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아네스 바르다, 1962

by.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2018-07-19조회 9,130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파리의 생동감 넘치는 풍경과 클레오의 불안한 마음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와는 별개로) 생동감이 넘친다는 인상을 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영화가 도시의 풍경을 담아낸 방법에 있다. 많은 장면에서 카메라는 롱숏을 통해 파리의 도로, 상점, 인파, 자연 등 다양하고 많은 피사체를 한 화면에 담는다. 그리고 현장을 거의 통제하지 않아 사람과 자동차 등이 자유롭게 화면 안을 움직이게 했다. 심지어 카메라를 쳐다보는 사람도 여럿 등장할 정도다. 또한 도시의 바쁜 리듬과 주인공의 느리지 않은 발걸음에 맞춰 카메라 역시 자유롭게 움직이며 운동감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꽉 짜인 인과 관계로부터 거리를 두고 전개되는 즉흥적인 이야기 흐름과 툭툭 끊기는 편집까지 맞물려 영화 가득히 생생한 활기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이 만들어지는데, 그건 바로 영화에 정보가 많이 담긴다는 것이다. 먼저 눈으로 봐야 할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며, 동시에 귀로 들어야 할 사운드가 빼곡하게 채워진다. 즉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가득한, 볼 것 많고 들을 것 많은 영화이다. 잠깐의 실내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순간이 그러하며, 특히 클레오가 사람 많은 카페로 들어갔을 때는 눈과 귀로 밀려 들어오는 밀도 높은 정보 때문에 순간 아찔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현장에서 직접 녹음했음이 분명한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와 커다란 거울까지 동원해 포착한 카페의 혼잡한 풍경은 감독이 하나의 장면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게 아닌가란 의문까지 갖게 한다.

그런데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의 특별한 점은 단순히 스크린에 정보를 많이 담는 연출이 아니라 이러한 특징이 주인공의 심리 상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 클레오는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미래와 일상 속 삶의 의미에 신경이 곤두선 상태이다. 타로 카드점을 보는 클레오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지금 클레오는 점술사가 뭐라고 하든 카드에 담긴 그림의 의미를 직접 읽어내려고 할 정도다. 그만큼 클레오는 자기를 둘러싼 사물과 풍경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스틸

이런 클레오가 앞에서 이야기한 역동적인 파리의 풍경 속으로 들어갔으니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고 불안할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검은 옷을 입으며 죽음을 떠올리고, 라디오 뉴스에 나오는 알제리전쟁의 참상을 귀 기울여 듣는다. 그런가 하면 사람으로 가득한 카페에서는 외로움을 느끼고, 개구리를 삼키는 마술사와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내는 차력사의 모습을 보며 마치 자신이 고통을 느끼는 것 같은 반응을 보인다. 즉 클레오는 영화가 충실하게 담아낸 도시의 풍경과 그 시청각적 기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중 조금이라도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것과 마주할 때마다 격렬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다. 그 결과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파리의 생동감 넘치는 도시 풍경과 주인공의 우울한 불안이 충돌을 일으키는 특별한 영화로 남는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스틸

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대조되는 단순하고 차분한 결론이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기는 것도 이 맥락 때문이다. 암 검사 결과 여부에 그토록 신경을 쓰던 클레오는 의사로부터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짧은 답을 얻는다. 물론 앞으로도 치료는 계속 받아야 하겠지만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영화는 주위의 소음을 지우고, 그 시끌벅적하던 풍경까지 밖으로 밀어낸 채 클레오와 방금 만난 상대 남자의 얼굴만을 클로즈업으로 남긴다. 여기엔 불안한 기운은 없고 단지 상대를 향한 조용한 응시만이 남는다. 영화를 보는 내가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 클레오의 마음에도 안도와 평온이 자리 잡기를 바란다. 

※본 작품은 시네마테크 KOFA 기획전 "영화와 공간:파리" (018.07.11.수 ~ 07.25.수)의 상영작으로 해당기간동안 극장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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