었다. 돈여유도 없었고, 이미 난 서울역 사람들에게 신분이 노출되어 있었다. 낭패감에 빠진 내가 걸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은 서울역 사람들이 가끔 탑골공원에 쉬러 간다는 정보였다. (그때는 한여름이었다.)
노인들의 휴식공간으로 알고 있던 탑골공원은 전혀 낯선 모습이었다. 매춘여성, 호모, 그리고 이곳이 삶의 공간인 부랑자들. 김진석씨를 처음 본 것은 노인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는 급식차 앞이었다. 식사는 노인에게만 허락되기에, 젊은 진석씨는 온갖 구박을 받아야 했다. 그는 그 수모를 받아내며 식판에 얼굴을 파묻고 먹어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난 며칠을 두고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첫 인상과는 달리 매우 사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노력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한쪽다리를 절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이정자씨가 눈에 띄었다.
다큐멘타리에서 가장 힘든것은 대상과의 관계맺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난 행운아였다. 겉으로는 호형호제간이 된 사이지만 진석씨에게 내가 작품에 반쯤은 미친 다큐멘타리 작가를 넘어서 있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그것은 내 자신에게나 진석씨에게나 마찬가지의 의문이다. 서로 부담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 관계인것만은 틀림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